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챕터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란 사실 거기서 거기죠. 결말에 가서 독자의 뒤통수를 힘껏 후려갈길 대단한 반전이 준비되어 있더라도, 1챕터에서는 밑준비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배경과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앞으로 이야기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서, 독자를 작품 속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 1챕터의 역할이고 숙명입니다. 

그런 면에서, 홀릭패밀리님의 『양아치인 내가 영웅이 되었습니다?』 1챕터는 적어도 여기에 실패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등장인물 소개도 잘 하고, 킹덤 게임 같은 복선도 열심히 깔았어요. 주인공 일행이 갑자기 클라리스가 얽힌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건 좀 어색한 전개라고 생각하지만요(예전에 클라리스와 무슨 일이 있었다든가, 아무튼 양아치가 갑자기 국제적 문제에 뛰어들게 하려면 뭔가 이유가 있어야겠죠). 그래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질 정도면, 스토리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1챕터에 한정하자면 말이죠.

다만 그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 특히 배경 설정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클라리스라는 거대기업의 영향 때문에 사회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면, 독자가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이 세계를 더욱 실감나게 보여 줄 필요가 있어요. 프롤로그에 설정 몇 문단을 던져놓는 것만으로는 한참, 한참 부족합니다. 작중 인물의 대화나 상황 묘사 등을 통해서 더 자연스럽게 나타내 보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쪽의 부자 양아치들이 등장하는 장면, 클라리스의 군인들이 시장을 점거한 장면 등이 어색해 보일 뿐입니다. 특히나 부자 양아치들은 사극에서 튀어나온 사람 같은 말투를 쓰는데, 아무리 사실상 신분제 사회가 되었다곤 하지만 이런 건 어쩐지 우스꽝스럽게 보이거든요. 

* 사실 읽으면서 제일 괴로웠던 부분은, 문장이 너무 긴데다가 비문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문장을 적당히 끊어주시고, 쉼표를 적극 활용하세요. 아무튼 "익숙한 소리에 등 뒤로 고개를 돌리자 내 눈에 들어온 전체적으로 연한 갈색에 하얀색을 바탕에 둔 체크무늬의 교복차림에 오른팔에 매어진 푸른색 선도부 마크가 잘 어울리는 여자의 예쁜 오렌지색 눈이 바로 내 얼굴 앞에 있었다" 같은 문장은 쓰면 안 됩니다. 죽어도 안 됩니다. 전반적으로 문장이 좀 나쁘니까, 책을 많이 읽으시면서(라노베 말고 다른 문학작품 중심으로) 문장력을 길러보세요. 이건 연습하면 확실히 늘어요!

* '사립 세인트 고등학교'도 안 됩니다. 죽어도 안 됩니다. 영어에 자신이 없으시면 그냥 안 쓰셔도 돼요. '세인트'는 (주로 가톨릭)성인 앞에 붙는 단어기 때문에, 세인트 고등학교라는 말은 그냥 이상하게 들리거든요. 세인트랑 고등학교 사이에 이를테면 베아트리체라든지, 막달레나라든지, 크리스티나라든지, 아무튼 아무 이름만 넣어도 괜찮아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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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챕터만 읽은 시점에서 딱히 별점 평가 등을 덧붙이지는 않겠습니다. 잘 읽었고,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