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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페미투사 고요X유림 체인지
글쓴이: 반동분자
작성일: 12-10-31 23:51 조회: 4,095 추천: 0 비추천: 0

합리적 페미투사 고요X유림 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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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원화와 화랑 두 사조직이 대한민국의 정부조직을 양분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1.

컨퍼런스가 호텔에서 열리고 있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시란 언니와 유림, 두 사람은 화장실 거울 앞에서 흐트러진 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었다.

“개는 개답게 집이나 잘 지켜주면 좋겠어요.”

문득, 시란 언니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인형 같은 외모의 시란 언니는 키가 유림의 가슴께에도 오지 않는 유아적 체구의 소유자였다. 유림은 그런 언니를 인형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시중들고 있었다.

“예?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러니까, 남자들 말이에요. 연합이니 뭐니 하면서 모여서 주인한테 대들기나 하고. 개중에는 자꾸 유림 양을 훔쳐보는 놈도 있었었던 거 아세요? 이름이 선우였나 뭐였나. 얼마나 불쾌했나. 몰라요.”

유림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응? 왜 그런 표정이에요?”

눈가에 화장을 하던 시란 언니가 고개를 돌려 유림을 올려다봤다.

유림이 말했다.

“그야 여성부랑 남성연합으로 대표되는 원화와 화랑 두 조직이 오랫동안 대립해온 거야 잘 알지만요. 그렇다고 해서 남성 전체를 비하하는 건 성 평등의 관점에서 어떨지요. 게다가 지금 두 기관이 협의를 한창 하고 있는 마당에 조심해서 말씀하셔야지 않겠어요?”

“여긴 우리 둘뿐이잖아요.”

시란 언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림 양이 밖에서 떠들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아요?”

“그야 그렇지만….”

후훗

시란 언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유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림 양 오늘따라 이상하게 순진하네요. 농담이에요 농담.”

“에, 농담요?”

“물론 더럽고 덜 떨어진 남자들보다 여자가 월등히 뛰어난 건 당연하지만요.”

“네?”

오락가락하는 시란 언니의 말에 유림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런 유림을 보며 시란 언니가 킥킥, 숨죽여 웃었다.

“오늘 진짜 이상하네요. 평소 같았으면 독설을 퍼부었을 유림 양이 왜 이러실까.”

시란 언니의 말에 유림이 몸을 굳혔다.

화장을 마친 시란 언니가 딱, 소리가 나게 팔레트를 덮고 후훗 웃음을 흘리며 유림에게 다가왔다. 유림을 올려다보는 시란 언니의 눈가가 연분홍빛으로 반짝였다.

“어차피 오늘 컨퍼런스는 전시 행정의 일환인 거 아시죠, 유림 양?”

“네에 뭐…, 공개 토의로 개정안을 조율한다고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거고, 실제 조율은 사전에 이미 다 끝났지요.”

“컨퍼런스의 주제는 뭐죠?”

“성 평등 실천을 위한…” “성 평등, 그런 건 사실 아무래도 좋아요.”

유림의 말을 끊고 시란 언니가 말했다.

“그러면요?”

긴장한 유림의 허벅지 위에 시란 언니의 손끝이 닿았다.

“이 언니는 이렇게 생각해요.”

스타킹 너머로 언니의 손길이 느껴진 유림이 얼굴을 붉혔다.

“여성부, 그리고 원화는 가능한 한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힘쓰면 된다고요. 성 평등 같은 건 그러기 위한 구실일 뿐이에요. 정말로 남성이 여성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남성의 권리 따위는 알 바가 아닐 뿐이죠.”

시란 언니의 손길이 점점 은밀한 곳으로 파고들자, 유림이 두 손으로 힘껏 치마 밑을 눌러 언니의 손길을 막았다.

“어, 언니. 그만 좀 더듬으세요.”

“후후, 잡아먹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긴장하지 말아요.”

주춤주춤 뒤로 밀려나는 유림에게 시란 언니가 속삭였다. 물론, 시란 언니의 키가 작아 유림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좋은 그림이 나오진 않았다.

