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라고 하면 뭐 플롯이나 설정 짜는 거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그냥 백지 상태나 다름없는 흰 화면을 앞에두고 가만히 있는 상태요.

정말 길면 몇 시간이고 그 상태로 가만히 앉아 있곤 합니다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려워서요.

글 쓰기 이제 5개월 뒤면 3년차가 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이제부턴 어쩔지 ㅋ.ㅋ..

올해 10월달에 문뜩 나 자신이 무척이나 못쓴다는 걸 깨달아버렸습니다.

그 전까진 너 못써 라고 해도 오기 부리면서 무시하거나 애써 변호했거든요

근데 이젠 그럴 맘도 안 드네요

이것도 나름대로의 성장이라고 보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더 화가 납니다

내가 못쓴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이제부터 쓸 글도, 과거에 써왔던 글도 모두 발판이 되어버리니까요.

발판인 거죠. 나아가기 위한.

앞으로 몇 년이고 그렇게 발판을 쌓아 올려야 될지 모르고

그렇다면 제가 쓰는 작품들의 가치는 0...

단지 게임으로 치자면 퀘스트 깨러 가던 도중 무심코 잡은 슬라임, 아니 퀘스트 그 자체라고 할까요

레벨업에 도움은 되었겠지만

정말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이전까지의 저는 제 작품에 긍지를 느꼈습니다.

아니라면 한 작품에 일 년, 몇십만 자의 노력을 투자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겠죠.

그게 장난이었단 걸 알게 된 지금은

똑같이 행동할 수가 없게 됐네요 ㅋ...

순탄하게 움직였던 손에 망설임이 깃들고 난 뒤부터

저는 글을 쓰기 이전에 '노력'이라는 문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게 됐습니다.

차라리 이 시간에 다른 걸 하면 좀 더 생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라고 어떻게든 포기를 무마시키려 하죠

하지만 둘 다 거짓말이에요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더 신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 얼마든지 존재하고

생산적인 일이라면 공부나 알바가 있겠지만 나이도 미묘하고 무엇보다 의지력이 약한 제가 보통 소설 쓰는 시간(짧으면 3시간 길면 5~6시간)을 대체해서 그것들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니까요.

뭐 그 끝에 도달하는 결론은 매일 같지만요.

어쨌거나 쓸 수밖에 없다

언젠가 맺을 결실을 위해서.

지금까지 3년이나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래서 저는 마지못해 오늘도 '발판'을 만듭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없어질 그런 글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