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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를 위한 추모곡
글쓴이: 홍빈
작성일: 12-10-20 20:10 조회: 2,532 추천: 0 비추천: 0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우선 내가 처음으로 이 마을에 도착하게 된 것부터.

나는 벨. 카우보이 학교에서 8년짜리 정식 교육을 마친 공채 5기 카우보이 중 한 명. 얼마 전까지 타지의 카우보이 사무소에서 공채 4기 카우보이 중 한 명을 보좌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 관리해야 할 지역이 늘어남에 따라 발령된 곳이 이 마을이다.

땅은 말랐지만 큰 강이 마을 중앙을 뚫고 흐르는 마을. 공기는 건조하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마을. 처음 이 마을의 모습을 보고 난 뒤의 나의 감상,

“좋은 마을이야.”

한 치의 거짓도 없는 평가였다. 환경적 측면에서는 100점 만점에 70점을 주면 충분하다.(참고로 이전 근무지는 45점) 전날 비가 내렸더라면 90점 이상도 줄 수 있었겠지만, 이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마을인 만큼 분명 마을 사람들끼리도 통성명이 덜 끝났을 거예요. 이런 시기에는 이주민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어울리기에 아주 좋은 시기죠. 그러니까, 우리, 반드시 잘 해 보는 겁니다!”

내 옆에서 주먹을 꽉 쥔 오른손을 들며 “아자아자, 파이팅!”을 연호하는 소녀는 비니. 내 어깨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와 소풍날 가족들이 깔고 앉는 평평한 돗자리와 쌍벽을 가르는 체형(구체적으로 상반신 주변)이 특징. 공채 6기 카우보이 중 한 명. 현재는 내 보좌로 발령이 난 상태이며, 카우보이로써는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조용히 있자. 너 때문에 첫인상이 나빠지면 안 되잖아.”

비니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내게 들이밀었다.

“벨 형이 너무 의욕이 없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저에게 있어서는 첫 번째 임무니까요. 기합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거라고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벨은 여자아이이다. 형이라는 이질적인 칭호는 딱히 내가 원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비니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그 때의 사연을 정리해보자면, 나하고 비니가 꽤나 친해진 이후로 호칭을 정리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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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장면~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벨 씨를 벨 씨라고 부르는 것도 질리기 시작하네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이제 저희 제법 친해졌잖아요. 근데 ~씨라고 부르는 것은 뭔가 한번 보고 말 사이 같아서 불쾌하지 않아요?

별로 그렇지만은 않은데.

그러지 말고, 새로 호칭을 정하도록 해요.

어차피 나는 늘 하던 대로 비니라고 부르면 되니까 상관없는데.

그러면 저도 그냥 벨이라고 부르면 안 돼요?

왠지 반말 같아서 벨 씨보다 기분이 나쁜데.

그러면 벨 선배라던가.

근데 벨 선배라고 하면 흔하지 않아? 내 동기 중에도 벨루아랑 벨린이 있고, 4기 선배 중에는 벨벤이나 니벨도 있으니까.

확실히 그분들도 벨이라고 불리기는 했죠.

차라리 벨 오빠라고 부르는 건 어떠냐? 이 정도 칭호는 웬만한 사이에서는 안 쓸 거 아냐. 친밀감을 표현하기에는 이것만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네!?

왜 얼굴을 붉히고 그래. 그러지 말고 한번 해 봐. 벨 오빠~하고.

그, 그럼……베, 벨 오, 오오, 오ㅃ…….

잘 안들리는데.

베, 베베, 베베벨, 오오오, 오오, ㅃ……!

발음을 똑바로 해라. 베베벨오오오가 대체 누구야.

으아아갉! 역시 못하겠어! 이런 오글거리는 칭호를 만들어낸 사람이 대체 누구야! 벨 오빠 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이딴 토할 거 같은 단어를 어떻게 입으로 말하냐고!

