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3사 공모전의 재투고 금지조항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현재 국내의 모든 라이트노벨 공모전은 '재투고', 즉 권리 문제가 없지만 이미 타 공모전에 투고되었던 원고를 다시 투고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 조항들에 대하여 반대하시는 분들도, 또는 찬성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졸문이 우리가 무엇을 찬성하거나 혹은 반대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조금 더 알고,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하여 모두에게 더 나은 결론을 내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작가 지망생분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 재투고 금지조항에 대하여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지망생의 입장에서 생각하시고 행동하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조항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재투고 금지조항에 대한 3사의 공식입장
(링크) 참조).
3사 공모전이 모두 재투고를 금지한다는 것은 우리 지망생이 쓴 글이 공모전에서 탈락할 경우 그 작품이 다시 빛을 볼 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부 공모전들은 전면적인 개작을 거칠 때에 한해서 재투고를 인정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것은 지망생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 상당히 애매하고 주관적인 기준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기분을 느끼시는지는 물론 개인차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것이 상당히 괴롭습니다. 아마추어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창작자라면 누구나 작품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로 가망없는 작품에 대한 애착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애착은 작품을 끌어나가고, 더 낫게 만드는 데에 강력한 동기를 줍니다.
게다가 한 권의 라이트노벨을 완성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박이고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이야기였습니다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작가 지망생에게 라이트노벨을 한 권을 쓰는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하실 줄 믿습니다. 적어도 두세 달 동안 매일 여러 시간을 들여야 하고, 무한하지만은 않은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공모전이 말하는 '전면 개작'에 필요한 노고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쓰인 글이, 예를 들어서 공모전과의 방향성 차이 탓에 떨어지고 폐기된다면 아쉽지 않겠습니까(지망생이 투고할 공모전을 선택하는 기준은 공모전의 방향성 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작가 지망생들은 우리가 재투고 금지조항에 의해 어떠한 이득을 얻는지를 생각해 볼 일입니다. 또 만약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득이 없다면, 우리가 누구를 위하여 재투고 금지를 옹호하였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재투고하는 원고는 새로 쓴 원고에 비하여 반드시 열등한 원고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심사평은 새로 쓴 원고가 아니라 이미 투고한 바로 그 원고에 대한 조언이기 때문입니다. 또 대부분의 경우, 이 원고는 새로 쓰는 원고에 비하여 더 많은 시간을 들였을 것이기도 하니까요.
한국 라이트노벨 팬분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매우 극단적인 사례입니다만, 여러분 중 어떤 분들은 재투고 금지조항과 관련하여 일본의 어느 소년만화의 연재에 관련된 뒷이야기를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 만화는 먼저 어떤 메이저 만화잡지에 투고되었지만, 만화와 잡지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되었습니다. 결국 이 만화는 다른 잡지에 재차 투고되어 연재되었고, 각종 상을 휩쓸며 상업적으로도 신인치고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매우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분명히 하나의 가능성이며, 만약 이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었고 따라서 저 만화가 출판되고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더라면 저를 포함한 많은 분은 분명히 어느 훌륭한 만화를 접하고 감동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한국 라이트노벨을 사랑하시는 분들 중에는 이러한 가능성을, 어느 훌륭한 라이트노벨을 놓치고 싶지 않으신 분들이 분명히 계시리라 믿습니다.
또 하나, 한국 라이트노벨의 작가풀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성장할 여지가 다분하고, 또 성장해야만 합니다. 재투고 금지조항은 작가풀의 다양성을 배양하기보다는 한곳에 묶고 조각내는 일입니다.
지금보다 더 재미있는 한국 라이트노벨이 한달에도 수십 권씩 발매된다면 분명히 즐겁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국내 라이트노벨 출판사과 관련된 분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재투고 금지는 어느 한 곳이 시작하면 결국 모든 공모전이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이를 따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세 곳의 출판사와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는 사실 재투고 금지에 찬성하지 않는 분들이 계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3사가 모두 재투고를 금지하는 지금의 상황과 비교하여, 모든 공모전이 재투고를 허용하는 상황이 자사에, 그리고 한국 라이트노벨에 더 이롭다고 판단하시는 출판사는 이에 대하여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저희 라이트노벨 팬과 작가 지망생은 분명히 이를 호의적으로 평가하리라 확신합니다. 또 3사 간 협의를 통해 모든 공모전이 재투고를 허용하게 된다면 더 바람직하겠습니다.
모든 라이트노벨을 사랑하시는 독자분들께 이 졸문을 읽어주시는 데에 대하여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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