시란 언니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성의 권리 이전에 여성부-원화의 정치적인 입지를 챙기려고 하는 거고요. 이번에 남성연합-화랑과 본 합의도 그런 맥락에서 양측의 이득을 챙기는 조건으로 이루어졌죠. 그런데 있잖아요. 그거 아세요?”

구석으로 몰린 유림의 앞에선 시란 언니가 홍조를 띠우며 말했다.

“제 개인적으론 가장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조직의 이득 전에 저 개인한테 가장 중요한 건…”

시란 언니가 두 손으로 드레스를 허리 위로 걷어올리며 고백했다.

“당신이죠.”

하얀 레이스 팬티가 보였다.

시란 언니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만져볼래요?”

“시란 언니 뭐하시는 거예요!”

화를 내던 유림이 눈을 꼭 감고 시란 언니를 껴안았다.

“어머.”

갑작스러운 유림의 포옹에 시란 언니가 도리어 깜짝 놀란 듯 눈을 깜빡거리더니,

“과연, 이렇게 하면 보이질 않네요.”

푸훗, 웃으며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 이러시면 저, 화낼 거예요?”

“유림 양은 화내는 모습도 매력적인걸요.”

“우우…, 됐어요. 됐으니까, 늦기 전에 컨퍼런스 홀로 가요. 안 오시면 저 혼자 먼저 갈 거예요.”

“조금만 더 둘이 있다….”

“언니, 안녕히 계세요.”

“앗, 유림 양 잠시만요!”

시란 언니가 따라오든 말든, 붉어진 얼굴을 숨기며 걸음을 재촉하던 유림은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돌렸다. 자칫했으면 자신이 유림 누이가 아닌 것을, 여성이 아니라 남성인 것을 들킬 뻔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시란 언니는 누이의 수첩에 적혀있던 대로의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태도에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덕분에 실수를 연발했다.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누이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 들키지 않고 어떻게 잘 넘겼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유림은 컨퍼런스 홀에 당도했다.

* * *

“저 화났어요.”

시란 언니가 옆자리에서 속삭였다. 협의가 진행 중이었다.

“정말로 혼자 가버리면 어떡해요? 언니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됐는지 아세요?”

“상처 날 가슴도 없잖아요.”

“으, 정말!”

유림의 차가운 반응에 시란 언니가 투덜거렸다.

유림은 지루한 눈으로 컨퍼런스 홀의 정경을 둘러보았다.

‘성 평등 실천을 위한 문화 산업 정책 연구’를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컨퍼런스는 곧 발의될 ‘성 평등 실천 기금 개정안’을 위한 기초 모임 성격을 띠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기존에 문화 업계 매출액에서 0.5%를 원천 징수하던 것을 1.0%로 상향하는 것이 이번 토의를 통해 도출될 결론이었다.

유림은 성 평등을 빌미로 그런 수작을 부리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컨퍼런스다. 이야기의 종국에는 원화와 화랑 두 조직에게만 해피할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만, 유림 개인이 나서봤자 어찌하겠는가.

유림이 그런 냉소적인 생각으로 일정에 따라 진행되는 자유토론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이의 있습니다. 반대 의견을 개진합니다.”

갑작스레, 여자아이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매출액의 1%를 원천 징수하는 것은 업계에 너무도 과중한 부담입니다. 기금을 꼭 확충할 필요성이 있다고한들, 단기간에 기금을 확대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앞서 논의된 바대로 문화 산업 발전에 따른 부작용이 분명한 만큼…”

“문화예술이 성 관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앞서의 논의는, 그 전제부터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웅성웅성

돌발적인 상황에 참석자들이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고 소란스러워졌다.

“저 년 소속이 어디야?”

누군가 외쳤다.

파란을 불러온 소녀는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소녀의 언니로 보이는 사람이 당황스러워 하며 소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보아하니 원화 소속인 아이 같은데, 정말 하룻강아지가 따로 없네요.”

시란 언니는 기가 차다 못해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서도,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네요. 유림 양만은 못하지만.”

“확실히… 그러네요.”

유림은 소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소녀는 자신의 언니에게 끌려나갈 듯 보였다. 그러나 언니의 팔을 뿌리친 소녀가 좌중을 돌아보며 소리 높여 말했다.