야야, 왜 화를 내고 그러냐. 아아, 알았으니까 그만 좀 때려. 아프거든? 너 엄청 힘주고 있어서 아프거든? 그만 때리라니까? 응? 죽고 싶냐?

그런 경위로 형이라는 칭호가 생겨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비니가 날 형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외관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암, 그렇고말고. 비니는 이제부터 한 명의 훌륭한 카우보이 미소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일단 우리 사무소부터 찾자. 마을 외곽에 있는 2층 건물이라고 했었지?”

“동향 외곽에 있는 건물은 그것이 유일하니까 찾는 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들었어요.”

동향 외곽을 열심히 둘러보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건물’처럼 보이는 것은 없었기에 조금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 외에 특징은?”

“건물 외곽이 빨간 벽돌이고, 지붕은 파란색 슬레이트로 되어 있다고 했죠.”

빨간 벽돌에 파란색 슬레이트로 만들어진 ‘건물’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비니, 아무래도 말이 잘못 전달된 것 같아. 동향이 아니라 서향 쪽으로 가 볼까?”

“벨 형, 이제 슬슬 눈앞의 현실을 인식하는 게 어때요? 부국장님이 주신 메모에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마라’라고 적혀있네요.”

사실 한참 전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다만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나머지 실낱같은 희망을 조금 더 걸어보고 싶었을 뿐.

아주 낡은 여관. 적어도 5년은 넘게 방치된 것 같은 이 ‘건물’이 우리의 사무소가 될 건물이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에 발령받은 건물은 아주 양호했는데.

자, 도피를 시작하자. 진실이라는 이름의 수갑을 풀고 망상이라는 이름의 날개를 달고 날아가자. 사실 이 건물의 내부는 말끔하게 정리된 사무소의 풍경이다. 외관은 아직 인테리어가 덜 끝났을 뿐, 사실은 아주 양호한 상태의 건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류 요리사의 식단에 따라 식사를 대접받고 일급 여종의 수발을 받으며 하루하루 사치스런 나날을……

“벨 형?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요.”

“아니, 멀쩡하다.”

비니의 말로 강제 환몽된 나는 결심하고 대문의 양 손잡이를 잡았다. 자, 떠나자 새로운 세계로. 문을 안으로 활짝 열어젖히며 힘차게 외치는 거다.

“우리들의 환상향, 유토피아는 여기인가!”

그리고 우리는 발견할 수 있었다. 내부도 외관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안개처럼 자욱하게 쌓인 먼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잡동사니. 오랫동안 물이 고여 썩은 마룻바닥.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계단.

유토피아는 없었다. 물론 요리사도. 여종도.

나를 이곳으로 발령한 부국장을 죽여 버리고 싶어졌다. 이전의 생활을 돌려받고 싶다.

“그러고 보니 부국장님이 첫 번째 위기에 봉착하면 열어보라고 준 메모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지금이 그 순간인 것 같죠?”

넋이 나간 나에게 그렇게 말한 비니는 내 옆에서 메모를 열어보았다. 메모에는 짧은 한 마디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청소해라」

부국장을 진심으로 죽여 버리고 싶어졌다.

우리들의 청소(라고 쓰고 재건축이라 읽는다)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첫 발을 내딛자 푸석 하고 바닥이 부서졌다. 나도 비니도 방심해서 넘어졌는데 넘어진 곳도 푸석 하고 무너졌다.

“일단 마룻바닥……하고 천장인가.”

“천장은 왜요?”

“마룻바닥이 이렇게 습기를 먹었으면, 틀림없이 천장도 새고 있는 거야. 비가 오면 확실해지겠지.”

“벨 형은 묘한 데서 추리력을 발휘하네요.”

“좀 자만해도 되는 장면인가?”

오른손으로 V자를 만들어서 눈에 갖다 대는 ‘자만 포즈’를 취했다.

“헛짓거리 하지 말고 청소나 하죠.”

“그러게.”

