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좀 깁니다. 내용이 납득이 안 되어서 못 읽겠다는 분은 모르겠으나, 길어서 못 읽겠다는 식의 덧글은 달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영화든 소설이든 "이 장르는 XX다!" 라고 뚜렷한 정의를 내리긴 어렵습니다. 영화 트랜스포머를 보고 이건 휴먼드라마다! ... 라고 말하는 핀트가 완전 빗나가는 정의가 아니라면 대부분 음악이나 소설등에서 장르라는 건 그 구분을 확실히 하기 힘들죠.
게다가 이런 장르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학자나 그 분야에 나름대로 식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예기지 일반 독자는 장르 구분 자체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저도 제가 듣는 음악의 장르를 물으면 그 것에 대한 대답은 하기 힘듭니다. 그냥 좋은 건 좋은 거죠)
그런 이유로 라이트 노벨에 대한 정의도 초창기 NT노블을 시작으로 국내 도서 시장에 등장했을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냥 삽화가 들어간 들고 다니기 좋은 크기의 소설. 딱 이 정도가 라이트 노벨에 대한 정의였죠. 구성이 어쩌고 1권 완결이 어쩌고 하는 문제는 독자만 존재하던 시기에는 별 상관없는 예기였습니다.
사실, 찾아보진 않았어도 이와 비슷한 시도는 국내에도 여럿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본에선 라이트 노벨이 하나의 분야로 정착이 된 데 비해 국내에선 일본의 원작소설을 수용하는 형태로 진행이 되어 대중화가 되지 않았을 따름이죠. (이하 라이트 노벨은 라노벨이라 칭하겠습니다. 라노베는 왠지 일본풍 약어라서 -_-)
만약 NT와 같은 라노벨이 서점에서 하나의 코너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면, 굳이 이 장르에 대해 정의를 확립한다던가 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라노벨은 소설 자체의 힘이 아닌 애니메이션의 힘을 빌었다고 해도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에 기존의 장르 소설을 퍼내던 출판사들이 하나의 대안으로 인식하면서 디엔씨미디어의 시드노벨이 "공모전" 을 여는 것으로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라노벨은 대체 뭐냐?" 라는 문제가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라노벨을 쓸 생각이 없이 독자층에만 머무른다면 이런 장르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삽화? 1권 완결? 그냥 재미있고 내 취향에만 맞으면 그만 아닌가? 의 문제일 뿐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나리오와 스텝들의 제작과정을 이해할 필요 없이 영화 자체를 즐기면 되듯이 라노벨도 그냥 즐기면 됩니다. 굳이 구분하겠다면 이게 SF냐 그냥 개그물이냐 정도의 구분이면 충분합니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보고 싶어!...라고 하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독자의 자유니까요.
그러나 라노벨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는 꽤나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라노벨이 뭐지? 그냥 1권 짜리로 쓰면 되는건가?" 라는 생각으로 현재 공모전이 진행중인 시드노벨의 문을 두드린 분이 많았고, 결과는 대부분 실패였습니다. "1권으로 끝냈잖아!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거죠?" 라는 말로 심사단과 의견충돌을 일으키다 다른 판타지 연재 사이트로 떠나는 분들도 여럿 있었죠.
장르의 특성을 이해 못한 분들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소재와 이야기만 괜찮다면 그 걸 억지로 라노벨 형식에 맞추기 보다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형식으로 표현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억지로 형식에 얽메이는 것 만큼 창작을 방해하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난 라노벨에 도전해보겠습니다!" 라고 마음 먹고 거기에 맞추기로 했다면 어떻게 되었든 자신의 작품(설령 이미 다 써놓은 작품이라도)을 그 형식에 맞출 필요는 있습니다. 100M 달리기 경기에 와서 마라톤을 하겠다고 생때를 부려선 안 된다는 거죠. 게다가 관중들도 100M 경기룰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마라톤을 뛰었다간 바로 물병이 날아옵니다.
라노벨과 일반적인 장편 판타지(양판소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습니다)는 룰이 다릅니다. 이 룰을 무시할 순 없느냐...무시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라노벨 독자들은 이미 장르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하고 있든, 그게 아니든 여러 라노벨을 읽으면서 무의식적에 "잘은 모르겠지만 라노벨은 이거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미 나온 국산 라이트노벨 중에서도 "이건 뭔가 아니다" 라는 식의 이야기가 흘러 나오는 거죠.
음악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락음악과 발라드를 예로 들어봅시다. 똑같이 사랑을 주제로 노래하더라도 표현방법에 따라 락과 발라드로 나뉩니다. 즉 소재가 같다고 형식까지 같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형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적합한 주제는 분명 다릅니다. 락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가사를 쓸 순 있어도, 발라드로 사회고발내용을 담지는 못합니다. 반대로 사랑을 노래하는데 있어선 락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데는 발라드가 좀 더 점수를 얻습니다.
