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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이 작품. 약자로 여동발매라고 할까요? -여동안되도 괜찮을 것 같네요- 는 일전 시드노벨 단편집 '방과후에 약속한 소녀'에 있었던 단편을 장편화 한 물건입니다. 그 당시 그 단편의 퀄리티는 상상을 초월한 물건이었습니다. '이런 작품을 축전 단편으로 쓰는 작가는 무슨 괴물인가'생각했을 정도였죠. 그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저는 그때까지 마음에 없었던 개와 공주를 구매하게 되었고, 지금도 나름대로 괜찮은 작가를 찾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NZ작가는 에피소드나 캐릭터성을 짜내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기 때문에 러브 코미디라는 장르에 어울리기도 하고, 1권이 제대로 나온다면 앞으로의 후속권도 기대해볼만 하겠죠.
2. 개괄적인 평가
약간 심심한 작품이 나왔네요. 전작인 개와 공주를 수위의 한계에 도전하는 주지육림 하렘물로 만들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렘 러브코미디를 표방한다지만 오히려 청춘물에 가까운 느낌도 나네요. 개와 공주도 일단은 청춘물이었죠.
가장 좋다고 느꼈던 건 가벼우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문체였습니다. 물론 엄친아가 한 반에 부대로 있는 건 현실적이지 못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현실감은 자연스럽다는 이야기입니다. 작위적인 설정을 일부러 설명하거나 하는 것도 없고 개와 공주처럼 괴상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 더 좋게 느껴졌어요. 애초에 1인칭이다보니 3인칭과 1인칭을 오가는 그 특이한 문체가 거슬리지 않았다는 점도 있군요.
캐릭터도 나름대로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일러스트에서 느껴지는 '어라 나친적인가'하는 오라는 상당히 적습니다. 메인 히로인 중 하나인 백능파(금발+부자+외톨이)가 게임기를 잡고 게이머 속성이 추가됬을 때는 흠칫 했습니다만, 백능파는 미연시를 하지 않고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러브코미디는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주위와의 인간구도가 더 중요한 거니까요. 그리고 그걸 제하더라도 백능파도 충분히 개성이 있는 히로인입니다. 적어도 세나 마크 2는 아니에요. 반장은 요조라가 아니고요. 하지만 백능파는 단편에서는 백발이었는데 왜 금발로 바꾼 걸까요. 백발이라서 백능파 아니었나요? 단편처럼 백발에 마빡 속성도 상당히 괜찮았을텐데, 굳이 금발로 만들어서 문제와 논란이 생긴 점은 좀 아쉽네요.
하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해도 충분히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심심하고 작가가 스스로 페이지에 제약이라도 걸었는지 전개가 미친듯이 빠르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 정말 칭찬해야 할 것은 어쩌면 심심한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자극적인 내용을 넣지 않고, 자극적인 구도와 소재를 만들지 않고 제대로 개성적이고 재밌는 소설을 만들어 냈으니까 말이죠. 작가가 러브코미디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봐야겠죠. 일단은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3. 러브코미디의 본질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실수하는 것 중 하나는 러브코미디를 짤 때 소재와 특이한 캐릭터에만 집착하는 것에 있어요. 하지만 말입니다. 특이한 소재와 특이한 캐릭터는 무한대의 조합을 만들 수 있어요. 정 뭐하면 초끈이론을 소재로 한 공대개그 럽코를 만들어도 돼고 탁자와 플라타너스 나무를 모에화 시켜서 히로인으로 삼아도 되겠죠. 아니면 등장인물들의 성별을 한 3번쯤 꼬아서 카오스 섹스 럽코를 만들어도 될 거고요. 하지만 말입니다. 그건 전적으로 무의미합니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소재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얼마나 활용해서 뽑아내느냐에 달린 것이고(소녀킬러처럼 구색만 bl인 건 안 됩니다), 개개인의 캐릭터보단 인간관계와 구도, 성장이 더 중요하거든요. 그렇게 특이한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주인공과 각각 1:1로 대면만 하게 만들면 정말 재미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이게 정말 중요한 부분이죠. 거기서 독자를 대변하는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도 정말 중요한 요소 중 하나고요.(꼭 주인공이 독자를 대변할 필요는 없긴 하지만)
그런 점에서 여동발매는 기존에 있었던 캐릭터와 소재를 분명히 재탕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관계는 분명히 새로운 것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여자에게 별 관심이 없는데 여동생 때문에 여자와 엮이게 되는 게임광 주인공, 주인공의 연애를 계속 도와주면서 자신의 연애전선은 죽을 쑤고 있는 독설가 반장. 그리고 2번 히로인인 부자. 음. 어? 얘는 뭐가 특별하죠? 뭐 그래도 부자 캐릭터 치고는 착합니다. 그리고 흑막으로 보이는 성과제일주의의 이사장과 꿍꿍이가 있어보이는 주인공의 여동생 등 누구나 한번쯤 건드려보는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구도와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그리고 작품의 개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작품은 남자가 못나고 주위의 여자가 우월할수록 독자들의 대리만족을 시킬 수 있다는 원칙을 정말 철저하게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거든요. 2권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1권만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충분히 잘 써졌다고 봅니다.
4. 아쉬웠던 점
일단 전 이번에도 시드 편집부의 끝없는 무능을 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뭡니까. 33페이지의 일러스트는. 돈가스집에서 얘기하고 있는데 일러스트는 학교인 이 비정상적인 상황! 지난번 소울기어에서는 공원 벤치에 있었던 주인공을 버스 정류장으로 순간이동 시키기도 했고 방과후 미술실에서는 왼손잡이가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오른손으로 바꿔놓기도 했고 도대체 그냥 글을 조금만 읽어도 알 수 있는 이 오류는 왜 수정이 안 되는 겁니까! 작가는 말하지 않았나요. 일러는 눈치채지 못했습니까! 도대체 왜 이런 오류가 생겨나는 거죠?
그것 말고도 확실히 임팩트를 팍 끌만한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나.(앞서 말했듯이 상당히 심심한 작품입니다) 개와 공주의 백세군처럼 이번 작의 주인공도 독자의 이해를 아득히 초월하는 괴인이라는 점은 좀 아쉽군요. 작품의 분량도 NZ작가답지 않게 적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뭔가를 더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그런 것 말이죠.
5. 총평
글 잘 썼어요. 아주 재밌다거나 정말 이 부분이 최고라는 점은 없었고 오히려 2번 에피소드의 메인 히로인인 물감의 개성없고 어디서 본 듯한 과거는 좀 아쉽긴 합니다. 그래도 NZ작가니까 일단은 지켜볼 필요가 있겠죠.
하지만 NZ작가는 개와 공주에서 노선을 이상하게 갈아타고 매 권마다 똑같은 내용만 반복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책도 크게 보면 개와 공주의 불행소녀 구출물에서 진보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도 주는군요. 이 글은 과연 더 진보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전 이 작품에 충분한 합격점을 주겠습니다. 충분한 시간만 준다면 이 작품도 개와 공주만큼은 흥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