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게 언제나 두근거리고 칭찬 한 번 듣고 싶어 얼른얼른 써서 어떻게든 빨리 올려 반응을 듣고 싶어 발악을 하던 시기가… 그렇게 오래 되지도 않았을 텐데 어째 까마득합니다.

한창 인기를 끌며 저도 신이 나서 쓰고 있었던 소설을 한 독자와 시비가 붙어 정이고 열정이고 다 식어버려 연중을 해버린 이후론… 뭔가 기대하는 것에 아예 회의을 느끼게 되어버렸어요. 소설을 올리는 것에 더 이상 두근거림은 없어요. 두려움 뿐입니다. 좋은 평을 받을까 기대되기보단 욕이나 먹지 않을까 공포스럽기만 합니다.

가끔은 독자가 독자가 아니라 적으로 보여요. 언제라도 제가 빈틈을 보이면 목을 물어 뜯으려 달려들고 이미 상처 투성이인 심장에 바람 구멍을 뚫어버리려 벼르고만 있는 적. 그날 이후론 아예 덧글 자체를 안 보게 되어버렸습니다. 칭찬이 기대되긴 커녕 이제 제 소설에 달리는 덧글이란 건 언제 터져서 절 정신적으로 죽여버릴지 모르는 단순 지뢰밭에 불과해졌으니까요.

여기 홈페이지를 처음 둘러보다가 작법 연구소란 곳에서 『소설의 재능이 있는지 판단하여 꽃피우는 방법 7 - 10,000시간의 법칙’과 창조성을 파괴하는 요인』 이란 글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만일 당신에게 작가로서의 적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다면 자신이 소설을 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건가 소설을 써서 칭찬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건가를 생각해 보면 좋겠지요.

　후자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비판이나 좌절에 약해지기 때문에 재능은 단기간에 고갈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공포가 강해서 자유로운 발상이 나오지 않게 되거나 글이 잘 안 써지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는 것은 명성을 얻는 수단일 뿐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바보 취급 당하면 어떡하지?’ ‘팔리지 않으면 어떡하지?’하는 실패에 대한 공포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명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명성으로 회복하고 싶다는 동기가 밑바닥에 있는 것입니다.

‘나는 사실 대단한 사람이야! 내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거야!'

　하는 심리입니다.

　언뜻 굉장히 강한 상승 지향이 작용하는 듯 생각되지만 완전히 반대로 도전을 하지 않게 됩니다.

도전 해서 실패하고, 자신이 사실은 별 것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으로 몰리는 것은 상처가 크게 후벼 파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창작에 전념하지 못하고 영원히 성장하지 못한 채 끝나버립니다.

　반대로 소설을 쓰는 그 자체가 즐거워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족 할 수 있다면 비판이나 실패에 강해지기 때문에 점점 성장해 가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좌우되지 않고 명성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창조성을 신장시키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 공포를 느끼고 명성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창조성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네, 저 문장들만 읽고도 전 엄청 뜨끔하고 가슴이 후벼 파지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딱 제 이야기였거든요. 또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담 난 언젠가 실패할 운명이란 말이야?' '내가 영원히 성장하지 않을 거라고?'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또한 이상한 묘한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성장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전 어떻게든 성장 하긴 했거든요. 다른 사람이 평가해주는 것이 아니고 직접 본인이 보고 이런 소릴 하는 건 정말 웃긴 소리지만, 전 정말로 어떻게든 발악을 하듯 소설 실력을 성장 시키긴 했습니다. 그 증거라고 할까.

전 원래 정말로 글 쓰기란 걸 죽어도 싫어했었거든요.

유치원 적부터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학교에서의 크고 작은 작문 시간은 저에게 고문 그 자체였습니다. 그 간단한 국어시간의 짧은 감상 쓰기 스런 수업 시간에 남들은 5분이면 쓸만한 것도 수업이 다 끝나고 학교에 남아서까지도 못 쓰고 결국 선생님이 포기하고 절 보내실 정도였어요. 아직 유치원에 다닐 시절 이야기인데 이순신 장군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거든요. 근데 전 정말로 쓰고 싶은 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 어린 나이에 그게 괴로워서는 내가 왜 머리 다친 걸 이렇게 빨리 나아서 이렇게 유치원에 나와 있는 걸까 자신이 원망스러웠을 지경입니다. 얼마나 그게 사무쳤으면 지금까지 기억나겠어요? ...진짜 싫었었나보네요 정말 상세하게 그때 심정이 기억나거든요 7살 때 일인데.

