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평 양식을 만들기가 막막하여 버들루 님(http://ryuwillow.tistory.com/)의 양식을 빌렸습니다. 죄송…. 양식이 있는 편이 쓰기 쉽잖아요. 미리니름 없어요.
글 오버정우기 / 그림 Anmi
글 ★★★★☆
그림 Yoooooooooooooooooooo !!
단평
여태까지 당해왔던 게 있어서 그런지 난 서브컬처를 중심 소재 삼은 라이트노벨과 팬픽은 영 끌리지 않았다. 그런 부류는 대게가 오타쿠의 자위 소설 혹은 그마저도 안 되는 도찐개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그 외의 설정은 또 어떤가. 한국산 라노벨에 비관적인 분들이 항상 언급하는 ‘그 나물에 그 밥’ 형 소재가 아니던가. 「학교가 있고 미소녀가 있고 동아리 활동을 하네. 아 그럼 또 그 모양 그 꼬라지겠지….」 책을 사려 할 때 날 만류하던 분이 하셨던 말씀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 책을 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니, 이 분은───이상해씨 쑼컹쑼컹의 그분이 아니신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는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뿐이랴. ‘나 원래 글쟁이였음♡.’라고 말하는 듯이 능숙하게 소설을 써 내려갔다. ‘패러디 만화 그리던 사람이 글도 잘 쓰겠어?’라는 사람이 있을까봐 덧붙였는데 사실 작가 블로그를 직접 보셨으면 다 아시겠지만 별 필요 없는 주석이다.
작품 얘기를 하자면 이 작품은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포맷을 하고 있다. 한국이며 학교고 거기에 작품만의 +α. 흔히 ‘출판사가 돈 벌라고 발간하는 평타도 못 치는 작품(이라고 모함받는 작품)’이 대게 이 형태를 하고 있고 그런 작품들은 그 때문에 여러 군데에서 까인다. 하지만 그런 까이는 작품들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곳이 분명히 있다. 설정은 기발한데 활용이 적다든가. 캐릭터는 좋은데 스토리에 개연성이 없거나 급전개가 펼쳐진다든가. 반대로 스토리에 캐릭터의 개성이 죽는다든가. 요즘 작품의 빈번한 경우는 서사가 없이 에피소드만 나열되다가 어거지 클라이막스를 만든다는 건데 이건 넘어가고…. 아무튼.
그에 비해 숨덕부는 쩐다. 기본 소재의 발상(한국 학교 + 오타쿠)은 평범해도 스토리와 캐릭터를 흠 잡을 데 없이 조화롭게 이끌어내고 작중 내도록 참신하게 활용된다. 스토리와 캐릭터 또한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이끌어내는 그들만의 이야기’라는, 가장 완벽한 형태를 이루어냈다. 낭비되는 설정도 없고 포화지방 같은 내용도 없다. 국산 일본 라노벨이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하다.
정말 초고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왜 이게 상을 못 탔지?
스토리
미리니름 거리도 안 되는 사소한 것을 말해도 글의 재미를 반감시킬 것 같아 말을 아끼게 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광고가 전부가 아니란 것이다. 광고가 전부면 도대체 이 소설의 내용은 무엇이 되겠는가. 어차피 짐작도 안 되는 거 괜히 고정관념에 저평가(그런 분이 계시다면)하시지 말고 사서 읽길 권하는 바이다.
숨덕부는 김경호의「금지된 사랑」같다. 작품이 190페이지였나, 그쯤에서 두 부분으로 딱 갈라지는 느낌이다. 전체 페이지 수가 360~70 정도였으니 거의 반틈이다. 그 때문인지 서사가 약한 것은 아닌데 중편 두 개를 읽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상황 만들기의 아이디어가 매번 워낙 강렬해서 더욱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이건 그냥 그렇다는 것이고 나쁘다는 게 아니다(다른 작품 같으면 깠겠지만 좀 재밌어야지 이게). 그저 숨덕부도 금지된 사랑처럼 앞은 (상대적으로) 평온하게, 뒤는 신 나게 읽으면 되는 것이다.
상식적인 전개이고 개연성이 있다. 소설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소양인데 국산 라노벨에서 그런 소설을 만나니 새삼 반가웠다.
캐릭터
전체적으로 너무 튀지 않는, 평타 치는 개성에 인물관계도 그럴싸하고 무엇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이끌어내는 그들만의 이야기’란 점에서 거의 무결점인 등장인물들뿐이다. 일러스트도 개ㅡ쩔ㅡ고 말이다.