늪처럼 푹푹 빠지는 마룻바닥을 해치며 한쪽 벽에 다다랐다. 무언가 움푹 파인 것 같더니 조금씩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시험 삼아 주먹으로 살짝 치니 친 부분이 두부처럼 푹 꺼졌다. 그리고 파인 부분을 시작으로 옆 부분을 잡고 뜯어내자 퍼즐 조각처럼 뜯어져 나왔다.

“아주 벽을 다 부수고 계시네요.”

옆에서 비니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다 부셔야 돼. 이대로는 1년도 못 버틸 거야.”

“벽이 그렇게 부서지는 건 난생 처음 보는 관경이네요.”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다가, 시멘트 사이로 들어가서 얼고 녹고를 반복해서 풍화된 거야. 그게 아니면 처음부터 부실공사로 지었던가.”

“이제 와서 하는 얘기인데, 그냥 다른 집으로 하면 안 돼요? 지원금도 엄청 받았는데.”

“요즘 집값이 얼만데 그걸로 어떻게 되겠냐. 무엇보다 건물 옮기려면 인수인계할 서류가 너무 많아. 적어도 네 키만큼은 쌓일 거다.”

“키는 콤플렉스니까 자주 건들지 마세요.”

“가슴도?”

“가슴은 프라이드입니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빈유는 심장과 더 가깝기 때문이죠.”

의사 선생님에게 진찰 받기에는 편하겠네.

“그러고보니 제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다녀온 때가 적어도 10년은 지났을 걸요.”

“그건 그것대로 건강해서 좋다만. 그래도 잔병치레 같은 거 많이 안 해두면 나중에 훅 간다. 예방접종도 자주 맞으러 다니고.”

나름대로 걱정하는 느낌으로 말하자 비니가 얼굴을 붉혔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럼 이제 마지막은……여긴가?”

집 안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폭삭 무너지기 직전의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아, 비니. 올라가라.”

“그렇게 산뜻하게 명령하지 마세요. 이거 아무리 봐도 100%무너지는 거잖아요. 올라가면 안 되는 거잖아요.”

“2층의 참상도 확인해야 할 거 아냐. 너에게 맡긴다.”

“싫은데요. 벨 형이나 올라가시죠.”

“올라가면 키 커진다는 소문이 있어.”

“누굴 지금 바보로 아는 거예요?”

“올라가면 성격이 좋아진다고 하던데.”

“그건 지금 제 성격을 부정하는 건가요?”

“올라가지 않으면 얼굴 반쪽인 귀신이 한밤중에 너희 집에…….”

“지금은 제 집이랑 벨 형 집이랑 같잖아요.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해요.”

결국 비니의 말대로 가위바위보를 하게 되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내 승리이다. 당당하게 ‘자만 포즈’를 취했다.

“파이팅! 넌 할 수 있어, 비니!”

“들어봤자 기분만 나쁠 뿐인 응원은 그만두세요.”

비니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의외로 계단은 삐걱거리기는 했지만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텼다. 비니가 가벼운 덕분이게도 있겠지만.

“이거 겉보기에는 이래도 의외로 멀쩡한 건지도 모르게아아악!”

비니가 계단을 일곱 번째 칸까지 올라갔을 때 계단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계단과 함께 떨어지고 있던 비니의 몸을 잡고 끌어당겨서 겨우 구출해냈다.

“고, 고마워요. 벨 형.”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네. 그런데 위층은 봤어?”

“언뜻 봤는데 방이 대여섯 개 정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외에는 잘…….”

“그거면 돼. 수고했어.”

나는 격려의 표시로 비니의 등을 두어 번 두들겼다. 여자아이의 등은 부드럽구나. 뭔가 뭉클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의……응?

“지,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왜 예고도 없이 가슴을 만지는 건데요!”

먼지 때문에 잘 못 봐서 그런지 아마 등이 아니라 가슴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방금 그 발언은 예고하고 만지면 괜찮다는 뜻인가?

