나와 호랑이님 1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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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호랑이님 2 (시드 노벨)
글 카넬 그림 영인
장르 전기 러브 코미디

글 ★★★☆
그림 ★★★★★

세계관

단군 신화를 제재로 삼았던 1권과 달리, 2권은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를 가져와 각색했다. 나는 웅녀와 랑이의 싸움이 계속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빗나갔다.

이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나와 호랑이가 몇권이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나오는 권 수만큼은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재창조 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소재만 한국이고 내용을 보면 일본이지 않냐고? 이 작품 하나만 봐서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한국형 라이트노벨의 또다른 효시가 된다고 본다면, 이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시도다. 태어나길 일본에서 태어난 라이트노벨이다. 급하게 굴 것 없이 조금 타협해가면서 우리의 색을 더한다면 언젠가 우리가 바라는 시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게 봐서는 우리 이야기를 일본 색으로 물들인 것이지만, 크게 보아서는 일본 문화를 우리 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이 말씀이다.

앞으로 어떤 소재를 선택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시작은 조금 무리수였을지 몰라도, 방향을 똑바로 잡고 가는 것 같아 기쁘다.


스토리

제법이다.

그래봐야 캐릭터밖에 없는 소설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스토리가 형편없기는 하지만, 1권과 비교하면 그럭저럭 '스토리'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최소한 막판에 갑자기 나타나서 정신없이 휘둘리다 끝내는 건 아니란 말이다. 허술하지만 여기저기 복선을 깔아놓기도 하고, 나름대로 긴장감도 유지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아직 밝은 분위기에서 갑자기 정색을 하거나, 진지해야할 분위기에서 농담을 날리는 등 산만하고 미숙한 부분들이 마음에 걸리지만 다짜고짜 급전개 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정말 아쉬운 것은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를 스토리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와 호랑이님 고유의 세계관과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를 조금씩 섞어 캐릭터와 배경만 뽑아낸 느낌이다. 원작과 리메이크가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지 못하고 그저 옛날에 있었던 일로 깔아둘 뿐이다. 단지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의 구도를 결정짓고 그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제공할 뿐, 한발짝 더 앞으로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나와 호랑이님은 엄밀히 말하자면 '이야기 자체의 각색'을 주제로 삼았다기 보다는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주제로 삼았으니 크게 문제 삼을 수는 없겠지만, 이왕 가져온 이야기니 잘 써먹었으면 좋겠다.



캐릭터

표지부터 또 조그만 여자애가 나와서 불안불안 했는데, 본문을 읽어보니 이젠 막 두렵기까지 하다. 어느날 자다가 눈을 떠보니 전자 발찌를 차고 있는 게 아닐까. 로리즘을 뛰어넘은 카넬의 극단적인 페도 성향이 드러난 캐릭터들이다. 읽다보면 분명 한번은 경악을 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어린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어린 아이들이기에 위험한 캐릭터들이다.

* 치이 : 2권의 표지를 장식한 메인 히로인. 솔직히 말하자면 이름을 볼 때부터 한숨이 나왔다. 이쯤되면 대놓고 한국을 포기하는거나 다름이 없지 않나. 하지만 알고보니 치이는 호랑이에서 호를 떼고 랑이만 부르듯 까치에서 치를 떼고 이를 붙인 말이었다. 그걸 알고나니 갑자기 치이란 이름이 정감가고 귀엽게 느껴지더라. 치이는 순 우리말이다. 아닌 것 같아도 그렇게 믿도록 하자.
캐릭터 그 자체로서의 매력도는 상당했다. 물론 본바탕은 어두운 과거(은혜 갚은 까치 그대로다)와 500살이 넘은 합법 로리라는 진부한 설정이었지만, 고유의 음성어 '아우우!'나 '까우웃!'나 다소 거슬리지만 일단은 귀여운 말투인 '~거예요!'를 앞세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매력을 뿜어낸다. 게다가 랑이와는 달리 '머리카락'을 감정 표현의 주 도구로 삼아 난처한 상황이나 숨기고 싶은 감정을 독자에게 여실 없이 드러낸다. 로리를 떠나 인물 자체가 참 귀엽게 만들어졌다.
마지막 처리 방식도 상당히 괜찮았다. 치이는 2권이 끝나면서 다시 자기가 있어야할 곳으로 떠나버리는데, 어중간하게 남겨서 이도저도 아닌 공기 캐릭을 만드느니 한 에피소드만 딱 쓰고 훗날을 도모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 랑이 : 훌륭하게 공기화를 면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중요한 역할도 아니다. 그냥 수위 좀 올려주고 염장 좀 지를 뿐이지, 스토리상으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점이 참 적절하다. 묻히지는 않게, 그렇다고 사건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게. 본처로서 나쁘지 않은 포지션이었다.
아, '후냥?'은 카넬이 생각해도 좀 심했다 싶었는지 '우냑!'으로 바뀐 듯하다.

* 세희 : 입담이 많이 죽었다. 치이에 집중을 하다보니 세희의 역할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원래 이것 저것 알려주면서 슬쩍 속여 먹고 비웃는 캐릭터인데, 주인공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인지 그저 옆에서 묵묵히 칭찬만 할 뿐이다. 망했다.

* 나래 : 공기만도 못한 존재다. 주인공이 그토록 믿고 의지하지만 아무 쓸모도 없다는 점에서 토속 신앙과 비슷하다.



문장

여전히 문장은 좋지 않다. 심지어 신유형 일빠체로 '~들(~たち: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어)'까지 사용하며 국산 일본 소설의 위엄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보여준다. 아예 새로운 히로인은 말투부터 '~거예요!(~なのです!)'를 탑재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확실히 올라갔다. 이게 참 신기하다. 사실 1권에서 지적했던 문제들이 대부분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것 하나 완벽하게 개선된 점이 없다. 여전히 주인공의 독백은 주인공의 국적을 의심하게 만들고, 일본 특유의 애매한 문장은 잊을만하면 툭툭 튀어나오고, 이상한데서 오글거리는 대사나 유치할 정도의 연출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는데 막상 읽으면서 빡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충 그러려니하고 어느정도 용납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았을때는 뭔가 달라지긴 했다.

물론 문장이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지 좋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프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이런 식으로만 계속 해준다면 몇권 이내로 멀쩡한 문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꼭 문장 뿐만이 아니라 캐릭터를 제외한 모든 요소가 그렇다. 2권을 칭찬하는 이유는 2권이 잘 만들어져서가 아니다. 2권은 아직도 결함품이다. 다만 발전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칭찬하는 것이다.



일러스트

쓸 말이라고 해봐야 칭찬밖에 없으니 쓰나 안쓰나 똑같을 것이다. 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