“소위 ‘평등기금’ 정책은 일부 단체만 이득을 보는 분명한 악법입니다. 문화예술을 탄압하는 왜곡된 전제를 토대로 논의를 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평등기금’ 정책은 가능한 한 조속히 폐기해야 합니다. 이미 확보된 기금은 단계적으로 축소시켜 나가야 하며 여기에 얽혀 이득을 보는 단체는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컨퍼런스 홀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소녀가 말한 그 ‘일부 단체’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소녀의 외침은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는 망발이었다.

“원화와 화랑 두 조직의 밀실 야합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집어치워!” “원화 사람들은 지금 뭐하고 있나?!” “고요 당신 당장 입 닥치지 못해요!”

소녀로 인해 공개토론회가 파행으로 치닫았다.

당황한 사회자는 일정을 앞당겨 휴회를 선언했다.

2.

유림은 홀로 화장실을 향했다.

시란 언니가 따라오겠다고 앙탈을 부렸지만 유림은 그런 언니를 극구 만류하였다. 자신의 여장에 허점은 없는지 확인하고자 화장실에 가려는 것인데 언니가 또 졸래졸래 따라오면 곤란하다.

“하아….”

거울 앞에선 유림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는 것이 아직 어색했던 까닭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피스 레이디의 전형적인 차림을 한 자신의 모습이 문제였다.

시란 언니와 함께일 때는 긴장해서 제대로 못 느꼈지만, 홀로 있게 되니 새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유림은 복장을 체크하며 여태까지 자신이 누이로 잘 분했었는지 떠올려봤다.

“들킬 만한 잘못은 없었겠지?”

누이가 남긴 부탁에 따라, 누이를 위해서, 당장의 호구지책을 위해 동생인 그가 누이의 이름을 빌리고 신분을 빌려 열심히 누이, 유림인 척해왔다.

누이의 수첩에 적힌 내용과 모처에서 건네받은 정보를 충분히 숙지한 보람이 있었는지, 이 점에서는 의심받지 않았다.

또한 누이와 쌍둥이처럼 닮았었던 자신이 누이의 화장품과 옷가지를 그대로 쓰니 외모로 인해 들키지는 않았다.

결론적으로, 아직까지 자신을 의심하는 눈초리는 찾을 수 없었다.

문제는 누이의 언행이었다.

동생인 자신이 말하기도 뭐했지만, 원래의 유림은 만사에 냉소적인 독설가였다.

그러나 누이에 비해서 자신은 그렇게까지 속마음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격적인 면에서 자신은 쉽사리 누이를 따라할 수가 없었고, 그 점이 걱정되었다. 아까 전에도 유림과 자매결연을 맺은 사이인 시란 언니가 ‘오늘 따라 이상하다’고 지적하지 않았는가.

물론, 성격이 바뀌었다고 해서 자신이 아는 그 사람이 아닐 거라는 발상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법이고, 시란 언니 또한 여기서 벗어나진 않았기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시란 언니에 생각이 닿은 유림이 얼굴을 붉혔다.

다시 떠올려보니, 성희롱도 이런 성희롱이 없었다. 누이는 항상 이런 성희롱을 당해온 건가. 아니면 같이 즐겨왔을까.

‘유림 누이라면 분명히 후자겠지.’

그렇게 유림이 확신감을 품고 있을 때?.

퍽, 누군가 부딪혀왔다.

부딪혀온 사람과 함께 바닥을 구른 유림이 머리를 감싸고 일어났다.

“아 정말, 누구….”

유림의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바닥에서 헤롱헤롱하는 사람은 강단 있는 말을 내뱉은 아까의 그 소녀였다.

소녀의 팬티가 보일까 딴 곳을 보며 몸을 터는 유림의 뒤로 소녀가 어질어질 하며 급히 몸을 일으켰다.

“괜찮으…” “저기, 도와줘요!”

소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타다닥

유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녀가 한 말의 의미가 판명되었다.

군홧발 소리가 들리더니 일군의 무리가 들어온 것이다.

