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합리화를 위해 상식선에서부터 말도 안 되는 억지 설정을 끌어다 쓰고 그 나름대로 무리수를 둔다면, 그러니까 스토리를 위해 상식을 뭉갠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비판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소설에 있어 '설정'이라는 것은 인물이 행동하는 개연성과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야 물론 인물과 사건과 배경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일부에 중점을 두기도 합니다. 보기 드문 매력적인 인물을 선호하는 사람, 혹은 현실적인 인물을 좋아하는 사람. 내지는 있을 법한 사건이라든가 있을 리 없는 사건을 간접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 현대를 배경으로 높은 공감대를 원할 수도 있고, 판타지나 SF로 또다른 세계를 선호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은 설정의 치밀함에 대해 중점을 둔 시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분들은 자신이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분야가 있을 것이고, 잘 아는 분야가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작품에서 이런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대한 내용이 크게 어긋나 있으면 물론 썩 기분이 좋을 리 없겠죠. 설정부터 '잘못된' 내용이고 현실적이지도 않은데, 인물들도 사건들도 그런 '잘못된' 설정을 바탕으로 움직이니까요. 저라도 제가 아는 분야를 가져다 틀린 소리를 하면서 사건이 진행된다면 개운하게 볼 자신은 없네요;;
하지만 소설이라는 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시로 나왔던 금서목록은 마법과 주술과 초능력과 과학 등등, 딱히 SF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굳이 따지면 (과학과 마법 등을 포함한)판타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건 그냥 그 사람이 만든 세계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이라고 보기보다는 과학적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과학적인 서술의 라이트노벨은 (특히 금서목록 등) 인물 개개인의 능력이 천차만별이고 몸을 움직이는 것 뿐만 아니라 능력의 발휘까지 그 인물의 활동이자 행동의 수단이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무런 설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편이 더 독자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그리고 과학적인 사실을 제대로 공부해서 적용했을 때 작품의 배경이 있을 수 없다면 그 작품은 폐기되어야 할까요? 자신이 가진 지식을 부러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이 없을 리는 없겠지만, 최소한 모든 '이론에 맞지 않는 설정'이 들어 있는 작품 모두를 '쓰레기'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을 만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물론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보다 사실에 부합하는 설정을 원하는 것, 그리고 명백하게 틀린 설정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누구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이 이렇게 격해진 건 '전공자가 아니면 건드리지도 말라'는 뉘앙스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런 의도는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과학적인 내용은 저는 전혀 모르고, 다른 분들처럼 반박할 지식도 없습니다. 전공도 뭐 다르고요. 하지만 적어도 '공상과학대전' 내지는 '공상비과학대전'은 작품에 대한 과학적 고찰과 그 결과를 다루고 있고, 그 설정상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 '그런 설정을 넣을 거면 제대로 알고 넣으라'는 메시지는 담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작가는 공상과학의 현실적 실현을 로망으로 삼고 이를 위해 설정을 계산해보고 지적하는 거죠. 지망생인 입장으로서 설정에 오류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실제로도 필요한 사항입니다.
하지만 라이트노벨이라고 해서 논리의 부재가 허용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법도 초능력도 작가만의 세계에서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있을 것이고(특히 학원물이라면 더더욱), 그에 대해 독자에게 자신의 세계와 인물들과 사건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를 설명할 필요도 있을 겁니다. 반면 진행하라는 스토리는 뭐 애니메이션화 하면 한 편도 안 나올 분량인데 지루한 이론 설명만 구구절절하면 인물이 행동하는 걸 보고 싶은데, 인물한테 그냥 마법 좀 쓰게 하면 되지 왜 이론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설명이나 작품들도 존재합니다. 대체 언제까지 읽어야 인물들이 움직이나? 싶고요.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좋아할 사람도 있는 거고, 싫어할 사람도 있는 겁니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작품에 대해 비판할 권리가 있고, 이는 굳이 말하자면 취향인 거죠. 그렇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비판한 내용을 그 작가에 대한, 그리고 그 작품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나 가치로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독자인데 비판할 수도 있지! 그렇습니다. 내가 그렇게 느꼈으면 그런거지! 그렇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죠. 하지만 여기서 "넌 왜 그게 괜찮아? 내가 안 괜찮은데?"하고 강요하게 되면 그건 비판이 아니게 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관점을 확실히 해야 작품이 뼈대를 갖고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물론 지적을 수용할 여지는 있어야죠), 독자는 자신의 관점이 절대적이며 다른 독자도 그런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영화 하나를 두고도 평범하게 재미있게 보는 사람이 있고 쓰레기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라이트노벨 하나를 두고도 얼마든지 그렇게 호불호가 갈리게 되겠죠. 하지만 보다 확실한 이론을 좋아하고 검증하려 한다고 해서 로망을 모르는 독자로 받아들여져서도 안 되고 이론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인물간의 감정과 사건에 집중하는 사람이 비논리적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각설하고, 쓸데없이 늘어지는 글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만(...) 요점은 작품이나 작가를 비판하더라도 그 관점을 남에게 강요하는 비난이 되어서는 안 되고 자신과 다른 관점의 비판을 본다 하더라도 그 비판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내용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