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43매까지 썼는데, 이 글은 쓰는 재미가 없어요...;ㅅ;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뻗어나갈지 스스로도 좀 모르고, 그래서 글을 쓸 때 어떤 긴장감이 있어야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는데,

이번 글은 앞으로 전개가 어떻게 될지 제 머릿속에서 너무 빤해서 재미가 없네요..

남은 20매를 쓰는 게 너무너무 재미없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문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식이 새로운 것도 아니고, 플롯이 새로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서가 새로운 것도 아니고.

괜찮은 아이디어가 1.5개 정도 있긴 한데 그걸 살린 것도 아니고.

이 글에는 사형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ㅅ;

아래가 이번에 사형을 받으신 글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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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타짜꾼이었다.

부인이 도망치고 난 뒤로 삼촌은 딸과 지냈다. 나중에 삼촌은 딸과도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는데, 큰판에서 그만 거물급 조폭을 건드려버린 것이었다. 그후로 삼촌은 필리핀으로 도망쳤다. 아주 가끔 몇 사람을 거쳐 소식이 들려오는 걸 보아 아직 살아계신 듯하다.

가족들은 삼촌을 마뜩치 않게 여겼지만 나는 삼촌이 좋았다. 삼촌도 날 좋아했다. 나와 만날 때마다 뭔가를 사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런데 내가 삼촌한테서 받은 건 장난감이나 옷가지만이 아니었다. 삼촌은 가족들 몰래 이런저런 게임을 가르쳤다.

“심견이는 마 벌써부터 양놈물이 들었어.”

나는 동양화엔 영 재능이 없었다. 하지만 블랙잭이나 포커 같은 서양화는 귀신처럼 잘 쳤다. 삼촌을 완전히 깨부수진 못해도 최소한 여섯 시간은 맞붙을 수 있었다. 초등학생이 타짜꾼을 상대로 말이다. 삼촌은 자기가 순수한 아이를 노름판에 끌어들인 건 아닌지 후회하곤 했다. 정말 때늦은 후회다. 삼촌이 말했다. 타짜꾼이 하는 후회는 언제나 늦기 마련이라고. 나는 어렸지만 삼촌의 말에 어떤 무거운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았다.

“절대 노름판에 끼어들지 않을 게요.” 내가 말했다.

삼촌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끄덕임은 일종의 체념이었는지 모른다. 삼촌이 말했듯이, 꾼은 되고 싶어서 되는 게 아니다. 그냥 되버리는 것이다. 그후 몇 년 뒤에 삼촌은 딸을 잘 부탁한다면서 한국을 떠났다.

Poker of Students

어른에게 어른만 아는 세계가 있듯이, 아이에겐 아이만 아는 세계도 있다. 평범한 어른이 그런 세계와 관련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평범한 아이도 이런 세계와 무관하게 생활한다. 그건 뒤집어서 말해, 이런 세계와 관련되는 아이도 있다는 얘기다.

내가 학생회장에 출마한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회장이 되면 학교에서 학생회실 열쇠를 준다. 그런 방이 하나 필요했다. “하우스” 말이다. 누가 무슨 생각으로 도박판을 “하우스”라고 불렀는지 알 길이 없지만 기가 막힌 이름이다. 그렇다. 사람은 집에서 산다. 그리고 도박꾼은 하우스에서 산다.

학생들이 일확천금을 하겠다고 도박을 벌이진 않는다. 그런 녀석이 한두 명 있긴 해도 진짜 한두 명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저 하루이틀치 용돈을 벌이할 속셈으로 판에 끼어든다. 아무리 판이 커도 배팅액이 30만원보다 커지는 경우는 없다. 그 이상을 원한다면 어른들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학생회실에는 지금 나를 포함해서 남자 세 명과 여자 두 명이 모였다.

