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乃. 유키노. Yukino. 그녀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소리의 잔향이 부실 벽을 이리저리 치며 아름답게 공명한다. 그 울림이 가슴에 남아 애틋하다. 의자 뒤로 꺾어 부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살짝 틀어 창밖을 보니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을 쏟아버릴것 같이 흐리다. 유키(雪) 내리는 날의 유키노(雪乃). 운율도 잘맞고, 역시 난 문학적 재능이 있는건가 생각하며 "새하얀 눈오는 날의 새하얀 유키노라. 어울리네." 라고 혼자 공연히 중얼거려본다.

'툭'

적막한 부실을 깨우는 그 이질적인 소리에 고개를 들어 부실문을 들어보니 거기에는 유키노가 있었다. 가방을 발치에 떨구고는, 그대로 얼어버린채로 어쩔줄 몰라하는 유키노가. ...어쩔줄 몰라하는 유키노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인 그 광경에 나와 유키노 둘다 얼어버렸다. 충격을 넘어 이건 충격과 공포다. 뭐야, 내가 사담 후세인이라도 되냐? 아니 이건 진심으로 무서운 경지라고, 내가 아는 '그' 유키노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고개를 머플러에 파뭍고는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이라니, 하하하하. 내가 꿈이라도 꾸는 모양인가, 이거 상당한 악몽이네. 그렇지. 당연하지. 물론 천하의 유키노가 그럴리가 없잖아? 하하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질나쁜 농담이란 말인가. 고약한 꿈이로고. 자 봐봐, 이제 눈을 감고, 볼을 한번 꼬집고 다시 눈을 뜨면 제대로된 현실이... 현실이... 볼, 아프잖아?

꼬집은 볼이 얼얼했다. 네, 그렇습니다. 이 비현실적 광경은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 충격적이다 못해 경악스러운 광경에 대뇌가 데프콘 1 경고를 울려대며 정지한듯했다. 뭐냐고 이거, 귀엽잖아. 아니 진짜 이거 위험하게 귀엽잖아. 뭐냐고 유키노가 부끄러워 어쩔줄 몰라하는 여자애같은 모습이라니 거짓말이지 이거?

서로 충격에 얼어버려 잠시간 서로를 응시하던 유키노와 나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 시선을 돌리고는 애써 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어째서 왜 꼭 이런날만 손으로 집을수 있는 거리에 제대로된 책이 없는걸까. 애써 책가방에서 교과서라도 꺼내 읽는데, 집중이 될리가 없었다. 창가의 유키노를 바라보니, 유키노는 역시 평소의 유키노... 라고 하기엔 눈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만.

지금의 유키노에게 말을 걸면 뭔가 나나 유키노나 심대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게 될것같다는 그 불길한 예감에, 다시 교과서를 시선을 옮기려 하는데, 시야에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네."

눈이라는 그말에 유키노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본다.

"그러게, 눈이네."

눈이네, 라고 말하는 유키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온화해서, 눈이네, 라고 말하는 유키노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 있어서, 눈이네, 라고 말하는 유키노의 얼굴에 지금까지 본 유키노의 미소중 가장 아름다운 온화한 미소가 걸려있어서, 거기에 사로잡힐듯 했다.

구름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민 햇빛이 얼굴에 가득히 반짝이는 유키노는, 가이아처럼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유키노는, 창문밖으로 사뿐사뿐 땅에 내딛는 눈만큼이나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