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쪽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질문이 있었는데 쓰다 보니 길어져서 따로 분리해서 쓰기로 합니다.

저작물의 표절에 대해서는 막연히 표절의혹이 있었다....이딴 거 말고 정말로 재판까지 간 케이스를 찾는다 해도 상당히 많습니다. 흔히 아는 소설 말고도 캐릭터, 디자인 등 많은 분야가 저작권하고 연결되어 있는데, 이 저작권을 침해받았다고 인정되면 그게 속칭 '표절'사례가 됩니다.

1. 원고가 "세탁학기술개론"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는데 피고가 이를 허락 없이 상당 부분 참고하여 다른 책을 만들자 이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주장, '창작성'이 충분히 인정되므로 저작물로 성립되어 저작권 침해가 인정된 사례

("세탁학기술개론"사건 - 대법원 선고 94도2238)

2. 원고가 희곡 '키스'의 제작자인데 드라마 '왕의남자'에서 '키스'에 나온 문구 "나 여기 있고, 너 여기 있어"를 무단으로 사용했으므로 저작권침해를 주장하였으나 이는 단순한 문구에 불과하며 일상용어이므로 저작권침해가 부정된 사례

("왕의 남자"사건 - 고등법원 선고 2006라503)

3.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를 만든 회사가 "봄버맨"을 만든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책임이 없음을 청구한 사건에서 "비록 게임의 방식, 아이템, 캐릭터에 일부 유사가 인정되나 게임의 설정방법이나 규칙은 국내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대상이 아니며, 이외에는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여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한 사례

("봄버맨"사건 - 서울중앙지법 선고 2005가합65093)

이 사례는 일본의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와 한국의 '신야구' 사이에서 똑같이 다시 한번 재현됩니다.

등등.

단순히 어떤 소설이 다른 소설과 닮았다고 하여 표절의혹이 제기된 경우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꼽기도 어렵군요. 그냥 서점에서 저작권법 책만 찾아보아도 수십 개가 쏟아져 나올 거라고 생각되네요.

무엇이 표절이고 무엇이 표절이 아닌지를 나누는 건 대개 '아이디어'와 '표현'의 문제로 결정되는데, 일반적으로 '아이디어'는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표현'은 보호를 받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복잡한 법적 이론이 들어가므로 간단히 생략하고 설명하면, 일종의 플롯....즉 어떤 캐릭터가 있고 어떠어떠한 일을 하고 어떤 사건이 터진다는 정도의 막연한 발상, 즉 아이디어는 그 유사성이 인정되더라도 표절로 확정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 표현된 저작물, 즉 소설에서 꼭 닮은 유사성이 인정된다면 표절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경계가 어디인지는 아직도 논의가 분분한 부분입니다. 생각하건대 그냥 '설정'만 비슷한 경우 아마 표절로 인정되기 쉽지 않을 거라 여겨집니다. 다만 '설정'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물'까지 비슷하면 이야기는 다르겠지요.)

법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창조성'입니다. 저작물은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담은 산물로서, 크든 적든 창조적 사상의 산물입니다. 만약 유사성이 인정되는 부분이 작가의 창작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면 이에 대해서는 표절이 인정되지만, 그 부분이 일반적인 상식이나(길에서는 우측통행을 해야 하므로 우측통행하는 장면이라든지) 그 장면을 그릴 때 필수적으로 나와야 하는 장면이라거나(나치 치하를 그려낼 때 맥주집에서 '하일 히틀러'하고 인사하고 독일 군가를 부르는 장면이라든지) 표현 대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뗄 수 없을 정도로 관련성이 인정되는 표현이라거나 하는 부분은 설령 다른 작품과 유사하더라도 표절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 유의할 점은, 저작권법은 작가의 사상 및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상당히 폭넓게 보호한다는 점입니다. 세간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보고 썼는가? 안 보고 썼는가?'는 일차적으로는 법정에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작가가 글을 쓸 당시 타인의 저작물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저작물을 창조해 냈을 때엔, 그 작가에게 독자적인 저작권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는 완성된 저작물이 타인의 것과 같으냐 다르냐를 따지지 않으므로, 극단적으로 보아 만약 만들어진 소설이 남의 소설과 거의 같게 나온다 해도 그 저작물에 본인의 사상과 감정이 담겨 있다고 인정되면 양쪽 모두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해 줍니다.

그러니까 작가들이 글 쓰기 전에 모든 창작물의 존재에 대해 알고 다 찾아본 다음 안 겹치게 조심해서 써야지! 하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흔히 하는 오해이지요. 다만 만들어진 저작물이 극단적으로 기존의 소설과 동일하게 나온 경우, 실제 그것이 작가의 순수한 창조적 활동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어질 것입니다. 상식적으로요. 그러니 최종적으로 재판이 걸리면 이기기 어렵겠지요.

물론 이건 법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고, 표절 소문이 퍼져 인기가 떨어지는 건 별개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