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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저번에 반시연 작가의 흐리호우에 대해서 엄청난 호평을 했지만, 전 딱히 2권을 사지 않았습니다. 사실 전 추리물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리고 이 유령의 노래도 솔직히 광고나 설정이 제 취향은 아니라서 반시연의 이름이 아니었다던가, 아니면 최근에 읽을 만한 글이 이것 외에도 충분히 넘쳐났다던가, 했다면 이 책을 구매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좋아하는 장르도 아니고 하나하나 따져보면 기막히게 특출난 점은 없는데 왠지 호평하게 되는 것이 그냥 작가와 저의 코드가 맞아서인지, 아니면 취향적인 문제와 책의 재미가 구별된다는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본문을 좀 살펴보죠.
2. 개괄적인 평가
이 작품은 단군 신화를 모티브로 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도대체 설명만 들으면 무슨 글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 어쨌든 그게 확실합니다. 작중의 인물의 이름이나 고유명사 등에서는 신화와 고전을 차용했고 설정 자체도 단군신화가 핵심입니다. 하지만 분명 글은 깔끔하고 이야기도 잘 짜여져 있는데 오히려 같은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한 시드노벨의 나와 호랑이님이 더 훌륭하게 재해석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글이 어중간해요. 나와 호랑이님은 깔끔하게 '그 뒤에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 까요?' 라는 일관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 단군신화는 그 소재의 대표로써 끼워넣고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유령의 노래는 단군신화와는 하등 상관없는 마물과의 전투나, 서로의 입장 교환,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로 인해 미쳐버린 미치광이, 퍽퍽퍽으로 끝나는 액션 등등 온갖 잡다한 걸 끌어들였고 그걸 어거지로 단군신화에 껴넣었거든요. 제대로 융합된 것 같지 않아요. 어느 것 하나 심도있게 파고들지도 않았고요. 굳이 남아있는 인상이면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광기? 물론 움베르트 에코의 푸코의 추 급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만 왜 이런 소재를 썼는지 의문이 좀 생깁니다.
이야기의 포맷 자체도 정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주가 되어야할 소재와 재해석 부분이 아쉽다보니 '글 잘썼네' 이상의 느낌이 들지가 않네요. 사실 그거라도 제대로 되어있으니 다행일까요.
3. 설정과 현실성
이야기 자체는 깔끔하지만 주변의 설정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문점이 생기는 것이 한 둘이 아닙니다. 아무리 내버려둬도 김이 빠지지 않는 미지근한 콜라는 넘어가요. 일단 이름 관련. 첫째로 천재 박사 교야는 이름의 어원이 무엇인가? 다른 인물들은 어디서 따온 것들이 많은데 교야는 왜 교야인가? 둘째로 왜 변학도와 성춘향을 악역과 히로인의 이름으로 사용했으며 그 둘은 어떤 이유로 단군신화에 등장했는가? 심지어 그리 비슷한 인물상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셋째로 왜 주인공 부대의 3인방의 이름은 한국 저승사자에서 따왔을까? 넷째로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이 없는가? 굳이 고전을 따올 거라면 확실하게 따오지.
그 다음으론 마물의 존재와 하늘의 목소리, 빛줄기 등의 존재는 명확한데 어째서 우중충한 빗줄기에 대한 설명은 없죠? 이 비는 도대체 뭡니까. 암시는 되지만 그 암시만으론 왜 이 비가 사람을 마물로 바꾸고 특정한 약을 먹지 않으면 정지하는 견우의 동력원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부대는 어쩌다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을까요? 전부 초인으로 구성된 부대인 것 같은데 덕춘이는 왜 총맞고 죽었고 소대장으로 언급되는 강림은 어디로 갔죠?
마물은 그저 신세대 인류입니다. 이들은 인간을 해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왜 이 세계의 사람들은 마물을 그리 두려워하며 왜 하늘의 목소리는 왜 인간과 마물이 굳이 말을 통할 수 없게 만들었을까요. 얼굴은 사람과 비슷한 것 같고 분명 평화적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 견우는 언제부터 마물과 말을 할 수 있었나요?
그 다음으로, 빛줄기와 제단은 이 한반도에 얼마나 많이 있고, 얼마나 멀리 있는 걸까요? 양키우는 곰족과 호랑이족은 마물인가요 인간인가요. 분명 성춘향이 특별하게 된 이유는 그냥 우연인데 하늘의 목소리는 왜 성춘향을 특별대우 합니까?
왜 이 작품의 제목은 유령의 노래입니까. 심지어 철자도 이상해요. 그, 분명 영어 철자로 SPECTOR 라고 되어있는데 이건 스펙트럼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SPECTER를 잘못 쓴 건가요? 노래부르는 사람은 교야밖에 없습니다. 교야가 인간의 잔재, 망령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제목을 붙인 건지. 음. 모르겠습니다.
글에서 나오는 저격수(이름을 주몽으로 했으면 웃겼을 텐데)는 성대에 장애가 있고, 목소리가 작습니다. 그런데 직업은 몇 번이나 언급되지만 '자동차 영업사원' 이었군요. 호오. 신기하네요. 물론 못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만 딱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정말 심각한 의문점 중 하나인데, 왜 후반에 글에서 "따옴표"를 완전히 글에서 배제해버렸나요. 처음에는 마물의 대화를 표현하는 건 줄 알았는데 후반에는 무슨 이유인지 따옴표가 사라집니다. 물론 없다고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앨 이유는 없는데 말이죠.
뭐 대충 생각나는 의문점만 해도 이 정도입니다.
4. 구성
뭐, 굳이 말하자면 결말을 위한 암시와 복선 등이 잘 마련되어 있었던 건데 이름없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지도자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이게 다 외계인 탓입니다! 모든 건 설계되어 있었던 운명이야! 와 과거에 존재했던 다른 문명(마물족) 드립. 그리고 보면 마물이나 인간이나 정황상 똑같이 지구 멸망시킨 것 같은데 인간만 나쁘게 표현된다거나, 뭐 기타 등등의 문제.
게다가 단군신화가 모티브인데, 단군신화의 핵심이 되는 '쑥과 마늘만 먹으며 인내'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단군신화는 환웅이 하늘을 주관하는 우사, 운사, 또 누구더라, 어쨌든 날씨 주관하는 아무개랑 내려온 것도 있는데 그건 또 어디로 갔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단군신화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넘어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5. 총평
객관적으로 봐서 글 퀄리티가 그리 나쁜 것 같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로써 정석적인 걸 썼다는 느낌. 그런데 광고하는 '한국형 판타지란 무엇인가! 고질적 화두에 던지는 가장 스타일리시한 대답' 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뭐 소울기어 브레이커의 '사상 최강의 라이트 노벨 프로젝트' 보다는 낫지만요.
솔직히 저도 이게 재밌는 건지 재미없는 건지 헷갈리네요. 그냥 평작. 그리고 그 중에서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물으라면. 그냥 턱걸이에 걸친 합격을 주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 괜찮은 걸로 봤으면 좋겠네요. 흐리호우 정도를 원했는데 말이죠.
하지만 이 반시연 작가의 글이나, 노블엔진 팝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대해서는 정말로 높게 평가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와 시도로써 계속 앞으로도 많이 봤으면 좋겠군요. 다음에 나올 보르자 작가의 글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