“난 그저 격려의 뜻으로.”

“직장 상사 남자는 부하 여직원의 가슴을 격려의 뜻으로 만질 수 있는 건가요?!”

“미안, 등인 줄 알았어. 자랑스러워하라고. 네 가슴은 등보다 심장에 가까우니까.”

“여기서는 제가 명백히 화내야 할 대목 아닌가요?”

“괜찮아. 개에 물린 셈 치고 넘어가지 뭐.”

“뭘 혼자 마음대로 괜찮아하는 거예요! 제가 괜찮지 않거든요?”

결국 비니에게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5분 가까이 설교를 들었다. 그나저나, 확실히 부드럽긴 했지. 묘하게 탄력도 있었고. 아니, 이 회상은 여기까지만 하자.

청소에는 기본적으로 재료가 필요했다. 일반적인 청소의 개념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 물걸레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일반적인 청소가 아니었다.

하드코어, 불지옥, 헬, 최고난도, 극악의 청소였다.

일단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걸을 때마다 푹푹 꺼지는 썩은 마룻바닥을 대체할 바닥 재료. 이미 시멘트가 훤히 드러나 있는 벽과 천장을 감쌀 벽지. 헐어지고 무너진 벽의 곳곳을 메울 벽돌과 시멘트, 그리고 2층 계단을 새로 지을 목재도 필요했다. 계단이 무너졌기 때문에 2층 이상의 참상은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마음 같아서는 비니의 말대로 이 집을 헐어버리고 새 집을 짓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겠지만. 그때까지 나와 비니가 지낼 곳을 보장받지 못할뿐더러, 건물을 부수고 옮기는 데에는 쓸데없이 많은 서류와 허가절차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상부의 말을 그대로 따를 줄 아는 준상정신(상사의 말을 준수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그럼 재료를 어디서 구하느냐, 적어도 직접 나무를 베서 가공하고 흙을 구워서 벽돌을 만드는 식은 아니다. 당연히 사서 쓴다. 물론 전쟁 이후인 데다가, 이 근방은 완전히 황무지이기 때문에 더럽게 비싸다. 하지만 상관없다. 여기 떠나기 전에 받은 지원금의 액수가 더 많으니까. 지원금을 전해주던 회계 관리사가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봤던 게 생각났다.

사서 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건 어찌 보면 좋은 기회였다. 뜬금없이 나타나서 마을 사람들에게 ‘앞으로 이 근방을 관리하게 될 카우보이입니다’하고 떡 돌리는 것은 어색할 테니까. 아예 ‘흘깃 봐도 카우보이’복장을 하고 가게에 가서 ‘어, 자네 카우보이인가’ ‘네, 앞으로 이 근방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같은 전개도 괜찮겠지.

우선 시멘트와 벽돌은 내가, 나무와 벽지는 비니가 준비하도록 하고 우리들은 시장 입구에서 갈라졌다. 이른바 만물상이라고 하는 곳에서 건축 자재의 대부분을 구할 수 있다. 다만 목재와 벽지는 가구점에서 따로 구해야 하기 때문에 찢어진 것이다. 내가 무거운 벽돌이고 비니가 가벼운 나무인 것은 딱히 내가 여자인 비니를 배려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아까 계단에 올라가게 한 게 미안해서 그런 것뿐이다.

만물상에 도착한 나는 주인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가운데 머리가 벗겨진 남자는 대략적으로 50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주인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문했다.

“벽돌이랑 시멘트가 필요하거든요. 조금 많이.”

“하기야 여기 오는 사람은 대부분 그거 사는 것 이외에는 안 오지. 그건 그렇고, 자네 혹시 카우보이인가?”

“네, 오늘부로 이 근방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악수하자는 뜻으로 손을 내밀었지만, 가게 주인이 홀랑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려서 갈 곳 없어진 손을 어색한 동작과 함께 주머니에 넣었다. 이윽고 가게 주인이 안에서 커다란 양동이를 하나 들고 나왔다. 안에는 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저, 이건 어떻게 쓰는 건데 주시는 거죠?”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는 거다, 썩을 놈아!”