“…….” 박기훈. 벌써 15,000원을 잃었다. 생각지도 못한 타격이겠지. 손에 든 카드가 별로인지 눈썹을 쨍그리고 있다. 저 나름대로 고심하는 흉내를 내는 거겠지만, 표정이 너무 얕다. 다 보인다. 녀석이 체크를 불렀다.

“나도 체크.” 이수빈. 한 2,000원 땄나? 이번이 마지막판이니 본전은 지켰다고 생각하고 있다. 방금 부른 체크에도 아무 의미가 없다. 따면 좋고, 잃어도 좋다. 놀 만큼 놀았으니까. 좋은 마인드다. 이렇게 생각해야 도박을 즐길 수 있다. 문제는 본인이 잃고 있을 때도 저 마인드를 유지할 수 있느냐다.

“난 죽겠어.” 이석원. 얘도 3,000원 정도 땄다. 수빈이랑 똑같은 생각이다. 다만 번 돈을 뺏기고 싶지 않은지 죽어버렸다. 이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폴드.” 김지수. 그녀도 죽었다.

“체크.” 내가 말했다. “어디 한번 뒤집어보자고.”

각자 자신이 가진 카드를 내보인다. 맞붙는 건 박기훈과 김수빈 그리고 나. 박기훈이 투 페어에 김수빈이 원 페어, 내가 원 페어다. 박기훈이 환호성을 지른다. “이겼어! 어휴, 겨우 교통비는 구했네.” 그러면서 책상에 놓인 약 5,000원을 쓸어모은다. 내가 진 것이다. 나는 쓴웃음을 짓고 패배를 인정했다. 게임이 끝나고 계산해보니 가장 많이 잃은 박기훈이 10,000원을 잃었고, 가장 많이 딴 김지수가 5,000원을 벌었다. 이 정도면 잃은 사람도 딴 사람도 납득할 만하다.

그렇다. 내 역할은 누군가가 정도 이상으로 많이 따거나 정도 이상으로 많이 잃는 걸 막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같은 학교 학생끼리 돈을 뜯어봤자 기분만 더럽다. 누군가 한 명은 중재자 역할을 몰래 해줘야 한다. 일상에서나 뒤쪽에서나 학생회장을 자처하는 셈인데 그런 내 공로를 알아주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방과 후 학교. 아이들이 다 빠져나가고 학생회실엔 회장과 부회장, 그러니까 나와 김지수밖에 안 남았다. 나는 복도쪽 창문과 바깥 창문에 쳐둔 커튼을 열었다. 노을이 방안을 환하게 비춘다. 학교 책상들로 이뤄진 기다란 각탁, 하얀 원형 탁자, 나무 의자들. 그리고 교과서와 서류가 들어간 책장과 흰 칠판. 이게 학생회실이었다.

“다행이야.” 지수가 불쑥 말했다.

“뭐가?”

“네가 이런 장난으로도 만족할 줄 알아서.”

나는 미소 지었다.

“다음 연합회가 언제 있었지?”

“이 주 뒤 토요일에.”

“거기서 한판 거하게 땡겨야지.”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 * *

지수는 삼촌의 딸이자 내 동갑내기 사촌이다. 삼촌이 필리핀으로 도주한 이후 지수는 우리집에서 살고 있다. 삼촌은 나뿐만이 아니라 지수에게도 게임을 가르쳤고――대책 없는 분이다――, 지수는 나만큼이나 놀이를 잘했다. 다른 애들이 밖에서 뛰놀거나 컴퓨터 게임에 열중할 때, 지수와 나는 둘이서 바둑을 두거나 블랙잭을 쳤다.

평범한 놀이도 했다.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둘은 어른들이 나간 집에서 술래잡기를 했다. 지수가 술래였다. 지수가 벽에 머리를 대고 “하나~ 둘~” 외치는 사이에 나는 거대한 나무 옷장에 숨어들었다. 멀리서 “열~ 찾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수가 집안 이곳저곳을 막 뒤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키득거렸다. 하지만 지수는 생각보다 나를 빨리 발견해버렸고, 재미없어진 나는 장난삼아 지수를 와락 끌어안고 옷장 속에로 벌러덩 누웠다.

