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이벤트로 받은 '농림' 리뷰를 올린 적이 있는데, 몇 달이 지난 지금은 조금 후회하고 있는 편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생각보다 호평받아 마땅한 부분들이 여러 군데 있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 소설, 수라장 속의 나와 소녀급렵구 역시 비슷한 평가 - 사실 농림보다는 카타르시스와 여운이 남는 작품입니다 - 를 내리고 싶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온도바루 세츠는 작중의 일본 굴지의 대기업 온도바루 기업의 회장의 양자로,

양부인 온도바루 짓지로의 변덕으로 언제 빼앗길 지 모르는 자리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그런 그의 앞에, 5명의 소녀가 온도바루 짓지로의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나타납니다.

게임의 엔딩 조건은 세츠가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서 끝이 나는데, 이들 중 단 한 명의 소녀만이 세츠를 사랑하고 있고,

나머지는 온도바루에게 깊은 증오를 품고 있을 뿐더러, 게임에서 이긴다면 세츠는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세츠는 자신의 고등학교에 난입한 이들과 일상을 보내게 되는데...가, 대락적인 줄거리입니다.

일단, 개연성은 충분히 느껴집니다. 5명의 약혼녀라와 소꿉친구 메이드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은 소설 내에 등장하는 '온도바루 기업'이라는 전제 조건에 의해 성립되고, 이들이 세츠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 역시 그리 부담되지 않는 수준에 머무릅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육체 돌격이 어느 정도 묘사되기는 합니다만, 그 동안의 러브-코메디에 익숙해지신 여러분들은 충분히 납득하실 수 있을 수준입니다.

이 소설의 맹점을 하나 꼽자면, 분명 주인공이자 화자인 온도바루 세츠의 캐릭터이겠지요.

전형적인 나약한 미연시 주인공 캐릭터가 아닌, 철저하게 현실적인 부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존재감 덕분에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현상들이 개연성을 얻게 됩니다. 자신을 언제든지 파멸시킬 수 있는 온도바루 짓지로를 두려워하면서도, 번뜩이는 기지로 그에게서 호평을 끌어낸다던지. 아니면 자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약혼녀 후보의 마음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의심하는, 우리들의 소심성을 대변하는 모습이라던지.

히로인이 자신에게 칼을 들이댄다면 잠자코 찔려 줄 그런 대인배성이 농후한 여태까지의 호구들과는 분명 다릅니다.

아마 향후의 전개를 예상하자면, 히로인 개개인을 하나씩 하나씩 상대하고 진심을 찾아냄으로서 게임에서 우위를 점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나갈 듯 싶습니다. 충분히 기대가 가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인 평으로는, 소꿉친구 메이드의 존재가 후에 변수가 될 것 같군요. 세츠가 얼마나 온도바루를 증오하는지 나타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