그런 저에겐 하나의 취미가 있었어요. 그 당시는 만화를 그렸지만 중요한 건 사실 만화가 아니라 '이야기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 매개체는 뭐라도 좋았어요. 우연히 그 매개체가 만화가 됐을 뿐이죠. 저는 매 쉬는 시간마다 집에서 시간 날 때마다 만화를 그리고, 수업 시간에 지루할 땐 거의 구상만 해댔죠. 이상하게 수업 시간에 구상이 더 잘 되더라고요. 제 삶은 모조리 만화 그리기에 전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긴 합니다. 게임도 좋아했어요. 하지만 만화 그리기랑 비슷비슷했죠.

그게 어쩌다 고등학교 적에 소설로 넘어 왔습니다. 계기는 간단했어요. 제 친구 한 명이 판타지 소설 마니아였고, 제 이야기를 소설로 한 번 써보니 문자로 이야기를 쓰는 게 만화보다 편해 보였거든요. 글쓰기를 끝내주게 싫어했던 저인지라 그 당시 쓴 글을 보면 진짜…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입니다. 문법 나치가 왜 생기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하지만 안 지우고 고히고히 모셔두고 있어요. 지금 봐도 재밋긴 하거든요. 완전 엉망진창에 분량 생각도 없고 삘 대로 마구 써 댔을 뿐이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캐릭터들이 더욱 생기가 넘치고 개성이 있으며… 즐겁게 썼다는 느낌이 물씬 들어 정말 좋습니다. 지금의 저와는 너무 대비된다고 할까요.

처음엔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걸로 만족했습니다만 슬슬 인터넷에 올리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냥 객기에 그랬던 건지 어떨지. 하여튼 그렇게 저는 '판타지 세계에 넘어간, 이미 기계제국으로부터 지구를 한 번 구한 적 있는 한 히어로의 이야기' 를 구상하여 조아라에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소재라던가 내용은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단지, 필력이 구렸습니다. 구성력도 떨어졌고요. 마음만 앞선 거죠. 보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그 마저도 결국 0명이 되어버렸지요. 

결국 연중하고 몇몇 시도 끝에 저는 다음 소설 '마왕의 마법에 의해 죽은 사람이 죽었다고 인지 되지 못하는 세계에서 혼자서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어떤 소년의 이야기'를 쓰게 됩니다. 도시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썩은 시체들과, 그 시체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야말로 모순된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그런 세계에서 태어났을 적부터 살아왔고, 그런 주인공과 같은 세계를 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나 죄다 미친 인간들이 태반입니다. 그 중 절반은 되려 마왕을 숭배하고, 그 나머지 절반은 '마법'이라 불리는 이능에 취해 자신들의 자유 만을 쫓고 살인을 즐겨 댈 뿐입니다. 그 절반의 절반의 절반만이 마왕에 대항하며 그 세력의 가장 유능한 에이전트인 '미래를 듣는 장님 소녀'가 '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눈을 뜬 선택된 사람', 즉 주인공을 보호하며 오래전부터 이어오는 전설에 따라 마왕을 죽이고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에요.

정말 제 분에 맞지 않는 멋진 소재였습니다. 사실 제가 생각한 것도 아니에요. 꿈에서 본 걸 그대로 쓴 거 뿐이라…. 진짜 럭키 펀치였습니다. 한창 쓰던 중에 타입문이란 곳에서 추천글까지 받아서 독자가 껑충 뛰고 조아라 메인에도 연재 소설 중에서 3위 씩이나, 그것도 2일 동안 올라보고. 푸핫, 그야말로 영광의 순간이었네요. 제 처음 완결까지 쓴 소설이기도 합니다.

부족한 점은 많았지만, 그때도 절망이나 좌절이 없는 건 아니었어도 정말 재밌게 소설을 썼었어요. 무려 황금기였던 것 같네요. 그게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정말 영광스럽고 절 기고만장하게 만들기 충분한 기간이었습니다만, 그런 제 자신감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다음 작품을 써야 했는데... 잘 안 됐거든요. 몇 번 실패하자 평타만 쳐도 된다는 마인드가 되었고, 그래도 계속 실패하고 절 계속 따라와 주시던 독자분들이 하나둘씩 떨어져나가자 정말...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약 반년 만에 전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시도도 해본 적 없을 학원물. '소설가인 주인공이 괴짜인 자기 반 친구를 자기 탐정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뒤에서 조작하고 계획하고 음모를 꾸미는 이야기' 였습니다.