캄캄한 장롱 속이었다. 속옷들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낄낄대며 장난쳤다. 문득 유난히도 지수의 얼굴이 가깝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장난기가 솟았다. 나프탈렌 냄새에 취한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얼굴을 재빨리 움직여서, 거의 기습하다시피 내 입술을 지수의 입술에 살며시 갖다 댔다. 간지러운 입맞춤. 1초도 안 될 키스였다.

나는 지수의 반응을 기다렸다. 부끄러워하거나 화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신나게 골려줄 거라고 나는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지수가 내보인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저, 지수는 살포시 웃었다.

지수의 눈가 혹은 입가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생생하게 감돌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리에 전류가 스쳤다. 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어린 나이에도 나는 깨달은 것이었다.―지수가 자신을 좋아하고, 방금 지수가 보여준 그 미소로 인해 나 역시 불가항력적으로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장롱 속은 여전히 캄캄했다.

중학생 무렵, 도박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잃어버린 셈이 되자 지수는 우울증 환자처럼 어두워졌다. 나 또한 각종 게임에 빠져 있었다. 인터넷 도박은 전혀 성미에 맞지 않아서 나는 어른들이 운영하는 하우스를 전전했다. 내 뒤를 지수가 쫓아왔다. 그럴 때도 지수는 우울한 듯했다. 왜 노름판에 쫓아오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우울함을 도박으로 풀어내는 모양인 것 같았다. 도박 때문에 우울해진 지수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또 도박이라는 사실이 조금 가슴 아팠다.

어른들은 두 명의 어린 손님을 신기해 했다. 윽박질러서 내쫓으려는 어른도 있었지만 삼촌의 이름을 대면 대개 판에 받아주었다. 나는 화투는 물론이고 바둑이도 잘 못했으므로 무조건 블랙잭이나 포커에만 끼어들었다. 처음에는 뭐, 어른들은 살다가 꼬마랑도 놀아본다며 어이없어 한다. 내가 딴 칩이 10만원 어치를 넘어가면 “어쭈, 그래도 아주 봉은 아니네”라며 웃는다. 그 다음부터는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이십, 사십, 오십, 칠십, 백, 백오십…. 학교가방에 현금을 가득 넣고 떠나는 나와 지수를, 어른들은 입 떡 벌리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게임에서 방심하는 사람은 봉에 불과하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뭐에다 돈을 쓰겠는가. 난 게임 자체를 즐겼다. 아무리 많이 따도 200만원 이상을 벌어들이진 않았다. 가끔 미친 듯이 따는 날도 있지만, 그럴 때면 돈을 잃을 때까지 판에서 떠나지 않았다. 속임수도 안 썼으니 말짱한 백지꾼인 셈이었다. 그래서 날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어른도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날 귀엽게 여기는 어른이 많았다. 꼬마 주제에 도리를 안다는 거다. 나는 금세 노름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그런 나를 지수가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 * *

일반 학생들은 알지도 알 필요도 없지만 서울에는――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다――학생회 연합회란 게 있다. 어느 학교에서든 학생회장에 당선되면 며칠 뒤에 전화가 걸려올 거다. 학생회 연합회란 곳에서 언제 어디서 회의랑 봉사활동이 있는데 부디 나와달라고. 지역구마다 연합회가 따로 운영되고, 해당 연합회에는 그 지역의 모든 학생회장이 소속된다. 반년마다 수십 학교의 학생회들이 모여서 이박삼일 수련회를 한다.