‘전경대!?’

유림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개 소대는 되어보이는 전투경찰 무리가 떼를 지어들어왔다.

“남자들이 함부로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고 난리야!”

유림이 외치며 소녀를 데리고 화장실 안으로 피했다.

“귀찮은 일은 사절인데!”

하지만 화랑의 수족으로 보이는 무리의 등장에 유림은 자기도 모르게 소녀를 도왔다.

쿵쿵

잠긴 화장실 문 너머로 손잡이를 흔드는 소리가 났다.

“문 열어!”

“열라고 열겠어?!”

유림은 잔뜩 긴장하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힐끗 옆을 보니 여자아이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가운데도 당당함 자세를 잃지 않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띠리리 띠리리

중재를 해줄 수 있을 시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언니는 무슨 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언니는 왜 이럴 때 감감무소식이야!”

밖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고함이 계속 들리는 와중에, 뭔가를 고민하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정면 돌파하죠.”

문이 부서지지 않게 받치고 있는 둘의 사이가 지나치게 가까워서 소녀의 입김이 느껴졌다.

“정면 돌파?”

정면 돌파란 단어가 씩씩하게 들렸다.

“네. 어차피 여기 있어봤자 당할 텐데, 먼저 치고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유림이 고민하려는 찰나, 문에서 떨어진 소녀가 유림에게 외쳤다.

“비켜요!”

소녀의 박력에 밀려난 유림이 문에서 비켜서자 문을 활짝 열어버린 소녀가 유림의 손을 붙잡고 뛰었다.

“큭!” “놓치지 마!” “잡아!”

전경들이 외치며 따라왔지만, 무슨 일인지 소녀의 뒤를 쫓는 유림에게 손을 대는 것은 머뭇거렸다.

그 틈에 둘은 전경들을 따돌렸다.

* * *

도망쳐온 두 사람은 호텔 몇 층인가 계단에 있었다. 소녀가 계단 위에 주저앉았다.

“힘들었어요….” “힘들었어….”

두 사람은 한참 하아하아 숨을 골랐다.

“저기, 미처 말을 못했는데요.”

소녀가 간신히 말을 걸어왔다.

“네?”

“아까 이거 흘리셨어요.”

소녀가 내민 것은 누이의 수첩이었다.

“저랑 아까 부딪쳤을 때 흘리신 걸 주워왔어요.”

“아아, 고마워요.”

유림이 깜짝 놀라 수첩에 손을 뻗었다. 수첩에는 자신의 정체를 짐작할 만한 내용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아.””

수첩이 툭, 땅에 떨어졌다.

둘 다 숨을 헐떡이는 상태라 유림이 제대로 수첩을 받아들지 못한 것이다.

떨어진 수첩은 계단에 앉아있었던 소녀에게 가까웠다.

수첩을 집어드는 소녀의 목덜미에 유림의 눈길이 닿았다.

젖어든 소녀의 목덜미가 에로틱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된 거, 무슨 내용인지 봐도 되요?”

“네에…. …예?”

한눈이 팔려있던 유림이 실수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잠시만요.”

유림이 당황스러워 하며 소녀를 멈추어 세웠지만, 소녀는 이미 수첩을 열어본 상태였다.

“이름이… 정유림 씨?”

“네. 그런데 수첩 좀…”

“어머, 선배셨네요. 실례했습니다.”

화들짝 놀란 소녀가 일어서 인사했다.

“아, 원화 소속이에요?”

“네. 채윤지 님의 동생, 이고요라고 합니다. 8학년의 편입생이에요.”

“반가워요 고요 양. 9학년의 정유림이라고 해요. 제가 선배인 게 맞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유림 선배.”

삼권을 막론하고 정부조직 구석구석에 퍼져있는 사조직 원화는 원래 공기관에 몇 없는 여성들의 친목회로 시작되었다.

원화는 현재도 그런 전통이 남아있어 품격이 높다고 평가되는 여성만을 가려 받는다. 원화는 또한 정식 지위와 직급 등을 고려하여 사조직 내에서의 위치를 결정하는데, 이는 1학년에서 12학년까지가 존재하는 학년제이다.