서연지. 표지의 처자다. 아직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어서 많은 말은 못 하겠다. 남주인공과 꼬이게 된 경위를 하루빨리 알고 싶다. 인상적으로는, 기특한 생각을 하고도 부끄러워서 악랄한 척을 하는 느낌이다. 귀여운 년.
강인진. 오타쿠 Kyon. 존나 화자로서만 기능하는 공기 남주인공은 아니라서 정말 좋았다. 앞으로도 이대로만 해줬으면 좋겠다. 오바하진 말고.
양호실. 말투만 좀 어색하던데 나만 그런가. 내 양호 선생님은 전부 아주머니여서. 이하 생략.
벽ㅡ안. 이름 기억 안 난다. 암튼 대놓고 대항마 포지션이었던 건 좀 불편했는데 그래도 억지 느낌은 적어서(…) 좋았다. 금발에 벽안 일러스트보다 흑발에 렌즈 뺀 모습이 더 꼴릴 거 같은, 2권이 기대되는 히로인. 갈등 거리도 쉽게 나올 거 같은 위치라 곧 한 번쯤 중심 캐릭터를 하실 거 같다. 너 표지 해라, 두 번 해라.
메이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부러 찾아온 것일 텐데 왜 산책 중이라 말한 걸까? 정말 산책 중이었던 건 아니겠죠? 의외로 종잡을 수 없는 게 매력이었던 거 같다. 레귤러 활약이 기대된다. 1권에서는 그냥 스토리 전개용 말풍선 셔틀.
집ㅡ사. 일편흑심 남주인공 찬조 출연. 까메오다. 왜 있냐? 1권 중에는 한 게 없는 포석용 캐릭터.
문장
이 아래는 취향 합평이다. 해당 사항 없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문장에 대해서만 조금 짚고 싶은 게 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 시대가 이렇다고 한들 소설에 ‘너님들 퇴학염(비읍비읍)’와 ‘(키읔키읔)’은 아니지 않은가…. 각각 작중 딱 한 번 나올 뿐이지만 다른 문장이 아주 수준급이라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무난한 문장으로 항마력 잔뜩 낮춰놓고 말이다.
그리고 화자인 강인진에 대해서인데. 반응이나 개그나 그럭저럭 재밌는데 캐릭터 따라 표현까지 너무 오바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독자들은 문자까지 ‘?!’로 점철되어가며 요란 떨지 않아도 강인진이 부산 떨고 있는 모습을 쉽게 그릴 수 있다. 또 인물과의 대화 중 큰따옴표 뒤에 달리는 강인진의 주석이 정말 재밌는지 꼼꼼히 확인했으면 한다. 재미없다는 건 아니고, 대체로 재밌었는데 몇몇 표현은 이거보다 더 재밌는, 더 신랄한, 더 황당한 모습을 그릴 표현이 있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문체는 작가만의 것이다. 아주 가끔 타니가와 나가루가 떠오르는 문장이 있었는데 현재로선 패러디라 생각하고 있다. 다른 모든 게 수준급이니 문장에서 기교를 익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러스트
사실 이 항목을 쓰려고 위 항목을 다 억지로 쓴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이 항목이 가장 중요하다. 여태 보아왔던 모든 한국 라이트노벨을 통틀어서 이만큼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표지는 본 적이 없다. 얼마나 모에한가. 얼마나 캐릭터가 부각되는가. 얼마나 알기 쉽고 깔끔한가. 또 요즘 라노벨 표지보다 직접 구매시 항마력 필요 수치도 현저하게 낮다. 쓰잘대기 없는 배경을 과감히 쳐낸 일러스트레이터와 편집자분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타사의 대항마 일편흑심이 있지만 같은 일러스트레이터잖아? 안 될거야. 아마.
권두 컬러 완벽. 초 완벽. 초 COOOOOOOOOOOOOOOOOOOOOOOOOOOOOL. 흑백 삽화는 171페이지를 잔털 정리 같은 느낌으로 연지 빼고 나머지를 어케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암튼 흑백 삽화도 쩐다. 삽화 수도 많다.
삽화에서 서연지 양이 「WORKING!!」의 야마다 같은 얼굴을 하고 두 번 등장했는데 정말 귀여웠다. 265페이지의 서연지 쨔응도 귀여웠다. 사실 안 귀여운 서연지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인물 간 대화보다 대패(대놓고 패러디)와 숨패, 남주인공이 ‘현실에는 그런 거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주제 모르는 메타픽션(?) 부분이 더 재밌었다. 작가 센스가 정말 넘치는 거 같다. 귀귀 초창기 보는 거 같아서 불안하긴 하다. 앞으로 질적으로 성장하는 소설을 써줬으면 좋겠다.
정말 간만에 2권 언제 나오나 싶은 소설을 만나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