비정기적으로 해당 지역구를 대표하는 학생회가 모인다. 이 자리에는 서울시 전체를 대표하는 25개의 학생회들이 참석한다. 서울이 대한민국 학력의 본산이고, 학생회가 전교의 대표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학생들의 톱. 서울시 400만학생사회의 정점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거대한 조직처럼 들릴지 몰라도 별 거 없다. 학생회장이라고 뭐 학생이 아닌가. 프랑스에서는 학생회 연합회가 전국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시위대 수뇌부이지만, 우리나라에서야 그딴 거 없다. 연합회랍시고 모여봤자 하는 일은 기껏 우리 구에서 뭔 일이 있었네, 뭔 일이 있으면 좋겠네, 애들이 착해지길 바라네, 밥 잘 먹었으니 헤어지네, 하는 이야기가 오갈 뿐이다. 참고로 교육부에서 오는 높으신 분들의 연설도 들어줘야 한다. 무지막지하게 지루하다.

적어도 연합회의 낮은 말이다.

“그 꼰대 연설은 도저히 못 들어주겠더라.” 관악구 대표인 남자애가 말했다. 아주 질렸다는 표정이다. “솔직히 어떻게 40분이나 떠들어대냐. 어이없어.”

“교육감 되기 싫다보지 뭐. 아마 지금쯤이면 우리 아버지들 귀에 다 들어갔을걸.” 강동구 부(副)대표인 여자애가 말했다.

“야, 피자 시키는 거 찬성인 사람?” 노원구 대표가 말했다. 곳곳에서 “찬성!” 하는 소리가 들렸다. 햄버거가 먹고 싶다는 애들도 있어서 그쪽은 따로 주문했다.

여덟 시가 넘은 시각. 삼십 명가량의 학생들이 기숙사 휴게실에 모여 있었다. 붉은 카펫이 깔리고 조명이 반사광으로 된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여긴 은평구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인데 시설이 어마어마하게 좋다. 1년에 학비로 천 만원이 넘게 드는 이른바 귀족 학교다. 우리 연합회 임원들은 여름방학이라 텅 빈 학교 기숙사를 통째로 점령했다. 우리는 감시하는 선생도 없이 놀았다. 명목상으로 선생이 몇 명 붙기는 했는데 지금은 다들 기숙사의 어느 방에 들어가 꼼짝도 않고 있다. 여기 모인 학생 중 반은 부모가 국회의원이니 사장이니 소장이니 하는 녀석들이다. 그런 애들을 “너희 얌전하게 놀지 못해?”라고 혼내봐라. 일단은 학생회 회장이고 부회장이니 얌전히 방으로 돌아가겠지만 다음날이면 선생이 학교에서 쫓겨날 거다. 대단한 학생들이다.

야식을 즐기고 한참 떠드니 한두 명씩 자리를 떴다. 열한 시가 되자 휴게실엔 아홉 명만 남았다. 그중에는 나와 지수도 있었다. 관악구 대표가 식은 피자를 잘근잘근 뜯으며 말했다.

“남을 사람은 다 남았네. 시작하지 그래?”

우리는 원형 탁자에 모여들었다. 우리의 사랑스런 뚱땡이 성북구 대표가 서양화와 카지노 토큰을 꺼냈다.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연합회에서 놀았다는데, 사실 그런 애들이 연합회엔 절반이 넘는다.

“블랙잭? 포커?” 성북구 대표가 물었다.

“다수결로 정하지.” 관악구 대표가 말했다. 거수를 한 결과 포커로 결정됐다.

“첫 판엔 뭘 걸까? 다들 배팅액은 넉넉하겠지?”

강동구 부대표가 농담 삼아 말했다. 다들 키득거렸다.

비공식적으로 치루어지는 이 행사――“연합회의 밤”이라고 부른다――에선 돈을 걸지 않는다. 명색에 서울시에서 가장 모범적인 학생의 집단인데 금전을 걸 수야 없다. 다만 금전보다 더 소중한 걸 건다. 서울시에서 공식적·비공식적으로 고등학교에 배부하는 온갖 정책 및 이권이 정확히 어떤 학교로 향하느냐가 여기서 결정된다.