괴짜 친구는 실제로 역량이 뛰어났고 이윽고 주인공이 뭔가 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척척 해결할 정도로 성장합니다. 사실 성장한 것도 아니었어요. 주인공이 한 일이라곤 살짝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 괴짜 친구를 밀어준 것 뿐이죠. 하지만 초반의 몇몇 행위를 들켜버린 탓에 괴짜 친구는 아직도 주인공이 자길 몰래 돕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모든 게 주인공이 벌인 일이고 자기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줄 알죠.

반대로 주인공은 괴짜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껴갑니다. 자기가 첫 눈에 반한 후배 여학생도 괴짜 친구에게 반해버렸고, 다른 주변 사람들도 주인공은 무시하는데 괴짜 친구는 떠올려 바치고, 그래도 자신이 '능력을 숨길 뿐 사실은 더 굉장하다'란 생각을 품고 있었기에 다소 참아가는 주인공이었으나 '주인공을 동경하며 주인공에게 이겨 인정받고 싶었던 괴짜 친구'가 그에게 정면으로 승부를 걸고 '이겨버리는 바람에' 주인공의 자존심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괴짜 친구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요. 서로가 서로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어긋나버린 것이 화를 부른 거죠.

결국 주인공과 괴짜 친구는 서로 갈라지고 싸운 뒤 화해하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한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게 제가 정한 끝이었고 그렇게 될 예정이었습니다만, 이 소설이 거기까지 이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독자와 싸워서 연중 했다는 소설이 이거거든요...

반응은 정말 좋았어요... 제 2의 전성기가 될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타입문의 어떤 고마운 분께 추천글까지 받았구요... 덕분에 조아라 라이트노벨 순위에서 쭉 1위에 올라와 있었을 정도입니다.

근데... 아아, 제가 너무 감정적이었던 게 문제지요. 자존심이 너무 강하고, 또한 자기 소설을 너무 사랑하니까 약간의 쓴 소리도 버티기가 힘들었던 거에요. 그렇다고 그 인간이 잘 했고 나만 나빴다는 건 아니지만요 으으. 그 이야긴 하고 싶지 않네요.

그렇게 펜을 꺾나 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만, 결국 아이디를 지워서 새로 만들었을 뿐 글 쓰기는 쭉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조심스러워졌지요. 똑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진 않았으니까요. 정말 미안한 것 투성이었는 걸요. 독자들 각각이 제 소설을 얼마나 재밌게 읽으셨고 소중히 해주셨을진 별로 가늠이 안 갑니다만, 하여간 전 몇 백 명이 재밌게 보던 소설을 갑자기 연중 해버린 거잖아요. 아무리 자기중심적인 저라도 미안한 건 미안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걸 계속 쓰는 건 무리였어요. 정말 아까운 소재지만, 그 아까운 소재를 지금이라도 꺼내서 다시 써보려고 하는 순간 구역질이 납니다. 도저히 써지지가 않아요. 그 소설은 제 완전한 트라우마가 됐습니다. 열등감 투성이 영웅 진성군이 다시 제 키보드에 의해 써질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그 후엔 전성기 같은 건 없었습니다. 죄다 평타는 커녕 밑바닥인 채로 2년 가량 지났습니다. 이제와선... 잘 모르겠어요. 현재 소설이 60명 가량 보고 계신데 이게 적은 건지 많은 건지, 내 기대에 차는지 안 차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내 소설을 재밌어서 보는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읽어서 재밌는지도 모르겠어요. 다 모르겠어요!

글을 잘 써보려고 다른 소설도 많이 참고하고 소설 작문서도 읽고 시나리오 작문서도 읽고 철학책도 읽고 인터넷으로도 조사 해보고 문법도 공부하고 맞춤법도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이걸 유념하면 좋겠다 하는 건 노하우 목록에 따로 모아두기도 해보고 소설이 잘 안 써지면 괜찮아질 때까지 계속 다시 써보기도 하고 이젠 콘티도 다 세세하게 주제, 표현해야 할 부분, 유의해야 할 부분, 각 등장인물들의 사정 등등... 제 글 쓰기 실력은 정말 나날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명백해요. 제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어제의 제가 지금의 저보다 잘났을 리가 없잖습니까!

