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한복에 김칫국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김칫국물 한 방울이 더럽다고 하지 않고 한복이 지저분하다고 말한다. 그까짓 얼룩 그냥 못본체하면 안 되느냐고 사람들에게 요구하면 안 된다. 사람들은 한복을 보지 않고 얼룩만 보기가 쉽기 때문이다."
=안정효 선생님의 '글쓰기 만보' 中-
여러분은 퇴고를 할 때 어떤 것을 보시나요? 문장 구성, 오타 찾기 등등 퇴고는 필수라고 하지요.
그런데 단순히 문장 구성과 오타 찾기만 하면 퇴고가 끝나는 것일까요?
대체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퇴고 시에 확인해야 한다고 하는데, 대체 어떻게 고쳐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문장 구성만 보면 되는 걸까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이야기의 흐름을 퇴고합시다.
1. 객관적으로 읽자
말도 안 돼!!!!!
어린 시절의 필자는 이렇게 외쳤다죠. 왜냐하면 자신이 갖고 있는 자작품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쉽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읽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독자의 시점으로 작품을 읽어보는 작업은 필수니까요. 이를 실천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답니다.
1) 며칠 후에 읽는다.
2) 소리내어 읽는다.
며칠 후에 읽어보면 느낌이 다릅니다. 그리고 소리내어 읽어보면 더욱 뚜렷합니다. 소리내어 읽는 경우에는 문장이 엉성한 부분이나 이해가 술술 되지 않는 부분을 캐치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 부분은 [2]문장구성을 퇴고합시다 와 동일합니다. (솔직히 이거 제가 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노블엔진 작법연구소에도 있더군요. 하하, 혼자만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같아)
이야기에서 세계관이 드러나는 부분이 흥미롭게 이어지는가,
개그가 너무 갑작스럽고 억지적이지 않은가,
스토리 상 빠져들지 않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독자의 시점으로 다시 한 번 글을 읽는게 퇴고의 첫걸음입니다.
2. 감평 신청 및 인터넷 연재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이미 한 권 분량 정도가 끝난 뒤에 신청 및 연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전체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사람들로부터 들을 수 있습니다. 약 세 명 정도가 적당한데, 단 한 명이라도 이상하다고 한 부분이 있으면 고칠 수 있어야만 합니다(끝까지 읽어 줄 독자 분이 있으시다면 유효한 방법입니다)
3. 도중에 퇴고하지 말고 전진! 전진!
도중에 퇴고하는 것은 전진의 속도를 느리게 할 뿐더러, 구상을 놓치게 만들곤 합니다. 도중에 힘빠져서 그만두기도 하죠(어린 시절의 필자가 그 모양이었습니다). 또한 초고가 완성되어 있지 않은 시점에서 퇴고하면 전체적인 시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퇴고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창작에 있어서 완벽주의는 좌절의 근원입니다. 완전을 기하는 것은 초고가 끝나고 난 후에 퇴고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4. 글의 유기성을 본다.
반드시 필요있는 부분이 서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유기성입니다. 필요없긴 한데 분량을 맞춰야지. 개그신을 짜넣어야하니까 그냥 써야지 하는 식의 발상은 스토리를 망칩니다. 개그도 유기성이 있도록. 대부분 잘 쓴 글들은 개그가 스토리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유기적입니다(엔딩 이후의 세계가 특히 그렇죠).
스스로 필요없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삭제. 장면과 장면을 이어주기 위해서 쓰는 장면이 있는데, 이 곳을 공략해봅시다. 이 부분을 관건으로 유기성이 이어지곤 합니다. 복선을 이런 장면에 넣을 수도 있는 법입니다.
[2] 문장 구성을 퇴고합시다
*한국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쓰신 소설가 안정효 선생님께서 '글쓰기 만보'에서 소개하신 문장구성법입니다. 더 궁금하시다면 책을 사보시길. 사보지 않아도 되도록 제가 참고해서 다시 재구성했습니다. 이 글은 지극히 한국적인 문장을 위해서 서술합니다. 번역투에게 엿을 먹이면서 한국식 문체를 지키고 가독성을 증진하는 것이 문장 구성의 퇴고입니다.