그리고 그 예감은 대게 들어맞기 마련이지. 주인아저씨는 예고도 없이 한 양동이의 물을 내게 뒤집어씌웠다. 물로 싸다구를 연속 일곱 번은 맞은 느낌이다. 그리고 빈 양동이를 머리에 던져서 맞추는 것으로 피날레까지 완벽하게 장식하셨다.

“당장 나가! 이 망할 카우보이 녀석들아!”

주인아저씨가 뭐라고 크게 소리쳤지만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방금 그 물 때문에 총기에 물이 들어갈 것이다. 서둘러서 닦아내야 한다. 우선 허리춤에 감겨 있는 리볼버를 꺼냈다.

“허……역시 카우보이인가. 이젠 총으로 쏴 죽이려고?”

“아, 아닙니다! 이건 그저 총기가 젖을까봐…….”

증명하기 위해 손수건을 꺼내서 총기를 닦……망할, 손수건도 젖었잖아. 주인아저씨를 바라보았더니, 이번에는 살벌한 표정으로 한 손에는 벽돌을 들고 있었다.

“빨리 꺼지지 못해!”

제압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누군가를 증오하는 눈빛을 가진 사람은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기 때문에 섣불리 대치하는 것은 위험했다.

“알겠어요. 나갈게요. 나간다구요.”

풀어진 옷매무새를 정리할 틈도 없이, 난 쫓겨나듯이 만물상에서 빠져나왔다.

이곳은 시장 입구에 있는 공원. 그곳에 있는 작은 벤치. 나와 비니가 다시 만나기로 했던 장소이다. 물에 흠뻑 젖은 생쥐 꼴로 벤치에 걸터앉아 있었다. 비니를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터덜거리는 발걸음의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온몸이 흠뻑 젖은 데다, 톱밥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을 보니 나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은가 보다.

“보아하니 마찬가지인 모양이네.”

“벨 형도 저도 완전히 젖어버렸네요. 둘이 이렇게 나란히 젖어 있으니까 조금 야한 건 같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에서 무슨 헛소리야. 게다가 톱밥은 아무래도 좀 심한 거 아냐?”

“아니, 저도 사실 벨 형이랑 마찬가지로 물을 뒤집어썼거든요. 이건 나오는 길에 각목에 걸려 넘어졌는데, 마침 넘어진 곳이 톱밥 쓰레기를 모아 놓은 곳이었고요.”

이건 뭐 바보도 아니고.

“그쪽에서도 카우보이를 싫어했어?”

“네, 아무래도 카우보이에 대한 악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큰일이군. 과연 이런 마을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그래도 물을 뒤집어 쓴 것 정도는 나은 편이지. 적어도 생명의 위협 같은 것은 받지 않았잖아.”

나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듯, 이야기를 나누는 나와 비니의 앞에서 작은 돌멩이 같은 것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얏! 죽어라! 이얏!”

“죽어! 카우보이들은 죽어!”

“이 마을에서 사라져!”

대략 5~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대여섯 명. 어린애들의 입에서는 나올 리가 없는 험한 말들을 내뱉으며 우리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다. 겨우 어린아이들이니 맞아서 죽을 위기는 아니지만, 아프다는 것까지는 부정할 수 없었다.

“잠깐, 아, 아파…하지 마, 얘들아….”

“누나가 아프대잖니, 그만 하려……아야.”

“우리 엄마가 카우보이는 죽이랬어!”

“카우보이는 죽어버려!”

“누나가 어디 있어!”

“형들밖에 없잖아!”