이를 바탕으로 선후배 관계가 설정되는 원화에 외부인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존 회원과 자매결연을 맺을 필요가 있다. 일종의 추천제인 셈인데, 이렇게 한번 설정된 언니와 동생 관계는 조직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바뀌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자매 관계가 모여 몇 개의 파벌을 형성하는데, 이러한 파벌들이 현재 대한민국을 이끄는 명실상부한 중심 세력인 것은 명백하다.

…와 같은 내용을 유림은 떠올렸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유림의 말에 고요가 빙긋 미소 지었다.

“그런데, 이제 수첩을 주시지 않겠어요?”

유림이 살짝 애를 태우며 말했다.

“아, 네. 드려야죠.”

고요가 수첩을 건넸다. 수첩을 품에 안아든 유림이 한숨을 내쉬었다.

“소중하신 건가봐요?”

그 모습을 본 고요가 물었다.

“네… 소중하다면 소중한 물건이죠. 여러 사연을 가진 물건이기도 하고요.”

유림이 멋쩍어 하며 대답했다.

“아까 휴회까지 하게 만든 사람, 고요 양이 맞지요?”

“아, 그거요….”

고요의 얼굴이 빨개졌다.

“저도 이제 원화 사람인데… 선배들한테는 죄송한 짓을 했어요. 사죄드립니다.”

“아뇨. 저도 고요 양이랑 그렇게 다른 생각인 것도 아니고…. 지금의 원화는 너무한 면이 있죠.”

고요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했다.

“원래부터 원화인 분들 중에 그런 생각이신 분이 있을 줄이야…. 아, 입조심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말 들어도 별 상관 안 해요. 그보다, 편입생이시면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어요? 원화나 화랑 소속이 아니면 진급 심사에서도 불리한 면이 있을 테고.”

고요가 아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이제 와서 들어와보니 그동안 안 들어가겠다고 고집피운 게 바보 같기도 하지만….”

씁쓸하게 웃는 고요의 머리를 유림이 쓰다듬으며 말했다.

“힘들었겠어요.”

“엣….”

“아, 멋대로 굴어서 미안해요.”

고요가 얼굴을 붉히자 유림이 급히 손을 떼었다. 고요가 수줍어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유림 선배가 진짜 언니 같다는 감정이 들었을 뿐이에요. 좋네요, 이런 기분도.”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자 헛기침을 한 유림이 시선을 돌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방금 전에는 왜 화랑 쪽 사람들한테 쫓기고 있었던 거죠?”

“예? 화랑이라니요?”

고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전경대한테 방금 쫓겨왔잖아요.”

“아…, 그 사람들은 화랑 쪽 사람들이 아니에요.”

“에-?”

“원화측 사람들이죠.”

“……네?”

유림이 경악했다.

“협의를 방해하니 어쩌니 하면서 절 내쫓으려고 따라다닌 거예요.”

농담이죠. 그렇죠?

그때, 밑에서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 저기…!”

고요의 말에 유림이 잘 돌아가지 않는 목을 돌려 아래를 봤다.

전경대가 보였다.

“거기 계신 분들이 유림 선배랑 고요 선배 맞습니까? 원화 5학년생이자 본 전경대의 소대장을 맡고 있는 강하림 경위입니다. 해치지 않을 테니 내려와주십시오.”

진작에 원화 소속인 걸 말하면 됐잖아!

“순순히 백기를 드는 게 좋겠어요.”

유림이 싸늘하게 말하며 내려가려 하자 고요가 유림의 팔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이대로는 안 돼요!”

“이거 놓으세요!”

소리를 치던 유림이 미끄러졌다. 내려가려고 하던 유림이 고요의 손길을 뿌리치려고 팔을 휘두르는 바람이었다.

계단은 미끄러웠고,

유림은 넘어지지 않으려 반사적으로 고요의 치마자락을 붙잡았다.

고요도 넘어지며 하반신이 노출되었다.

그리고 유림은 보았다.

“선배님들? 괜찮으십니까?”

강하림 소위가 위를 올려다보며 물었지만 정신이 없던 두 사람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유림은 고요도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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