라노벨과 장편 소설의 차이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그럼 그 차이란 무엇인가?
사견에 불과합니다만 몇 가지를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 라노벨은 형식의 문제지 소재의 문제가 아니다.
1권 완결에 앞서 이 부분부터 짚어봅시다. 사실 라노벨로 쓸 수 있는 소재는 제한이 없습니다. 세상이 쓰레기라는 내용을 발라드로 담지 못하는 데 비해(...) 라노벨은 뒤에서 말하는 형식만 갖춘다면 어느 소재든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제로의 사역마의 경우도 우리나라에서 지겹게 우려먹던 "이계진입" 을 소재로 쓰고 있습니다. 슬레이어즈와 마술사 오펜의 경우 장르만 놓고 보면 "근대문물이 다소 혼합된 중세 판타지"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위의 세 작품은 라이트 노벨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 의문을 가지는 분이 많은데 "슬레이어즈" 는 되는데 왜 내가 쓴 드래곤과 마법검사 나오는 이야기는 안 되는 겁니까? ...됩니다. 그 걸 소재로 선택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문제가 생겼다면 뒤에서 말할 "1권 완결"과 "완성도" 의 문제라는 거지 이야기 자체가 그릇된 건 아니라는 거죠.
젬스노벨과 다른 출판사도 라노벨을 내는 상황에서 시드노벨 하나만 놓고 말하긴 그렇습니다만, 시드노벨의 경우 초창기 공모전 작품의 장르를 제한했던 건 시드노벨에서도 밝혔듯이 "판타지와 이계진입 소재는 이미 시중에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즉, 굳이 라노벨 양식이 아니더라도 게임판타지, 기타판타지 등으로 이미 시장에 포화상태인 상태에서, 그 한계를 극복해보고자 라노벨 시장에 도전했는데 형식만 바꾸고 소재만 같다면 출판사 입장에서도 달갑지만 않습니다.
그래서 제한을 두었던 거고 지금은 이런 소재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라노벨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판에 박은 이계중세판타지에 질려서 넘어온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이건 "라노벨 중세판타지" 입니다라고 내민다면 작품 자체가 아무리 좋다한들 편견의 벽부터 넘어야 하는 난제가 있습니다. 출판사 역시 이 부분이 부담스러운거죠.
2. 1권 완결. 분량이 아닌 기승전결의 문제
시드노벨에서 공모전이 시작된지 근 6개월이 넘었는데도 심사단이 "1권 완결" 을 강조하는 걸 보면 아직도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 않는 부분인 듯 한데.반복멘트입니다만 라노벨의 가장 큰 특징은 "기승전결로 1권으로 스토리 마무리" 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권으로 이야기가 끝나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또 질문이 들어오는데.
"그럼 총 3권으로 끝난 유령왕은 뭔가요?"
"슬레이어즈도 이야기가 이어지는 거 아닌가요?"
"하루히도 뒤로 이야기가 이어지던데요?"
"그럼 단편 쓰라는 이야기?"
물론, 라노벨 중에서도 장편 판타지와 비슷한 전개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 이 경우 소재가 판타지.) 그래도 확실한 차이가 있는데
일반적인 장편 판타지 : 에피소 / 드. 에피 /소드. 에 / 라노벨식 판타지 : 에피소드 / 에피소드 / 에피소드 /
조약한 표현이긴 힙니다만, 일단 이렇게 구분이 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장편 판타지의 에피소드와 라노벨의 에피소드는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건 바로 각 권 에피소드의 클라이막스의 존재 여부입니다.
예를 들어 마술사 오펜(아키타 요시노부 작)의 경우 전체적으로 아자리를 쫓으며 대륙 전체가 처한 위기를 구하는 내용이지만 1권 하나만 놓고 보면 기(오펜이 저택습격 사건에 휘말림) - 승(그 사건을 추격) - 전(반전-클라이막스. 배후에 아자리가 있었음을 알고 전투) - 결(아자리와 관련된 사건 종결. 이후 여행 시작) 으로 "아자리 사건" 이라는 하나의 독립 에피소드로 존재합니다.(이후 2권에선 살인인형과 관계된 별도의 에피소드로 전개)
즉, 전체적인 20권의 내용중에서 1권은 기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그 자체로서 기-승-전-결의 포멧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이후 2권 3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가 어쩔 수 없이 2권 분량에 걸쳐 쓴 것도 있지만(그리고나서 후기에서 독자들에게 사과 엄청 했습니다 -_-..2권으로 늘어나서 죄송하다고) (기-승-전-결) / (기-승-전-결) / 방식으로 최종 에피소드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