이 아이들은 인신공격도 할 줄 아는 건가. 아니면 순수한 어린아이(별로 순수해 보이지는 않지만)의 눈으로는 역시 비니는 남자로밖에 안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비니는 그거에 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휘잉.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엄청난 속도로 비니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그것을 재빨리 손으로 잡았다. 손바닥에 강한 충격이 전달되었다. 아마 그대로 맞았으면 비니의 얼굴이 뭉개졌을 것이다. 비니도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고 있었다. 아직 상황판단이 덜 끝난 듯 눈동자를 좌우로 열심히 굴려대었다.

던진 사람은 15세 전후로 보이는 소녀. 흰색의 긴 생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우리들을 노려보는 눈매는 아주 매섭고 날카로웠다. 마치 우리에게 엄청난 증오라도 품은 듯.

“카우보이, 나빠. 카우보이, 죽여.”

그렇게 말한 소녀는 다시 한 번 돌을 주워서 던졌다. 늦기 전에 비니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돌멩이는 방금 전까지 비니가 있던 벤치에 맞아 그대로 쪼개졌다. 계속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로 누군가 죽을 것 같아서, 강권을 발휘하기로 했다.

“너희들 그만두지 못해!”

내 고함 소리에 어린아이들은 살짝 겁을 먹은 듯 도망치거나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주위에서는 우리들을 향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카우보이야. 무력으로 행하는 것 하고는.”

“진짜 더러워. 애들 앞에서만 소리 지르고.”

“저런 게 뭐가 좋다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거야?”

하나같이 카우보이를 매도하는 말들. 그것들은 전부 증오, 경멸, 비난이라는 이름의 화살이 되어 나와 비니의 가슴에 하나 둘 박혀왔다.

“어째서 우리에게 이런 짓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들 이러는 것 전부 불법이야! 특히 흰색 머리 너! 네가 한 짓은 엄연히 살인미수다! 살인미수는 지금 법대로라면 사형이라고!”

흰색 머리 소녀는 내 말을 개 짖는 소리 정도로도 생각하지 않는 듯, 방금 전과 같이 ‘카우보이, 나빠. 카우보이, 죽여.’라는 말을 반복하며 또 하나의 돌을 던지려고 했다. 내 품안에서 벌벌 떨고 있는 비니를 생각해서라도, 이제는 참을 수 없다. 나는 자동권총을 꺼내서 소녀의 발치에 위협사격을 했다.

“한번만 더 쏘면 그때는 팔을 맞추겠다!”

팔이나 다리를 맞추겠다는 말은 때때로 머리나 심장을 노리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맞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니까.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한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협박이 효과가 있었는지 소녀는 도망쳤다. 도망친 이유가 내 말이 무서워서인지, 단순히 총을 보고 놀라서인지는 모른다. 소녀를 포함해 우리를 둘러싸고 어린아이나, 다른 사람들도 제각기 사라졌다.

“일단 사무소로 돌아가자.”

내 옷을 꽉 붙잡은 채 벌벌 떨며 눈물을 흘리는 비니를 데리고, 그 낡은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어두워졌다. 비니는 울다가 지쳐 아무데나 팽개쳐 있는 소파 위에서 잠이 들었다. 피곤한 거야 나도 매한가지. 하지만 잠든 사이에 또 무슨 일을 당할까 걱정되어서 잠을 참고 있다.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하도 몸 이곳저곳을 꼬집었더니 이젠 감각신경도 무뎌져 버렸다. 아무래도 뭔가를 좀 씹어야겠다.

분명, 여기로 올 때 기차 안에서 비니가 껌을 좀 나눠준 적이 있었다. 아마 오른쪽 아래 주머니에 넣어 놨을……아, 찾았다.

쌓여진 은박지를 벗기고 시간이 지나 끈적끈적해진 껌을 입 안에 넣었다. 딸기향이 입 안에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졸음을 내쫓았다. 놓고 있던 정신도 조금씩 돌아오는 듯 했다. 그리고 갑자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잡생각들을 회상하는 도중 갑자기 뇌에 번개가 치는 듯 강렬한 기억이 돌아왔고, 나는 당황스러워졌다.

