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이유야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관심에 목마른 사람임. 모든 일엔 예외가
있다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음. 문학적 소신이고 인간 내면에의 탐구고 그럴듯한 말 늘어놔봤자 기저에 깔려있는
욕구는 다 저거임. 그리고 대다수의 인간들은 굳이 소설 한 편을 완성하지 않아도 그 욕구를 채울 수 있음. 그래, 그게 잘못인가? 커피캔 박스채로 사놓고 머리 쥐어뜯어가며 키보드 두들기는 대신, 설정 생각하고 시놉시스 짜고 남들한테 보여주는것만으로 만족하면? 그럴리가. 소설가가 될 필요가 없는 사람한테 가서 소설가의 자세니 이 바닥 우습게 보지 말라느니 하고 있으니 벙찔 새도 없는 것.
위 문단에서는 설정놀음 하는 사람=소설 못 쓸 사람, 쓸 생각 없는 사람으로 가정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임. 애초에 설정놀음이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 자체도 의아한데, 그야 그 시간에 습작 한 편을 쓰는 편이 백 배 낫긴 하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아예 무익한 것으로 취급할 이유는 또 뭐임. 긴 말 필요없이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말에서 다상량이 의미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 필사라는 -개인적으로는 효과를 믿지 않지만- 단순히 문장과 구조를 뇌에 새겨 넣을 뿐인 '작업'조차 필력을 올리는 방법이라 널리 추천되고 있는데, 설정놀음은 오히려 권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이건 최소한 뇌에 자극을 주긴 함.
그리고 설령 위에 내가 끄적여놓은 게 순 개소리라 쳐도 남이 뭘 하든 위법이나 내규 위반이나 큰 민폐가 아닌 이상 신경을 쓰지 말아야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