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방문은 닫혀 있었다.
이 문 너머에 그 녀석이 지금쯤 또 무슨 꼴로 처박혀 있을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군.
익숙한 동작으로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어제낀다. 안쪽의 공기가 이쪽으로 확 불어오며 진한 이성의 체취가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띵해지는 머리를 붙잡고 문턱을 넘어간다.
전체적으로 어질러져 있단 것은 평소와 같은 점이었다. 하지만-동시에 눈에 들어온 너무나도 뒤숭숭한 방 내부의 모습에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일단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아무 난방도 돌리지 않았는지 차갑게 식은 방바닥. 저쪽 벽에 난 창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그 아래 침대가엔 이 방의 주인(정서연)이 널부러져 있었다. 어쩐지 이불도 저만치 치워놓고선 휑하니 잠들어버린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가장 경악스러웠던 건 방 한구석에서 쌩쌩히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였다. 실로 엄청난 위화감을 발하고 있었다. 이 계절에 선풍기라니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일이야?
언제부터 돌아가고 있었을지 모를 선풍기는 심지어 강풍으로 맞춰진 상태로 웅웅대는 바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가 왔다갔다 왕복운동을 하고 있는 선풍기의 모터 부분을 잡아 본다. 뜨거웠다. 순간 델 뻔했다.
전원 버튼을 눌러 오랜 시간 혹사당하던 기계를 침묵시켰다. 슬립 타이머도 맞춰두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한 건가.
난 곧바로 침대로 다가가 정서연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정서연. 정서연!"
"으우......"
얼빠진 소리를 흘리며 얼마간 뒤척이던 그녀는 이내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대충 정신을 차린 듯하더니 다음 순간 눈을 크게 떴다.
"헉!"
그리고선 뭐에 혼자 놀라고서는 숨을 삼켰다. 나는 마음 속에 점점 불안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추궁을 시작했다.
"대체 뭐부터 물어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일단, 선풍기는 대체 왜 틀어놓은 거야?"
"으우우우우우..."
방금까지 자면서도 추워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으면서 대체 무슨 이유가 있었던 거야. 아무래도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대답이 나올 것 같았으므로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게 있잖아. 가끔은 바람을 좀 쐬고 싶어졌다고 할까!"
"밖에 나가면 되잖아."
"...그러긴 싫은걸."
"......창문을 열면 되잖아?"
"으-음. 그게, 바깥바람은 너무 차가워서..."
"........."
"아 그렇지. 왠지 모르게 인공적인 바람을 맞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어제는 그런 감성이었으부부아으히우우우우우 양소느로 땡기면 아파아아으아"
가차없이 볼을 죽 잡아당기자 약간 부어 있는 눈자위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그대로 울먹거리는 얼굴을 손으로 붙잡아 눈을 맞춘다.
"진짜로. 왜 그랬어?"
"......~~"
쓴 약을 억지로 들이밀어진 아이마냥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몸짓을 보이는 정서연. 그 기세에 주춤해 머리에서 손을 뗐다. 나로부터 눈을 피하며 그녀는 애원하는 투로 말했다.
"그냥. 안 물어보면 안 돼?"
아무래도 정말로 말하기 싫어하는 눈치다. 구태여 대답을 끌어내려 하면 그대로 지뢰를 밟아버릴 것 같았다.
그냥 넘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춥게 있으니까 그렇지-라고 말해줄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어느새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숨 넘기는 소리가 어쩔 도리 없이 새어나왔다.
"으...윽. 흑. 흐윽."
나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고, 그녀의 어깨 떨림은 점차 격해지더니 이윽고 울음이 터져나왔다.
"
"서연. 야. 정서연."
당황에 빠진 나는 길잃은 미아처럼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녀는 침대에서 계속 울음을 삼켰다. 어색한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그러기를 몇 분이 지났을까.
날 앞에 두고 한참을 울며 베개를 적신 그녀는, 울음을 다 토해내고 나선 빨갛게 부은 눈으로 나의 의문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죽으려고. 했어."
"......"
무거운 침묵이 잠시간 이어졌다.
".........선풍기로?"
잔뜩 움츠러든 상태로 정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문이 탁 막혀 내 앞의 소녀를 망연히 쳐다볼 뿐이었다.
----------------
선풍기 사망설이라는 한국의 고유문화를 소재로 채용해 한번 써보았습니다.
좀 너무 낡은 얘긴가?
어떤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