이번에 과학우수학교, 예술우수학교, 인문우수학교로 결정될 곳은 어디인가?

이번에 특수목적교과실이 새로 설립될 곳은 어디인가?

이번에 원어민 교사를 무료로 지원받을 곳은 어디인가?

실질적인 업무는 행정직이 알아서 한다. 늘 그렇듯이 행정직을 부리는 사람은 따로 있는 법이고, 이 경우엔 우리 서울특별시 학생회 총연합회가 그 “따로 있는” 놈들이다.

한 가지 착각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연합회의 밤”에 참여할지 말지는 자유다. 연합회가 모든 이권과 정책을 도박으로 결정하는 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최대한 공정하게 이권과 정책을 각 행정구에 배분한다. 그렇게 공정하게 배분된 결과에 마음이 차지 않는 욕심쟁이만 “연합회의 밤”에 참여한다. 배팅액은 참여자들이 연합회의 낮에 배분받은 이권과 정책이다.

룰은 간단하다. 모두에게 2만 달러짜리 칩이 주어진다. 그 칩이 전부 동이 나고 두 사람이 남을 때까지 게임이 이어진다. 남은 두 사람은 서로 번갈아가며 이권과 정책을 챙긴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든 이권과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그게 전부다. 이번엔 포커이니 텍사스 홀덤으로 판이 짜일 것이다.

무제한 배팅 텍사스 홀덤(No-Limit Texas Hold'Em).

보통 우리가 즐기는 포커는 세븐 오디다. 처음에 3장을 받고 그중 1장을 공개한다. 그리고 3장의 카드를 공개하면서 받는다. 수학여행에 가서 친구들끼리 즐기는 포커다.

텍사스 홀덤은 미국에서 주로 하는 포커인데, 처음에 2장씩만 받는다. 그리고 테이블 중앙에 3장, 1장, 1장을 공개하면서 깔아둔다. 처음에 받은 2장은 플레이어만의 카드이고, 테이블에 놓인 5장은 모든 플레이어의 카드다. 중앙의 공개된 카드 5장과 나의 비공개된 카드 2장을 갖고 패를 만든다. 비공개되는 카드가 세븐 오디에 비해 한 장 적으므로, 상대방이 어떤 수를 쓸 것인지 파악할 재료가 더 많다. 그만큼 운이 작용할 요소는 적고 실력이 작용할 요소가 크다. 진짜 실력으로 붙는 것이다.

왜 하필 노 리미트 텍사스 홀덤으로 붙는지 물을 수 있다. 이 포커만큼 운명이 순식간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게임도 없다. 실력 좋은 플레이어가 강한 패를 잡고도 깨지고, 마음에 평정이 무너지면 단번에 돈을 잃는다. 배팅이 무제한이라 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포커 대회가 노 리미트 텍사스 홀덤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운, 실력, 배짱, 모든 것이 이 포커엔 필요하다.……뭐, 사실 이건 변명에 가깝고, 우리들이 텍사스 홀덤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라스베거스에서 이게 주류이기 때문이다. 라스베거스는 멋있다. 멋있음은 고등학생에게 최고의 가치다. 우린 고등학생이다. Q.E.D

원탁에 아홉 명이 앉았다. 실질적으로 연합회를 주도하는 관악구 대표, 연합회의 부회장격인 노원구 대표와 강동구 부대표, 성북구 대표, 중랑구 부대표, 은평구 대표, 강서구 대표, 강동구 부대표, 그리고 나와 지수.

“너희 둘은 같은 학교니까 각자 10,000, 됐지?” 성북구 대표가 지수와 내게 말했다.

“저번에 너희한테 몽땅 털렸지.” 관악구 대표가 말했다. “어디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선을 맡지. 시작하자고.” 성북구 대표가 말했다.

그리고 카드가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