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미국 스릴러 소설의 대가인 딘 쿤츠의 [남편Husband]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처음에 너댓장은 평화롭게 등장인물들의 한담이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고 다짜고짜 [네 마누라 인질로 잡고 있으니 200만 달러 준비해라.] 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주인공이 어영부영대자, 납치범들은 길가는 사람 한 명을 쏴죽입니다. 이 모든 장면이 읽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루어집니다. 굉장하죠?
책이라는 매체가 책끼리 경쟁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그것이 라노베 같은 순수 엔터테인먼트 상품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책을 삽니다. 대충 1만원 정도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기서 1만원 더 보태면 와우 한달 계정입니다. 아 요즘에 대격변이 한창인데 좀있으면 패치도 된다던데. 이런 책사서 뭐하나요. 그냥 와우나 할까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요는 매체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구입하면서 느끼는 만족이 다른 게임이나 영화나 만화 따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보다 높아야합니다. 물론 이건 좀 극단적인 경우긴 하지만, 어지간히 벌이가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게임 계정 넣거나 영화 한편 더 보거나 하면, 책 한두권 포기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내 책은 슬로우 스타터입니다. 후반에 반전이 죽입니다. 당신의 가랑이를 사정없이 흔들어 줄 만큼요! 라고 주장해도 소용없습니다. 독자가 책을 펴고 5분 안에 집중하지 못하면 실패라고 봐도 좋습니다. 이것도 좀 극단적이지만, 자신이 어느정도의 네임밸류와 팬층을 쌓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제 생각엔 이 기획의 목적은 [노련하게 이야기를 진행 시킬 수 있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초반부의 시선을 사로 잡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갈등을 이끌어 내야하지만 생소하지 않아야하고 이해하기 쉬워야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다짜고짜 설정과 고유명사부터 들이밀거나, 꿈 이야기, 날씨 이야기, 가족들과의 한담, 별 의미도 없는 장면들의 세세한 묘사 등은 모두 모두 배척해야할 것들입니다.
이 기획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분들도 많은데, 적어도 초반 기선 제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능력을 끌어내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겠지요. 노골적으로 말해서 뒷심이 부족한 - 그렇지만 어느정도 기대할 만한 - 후진을 미리 확보해서 관리 교육하겠다는 의도 같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프로 집단에게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제 사설이고 얼마든지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잘난 척하는 너는 뭐냐? 라고 물으시면 버로우 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저는 글에 뜻이 없거든요. 그냥 읽는 것을 즐길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가길래 와서 독자 입장에서 좀 떠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럼 좋은 작품들 기대하겠습니다.
:: 그리고 이렇게 평소에 사소한 게시판에 글 하나 남기는 것 부터 맞춤법이나 문단 나누기 등을 실천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나중에 봤을 때 내가 무슨 개드립을 치고 다녔는지 판단하고 자기 혐오에 빠지기에도 매우 유용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