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딱 이맘때였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입니다. 그 무렵 제 누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영화를 배우고 있었는데요, 덕분에 저도 영화에 조금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누나랑 같이 부산영화제도 쏘다니고 그랬죠.
2년 전 그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천에서 국제영화음악제가 열린다는 걸 알고 한번 가봤죠. 마침 여름방학이기도 했고요. 누나는 졸업용 단편영화를 한참 찍고 있었는지라 혼자 갔습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값싼 콘도를 예약했습니다.
콘도라기보단 그냥 게스트하우스였지만, 영화제 열리는 곳에서 멀지 않았고, 뭣보다 호수 바로 근처였거든요. "새벽에 일어나서 호숫를 바라보면 엄청 낭만적이겠지?"라고 생각한 겁니다. 전 그런 게 좋더라구요ㅋ 제가 머문 방은 호수와 바로 맞닿아 있었는데요, 발코니로 나가면 진짜 몇 미터 앞에서 호숫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영화제 첫날, 그러니까 개막식이 끝나고 나서였습니다. 개막식은 뭐 괜찮았어요. 도중에 비가 내린 것만 빼면요. 제천영화제는 야외에서 하더라구요. 호숫가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개막식이 치뤄지는지라 그 나름 멋졌습니다만, 그거랑 별개로 관객들은 비에 홀딱 젖었죠ㅡㅡ 영화제 포스터를 잔뜩 겹쳐서 우산처럼 썼습니다;; 전 개막식이 끝나고 게스트하우스로 달려 갔고,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물로 샤워했어요.
한밤이었습니다. 저는 막걸리에 취한 채 글을 썼습니다. 아까 말한 그 발코니에서요. 호숫물이 서로 부닥치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습니다. 전 노트북 모니터 앞에서 웽웽대는 모기랑 싸우면서 타자기를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언가가 물 밖으로 나왔어요. 물이 주르륵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 몸이 이상한 신호를 보냈습니다. 살갗 전체의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꼭 공기가 살갗을 끌어당기는 듯했습니다. 심장이 뛰었습니다. 모니터의 메모장에 쓰인 활자들이 글자로 인지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 고개를 돌렸죠. 봤습니다. 지금도 떠올리면서 소름이 돋는 그걸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사람의 형태를 띈 무언가였습니다. 제 나이 또래 여자의 몸. 그게 도마뱀처럼 팔다리를 양 옆으로 빼고, 손바닥이랑 정강이를 땅바닥에 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번씩 움직일 때마다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온 허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면서 물가를 배회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못할 동작이었습니다.
그걸 봤습니다. 나체였습니다. 물에 젖은 피부에 흐트러진 머리. 머리칼이랑 더러운 물풀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아래로 축 늘어진 가슴이 바닥에 이리저리 쓸렸습니다. 그게 걸을 때마다 젖은 머리카락이 지 등짝 따위에 부닺히면서 찰박거렸습니다. 얼굴은 안 보였습니다. 그건 제 바로 몇 미터 앞에서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전 타자기에 손을 댄 자세 그대로 몸이 굳었죠. 두개골에까지 정전기가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느낀 공포를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저것이 나한테 고개를 돌리면? 내 쪽으로 득달같이 기어오면?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상상력이 저를 짓밟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가에 정지해 있더니, 이윽고 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틀째에 영화제 행사를 좇아 제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말을 트게 된 몇 명한테 제가 어제 겪은 일을 설명했지만, 다들 그냥 재밌는 괴담 듣듯이 넘기더군요. 어쩌면 제가 너무 어설프게 설명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계속 그 방에 머물지 말지만 고민했습니다. 일단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단 영화제 내내 머물기로 이미 예약해버렸고, 좀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게 귀신인지 아닌진 몰라도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제 상식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본 것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헛것을 본 건 아니었습니다. 감각이 너무 뚜렷했으니까요.
저는 휴대폰을 녹음상태로 전환할 준비를 해두고――혹시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나중에라도 알 수 있게 하려고요――발코니에 나왔습니다. 그날밤엔 그거 안 나왔습니다. 하지만 전 안심하지 않았죠. 언제라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도 그랬고, 저는 제천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제 사흘째에 제 방 발코니까지 기어 올라온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열 살 가량의 소년이었습니다. 그것의 얼굴을 보건대 방 내부와 저를 신기해 하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호기심을 느꼈을 지 모르겠어도 저는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혹시 저를 따라오지는 않았는지 서울에 올라와서도 몇 주일은 무서워했습니다. 흥미라니, 제가 미쳤었지요. 다행히 그후로 저는 그런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밤에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 때면, 괜히 고개를 숙여 책상 아래를 살펴본다거나 등 뒤를 본다거나 합니다. 그것이 책상 아래에 몸을 웅크리고 있지 않나, 등 뒤를 기어다니고 있지 않나, 상상되거든요. 상상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머릿골이 지끈거립니다. 한시하 일행 분께는 괴담이겠지만, 제게는 일생 지워지지 않는 공포입니다. 제가 제천의 호수――청풍호입니다――에 갈 일은 앞으로 절대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