서둘러서 허리춤에 묶인 홀스터를 뒤졌다.

그 다음에는 양쪽 큰 주머니, 뒷주머니, 아랫주머니, 재킷주머니, 모자 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없다.

없어.

권총 한 자루가 없다.

.

.

.

어, 어디지? 내가 어디서 권총을 잃어버린 거지?

분명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리볼버가 사라졌다. 어디더라? 공원? 공원에서 분명 위협사격을 하긴 했다.

아니, 공원에서 위협사격에 쓴 총은 자동권총이다. 잃어버린 총은 리볼버.

그렇다면……만물상인가? 아니, 어쩌면 오는 길에 떨어뜨렸을 수도…….

카우보이의 생명과도 같은 권총을 잃어버리다니 제정신인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냥 잃어버린 것이라면 차라리 낫지만……아마 마을 사람들 손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했다.

아까 전 상황에서, 우리가 총을 안 맞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총기 소지는 불법이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형이다. 카우보이와 보디가드, 그리고 정상급 거물이 아닌 이상 소지는 엄연한 반역죄가 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전부가 한패가 되어 우리들을 죽여 버리면 누가 그것을 고발한단 말인가.

어디선가 우리에게 불행을 안겨 줄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은 공포처럼 보이기도 했고, 절망처럼 보이기도 했다.

건조한 한 발의 총격.

누군가가 쏜 한 발의 총알은 누군가의 심장을 뚫었다.

아니야. 죽일 생각이 아니었어.

여느 때와 같은 장난이었어.

우리들은 일제히 도망쳤다. 자리에 쓰러져 죽은 누군가를 제외하고.

아니야. 내가 아니야.

누군가는 중얼거렸다.

아니야. 장난이었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누군가는 그곳을 도망치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 한 조각의 불행한 기억.

그 기억은 두려움으로 내 심장을 뛰게 했고, 호흡이 가빠지게 했고, 땀이 흐르게 했다.

이미 나에게 있어서는 몇 번이고 되새김질되어,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사건. 그 사건이 다시 한 번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집어삼켰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를 지키는 것이다. 내 과오로 인해 비니를 아프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더 이상의 불행한 기억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길고도 짧은 첫 날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불안과 걱정에 잠 못 든 채 밤을 지새운 나와 피곤함과 공포에 질려 기절하듯이 잠든 비니에게 밤은 너무나도 짧았다. 그런 하루를 보낸 만큼 우리 둘 다 여느 때처럼 늦게까지 속편하게 자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한 시간 정도 선잠을 잤고, 비니는 새벽 5시부터 깨어나서 정신을 놓고 있었다.

“기분은 어때?”

“……별로 긍정적이진 않아요.”

“의견이 맞아서 다행이네. 일단 부국장님에게 전달하러 가. ‘이곳은 저희가 담당하기에 능력이 부족하니 더욱 유능한 카우보이를 파견하거나 파견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가장 추천하는 것은 부국장님이 직접 파견 오시는 거지만.”

“벨 형은 부국장님이랑 거의 원수지간인 거 같던데, 뭔 일 있었어요?”

“그 인간은 자기 이익밖에 생각 안하잖아. 나랑은 근본적으로 사상이 다르다고.”

여기 올 때 비니가 들고 왔던 짐을 건네주었다.

“그동안 여기 사람들한테는 내가 말해놓을게. 넌 그대로 가서 돌아오지 않아도 돼.”

이 말을 전하기 위해 그 사람들 앞에 다시 서야만 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지만, 어렸을 때 연극회 무대에 섰던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겨우 같이 일하게 된 줄 알았는데 안타깝네요.”

“너 정도면 어딜 가도 친해질 거야. 기운 내라.”

위로 같지도 않은 위로를 건네 보았지만 비니는 여전히 우울한 표정이었다.

“가기 전에 샤워라도 하고 갈게요.”