1. '있다' 와 '것' 과 '수'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있다'와 '것'과 '수'로 밝혀졌습니다. 이 세 가지는 글에 있어서 '三적'입니다.
그것이 왜 그런가 했더니, 일명 번역 시에 Can이 '수'로 대다수 번역되며, 이와 같이 '있다' 또한 많이 쓰입니다. 게다가 '
것'은 특히 무의미하게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명 '번역투'라고 지적 받으시는 분들은 '있다' '것' '수'를 많이 쓰지는 않았나 살펴보십시오. 안정효 선생님께선 이들을 '외래종'이라고까지 지적합니다. 이들은 글의 흐름을 막는 댐입니다.
기억하는 법은 이렇습니다.
" '있을' '수' 있는 '것' 은 모조리 없애라."
원칙 : 똑같은 표현은 글의 흐름을 막는다.
1) '있다'
예를 듭시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혀 있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있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찍고 있다.
전체적으로 어떻습니까? 좋은 문장은 짧아야 한다는 사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있다'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는 걸까요? 그것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짧은 표현이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이제 위 문장에서 '있다'를 모조리 없앱시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한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혔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댄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촬영한다.
'있다'만 버려도 간결해지며 문장이 힘이 생깁니다. 이른 바 현재형. 솔직히 우리나라의 글에서 현재진행형과 현재형은 소설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있다'의 반복이 글이 갖고 있는 다양한 단어의 모습을 죽여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못 쓴 글처럼 보여버립니다. 밑의 글에는 '싸운다', '막혔다', '울려댄다','촬영한다'가 명확하게 드러나 단어의 힘이 살아납니다. 퇴고 시에는 혹시 자신의 글에 '있다'가 쓸데없이 들어간 부분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봅시다.
2)'것'
'그랬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라는 구절을 아시나요? 옛날 변사들이 이랬죠. '것'은 멋을 부리기 위해 애용되곤 했죠. 그런데 '것'을 고치라 하면 대부분 '것'이라는 단어를 '일'로 고치곤 합니다. '집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가 있다고 하면, '있다'와 '것'이라는 두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꿔 넣으려고 생각하지 말고, 아예 문장을 새로 쓰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로. 대부분 글을 쓰다 보면 '것'을 자신도 모르게 많이 쓰곤 합니다. 퇴고 시에는 특히 '것'이 들어있는 문장을 간결하게 고칠 수 있도록 합시다.
*'것'의 쓰임은 포인트를 주고 싶은 곳에만 쓰는게 관건입니다.
3) '수'
가능을 나타내는 Can과 비슷하게 쓰이곤 합니다. 지나치게 can을 닮아버린 안타까운 현실이죠.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뉴스에서도 자주 듣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수라는 말을 좀 빼보죠.
병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훨씬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짚어드리자면 '걸릴 '수도' 있다'와 ''걸릴 수도'있다' 같이 읽을 때강점을 두는 부분에 따라 혼란스럽게 들릴 수 있는 부분이 바뀐 표현에서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합니다' 보다는 '그럴만도 하죠'가 더 쉬운 표현이자 읽기도 편한 표현입니다.
" '있을' '수' 있는 '것' 은 모조리 없애라." 라고 합니다.
모조리는 안 되더라도 최대한 없애려고 하다보면 가독성있는 문체를 얻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2. 힘빠지는 표현을 죽여라!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랬답니다. '주사위가 던져진 것 같다'
틀려어어어어!!!!!!
모두가 이렇게 외칩니다. 왜냐고요? 힘빠지니까.
"The die is cast"라고 정착된 영어의 수동태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주사위가 던져졌다'라고 정착되었죠. 수동태 표현 그대로 정착된 것도 문제지만 만약 '던져진 것 같다'라고 한다면 어떻습니까? 힘빠집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인터뷰를 할 때도, '분위기가 좋은 것 같네요. 맛이 좋은 것 같아요'이런 식으로 많이 말하죠. 이러면 표현에 힘이 빠집니다. 일부러 힘을 뺄 때를 제외하고는 "~것 같다'는 표현은 자제하도록 고쳐보면 좋겠습니다.