아 좀 흥분을… 그런데 또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의 제가 더 잘난 거 같습니다. 적어도 소설 쓰는 걸 정말 즐거워 하고 행복해 하던 과거의 제가 지금의 저, 소설 작문 노하우도 잔뜩 쌓이고 소설 구성을 체계적으로 만들 줄 알며 분량도 조절할 줄 알고 원인과 결과를 합리적으로 짤 줄 아는 저보다 훨씬 소설을 잘 쓰는 것 같단 말입니다. 어째서야.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과거의 내가 이런 나보다 잘난 것 같은 거냐고. 치사해. 억울해. 괴로워. 짜증나. 역겨워. 슬퍼. 이해가 안 가. 불합리해. 비합리적이야. 틀렸어. 옳지 않아. 이해 관계가 맞지 못해. 뭔가 잘못 된 것이 틀림 없어. 세상이 나빠. 다른 사람이 나빠. 나는 나쁘지 않아. 뭐든 나를 제외한 모든 게 틀린 게 분명해.

… 농담이 아니라 때때로 죽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죽고 싶다기 보단, 살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는 거죠. 이제와서 깨달은 거지만, 소설을 쓰는 건, 이야기를 짓는 건 이미 제 삶의 반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반신이 아니라 그냥 저 자신이라 해도 이건 과언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이 반신 보다 더 큰 것이 죽어버리면, 저도 같이 동반하여 죽게 되는 것입니까? 정말 그렇게 될까요? 제가 펜을 꺾는 순간 저도 함께 죽어버리게 되는 걸까요?

전 소설 쓰는 걸 그만둘 수 없습니다. 이건 제 인생도 아니에요. 저에요. 이야기를 짓고 그걸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접니다. 전 제가 기억이 있는 다섯 살도 안 될 무렵부터 이걸 해왔고 친구들을 모두 잃고 사랑했던 독자들에게 걸었던 기대까지 배신 당하고도 아직도 이어오고 있어요. 정말… 저에겐 이것 뿐이에요. 작가? 되지 않아도 상관 없어요. 되면 그야 좋습니다만 그렇다고 작가가 되지 못하면 소설을 그만 쓰겠다느니 그런 생각은 전 안 합니다. 못 해요. 대학도 일부러 취직이 잘 된다는 곳으로 왔는 걸요. 어째서냐고요? 돈을 벌어야 소설을 쓰니까요. 소설로 돈을 못 벌면, 다른 데서 돈을 벌면서 소설을 쓰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직업이란 건 돈을 버는 수단일 뿐이에요. 저에겐 소설을 쓰기 위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직업입니다.

전 제가 전자인지 후자인지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둘 다 일 수도 있고, 사실 후자이며 동시에 소설 쓰는 걸 싫어하는 걸지도 몰라요. 단지 다른 목표가 없으니까, 이걸 놓쳐버렸다간 정말 제가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억지로 좋아하는 척 자길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최근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습니다. 

소설을 쓰는 걸 그만둬버리면, 그렇게 한 달 두 달 이어가서 아예 '소설을 써야 한다'란 지금 제 강박관념이 사라져버린다면, 잊혀져버린다면, 저는 어디에 존재하게 되는 걸까요? 혹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닐까요? 오히려 홀가분하게 잊어버리고 소설 따위 이야기 짓기 따위에 아무런 연관도 관계도 없는, 그런 제가 거기에 멀쩡하게 살아서 삶을 이어가게 되는 건 아닐까요? 

무섭습니다. 사실 소설 따위, 이야기를 짓는 것 따위 나와는 전혀 인연도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섭고… 공포스럽고… 형언할 수 없으리만큼 끔찍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삶이, 모든 내가 부정 당하는 기분이에요. 넌 그냥 죽어버리는 게 좋아. 네 지금까지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어.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들어버리는 기분이네요.

그렇게 말하는 저는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정말로 현재 진행형으로, 지금 이 노트북 아래를 보면 메모장 세 개가 켜져 있어요. 하나는 콘티. 하나는 이미 써 놓은 것. 하나는 써 놓은 것을 고치는 중인 것. 소설 쓰는 게 아예 즐겁지 않게 됐냐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아직도 즐거워요. 단지... 전처럼 마냥 즐겁지 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인기도 없구요 흥칫핏)

으, 어떻게든 잔뜩 마음 속에 있던 걸 반의 반 쯤은 털어놓은 것 같습니다만... 후련해졌으려나. 설마 이걸 다 읽으셨나요? 굉장하시네요. 그냥 스크롤만 내리신 거라면 안타깝게도 세 줄 요약은 없습니다. 제 인생을 세 줄로 요약하라니. 그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저라도 세 줄로 요약될 인생을 살진 않았다고요.

아음, 저였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글쟁이였어요. 아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