또한 번역투라고 불리는 수동형은 최대한 자제해야 합니다. 별 부담이 없으면 능동태를 쓰도록 고친다면 훨씬 읽기 편한 글이 될 것입니다.
3. 글을 더듬게 하는 접속사를 처형하라!
예를 먼저.
그래서 나는 학교로 갔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고는 우리들은 같이 어울려 영화 얘기를 했다. 그런 얘기가 너무나 재미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두 시간 동안이나 영화얘기를 했고, 그러다 보니 한두 명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에 자리를 떴다. 그래서 나머지 우리들만 빵집으로 가서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접속사인 그리고, 그래서, 그러다 보니, 그럼으로 인해서, 게다가 등등. 우리는 글에 자주 접속사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윗 글에서 접속사를 다 없애버려도 문장은 이상해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나는 학교로 가서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들은 같이 어울려 영화 얘기를 했다. 너무나 재미있어 우리들은 두 시간 동안이나 영화 얘기를 했고, 한두 명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자리를 떴다. 나머지 몇 사람만 빵집으로 가서 얘기를 계속했다.
문장 길이부터 차이 납니다. 문장이 간결해지면 압축성이 생기고, 압축성이 생긴 문장은 가독성이라는 폭발력을 갖고 옵니다. 퇴고 시에는 문장은 짧게 고쳐보도록 합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으면, 끝내라.
-루돌프 플레시
하고 싶은 말만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접속사를 처형합시다. 만약 접속사를 꼭 써야한다면, '그럼으로 인해서'같은 긴 접속사보다는 '그래서' 정도로 가장 짧은 접속사를 쓰도록 해야합니다.
4. 반복되는 음운현상을 배제하라!
사용하는 어휘가 제한되면 표현력도 제한됩니다. 똑같은 '고맙다'인데도, '굉장히 고맙다'와 '대단히 고맙다' '무진장 고맙다' '억세게 고맙다' 등등 여러 표현이 골고루 가능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여러 표현이라고 해도 반복되는 음운현상이 나타나면 풍부한 어휘력을 보여주기는 커녕 읽기에 걸리는 부분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나는 가는 길에'에서 어미가 '나는'과 '가는'이 반복됩니다.
이럴 때는 '나는 가던 길에' 등으로 고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좋은 사람은'에서 역시 '좋은'과 '사람은'의 어미가 반복. '훌륭한 사람은'으로 고칩시다.
단순히 이어지는 어미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문장 전체의 획일적인 양상이 다채로워져 답답한 문장이 싱싱함을 갖추게 됩니다. 일부러 같은 어미의 단어를 쓰는 때가 아니라면 반복되는 음운현상을 배제하는 것이 문장의 가독성을 높여줍니다.
퇴고는 초고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입니다. 아니, 초고가 40%라면 퇴고는 60% 이상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쓴 문장과 문단이라고 하더라도 가독성이 없으면 읽히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서는 가독성을 가진 문체를 가져야만 합니다. 이것은 작가 자신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읽기에 쉬운 글이 쓰기 어렵다'고 헤밍웨이가 말했죠. 라이트노벨은 말 그대로 '경소설'입니다. 어떤 소설보다도 읽기 쉬워야만 합니다. 그래서 가장 쓰기 어렵다고도 할 수 있죠, 하하.
한국적인 것을 지키려고 한다면, 우선 한국인에 맞는 문체를 쓸 줄 알아야겠죠. 많은 글이 일식이라고 욕을 먹는 모양입니다만, 한국의 문화와 한국인의 문체를 정확히 이해하면서 글을 쓴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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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퇴고는 두고두고 계속합니다.
퇴고법
0. 내용 흐름을 본다.
0-1. 동작 확인.
0-2. 심리 묘사 확인.
1. 문단 구성을 본다.
2. 문장 구성을 본다.
3. 오탈자를 본다.
위의 퇴고법을 무한루프~
시드의 창작마당에서 올렸던 글 재탕;;;
친노엔으로 돌아서면서 이곳에 자취를 다시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