그렇게 말한 비니는 가방을 내려놓고 그대로 욕실로 들어갔다. 안에서 옷을 벗는 듯한 실루엣이 살짝 비쳐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좋은 마을이야.”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같은 감상이었다. 겨우 18시간 전의 상황과는 감정이 많이 변동된 상태지만 말이다. 뭐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이 마을을 떠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어느 마을로든 새로 발령이 나겠지. 적어도 그곳은 이곳처럼 카우보이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과 분노를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젯밤 잠깐,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카우보이를 배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린 이제 여기를 떠날 거니까. 우리랑은 상관이 없는 곳이니까.

이 낡은 사무소도, 섬뜩한 마을과도 안녕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무소의 벽을 따라 걸었다. 손을 조금만 갖다 대어도 벽면이 조금씩 으스러진다. 분명 이 건물은 오래 못 버틸 것이다. 게다가 욕실 바로 건너편 벽은 소리가 다 새어나온다. 샤워기의 물소리가 벽면을 걸러서 내 귀로 전해진다.

지금 이 벽에 부딪치면 실수를 가장해서 비니가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난 이 상황에서까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애초에 그 녀석 몸에 볼 곳이 어디 있겠냐만.

그리고 발견했다. 집 뒤쪽에 쪼그려 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야, 너 거기서 뭐하는 거야!”

눈 아래까지 후드를 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 체격으로 봐서는 20대 초반 정도일까. 내 목소리를 들은 후드 남자는 갑자기 화들짝 놀라더니 사무소의 반대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너, 거기 안 서…….”

“꺄아아악!”

수상한 남자를 쫓아가려던 나의 행동을 저지한 것은 누군가의 비명소리였다. 이는 분명 비니의 것이었다. 수상한 남자에 대한 의문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비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되어 나는 곧바로 욕실과 통하는 벽을 부쉈다. 벽안에서는 욕실의 풍경과 함께 제일 먼저 비니가 눈에 띄었다.

“비니, 무슨 일이야!”

“왜 문이 아니라 거기서 튀어나오는 거예요!”

비니의 딴죽은 무시하고 비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비니의 발치에 있는 배수구에서 기어 나오는 징그러운 거미들을.

겨우 거미 하나로 호들갑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선 거미는 한두 마리라 부를 정도가 아니라 열 마리 이상 기어 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생김새는 분명 내 기억으로는 독이 있는 거미였다. 아주 강한 독은 아니지만 온몸을 마비시켜서 몇 시간 정도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베, 벨 형! 이, 이것 좀 어떻게으아악?!”

거미 소탕보다도 비니 구출이 중요했기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비니가 물리지 않도록 들어올렸다. 오른쪽 어깨에 비니를 뒤로 들쳐 매고 비니가 떨어지지 않도록 양 팔로 비니의 다리를 붙잡았다.(들쳐 매는 과정에서 비니의 엉덩이나 허리 등에 많은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 사심은 없었다고 밝혀두는 밝혔다고 한다. 벨 모씨, 24세, 카우보이. 법정 진술문 중 발췌.)

욕실 문을 열고 서둘러 사무소 안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비니는 다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비니의 양 어깨 사이에 손을 넣고 비행기처럼 들어서 몸 구석구석 확인을…….

“대체 뭘 당당하게 훑어보는 거예요!”

희롱……이 아니라 확인 작업은 비니의 플라잉 킥에 의해 저지당했다. 다행히 독은 몸에 퍼지지 않은 듯하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비니,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당연히 몸 어딘가에 상처가 나지 않아서 걱정했던 거지. 전혀 사심 따윈 없었다고(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진짜요? 정말로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어요?”

“그래, 스틱만두에 걸고 맹세하지.”

“……? 아니, 지금 이름은 비슷하면서 전혀 다른 물건에 맹세하고 있잖아요. 맹세의 가치가 단숨에 폭락했잖아요.”

“스틱만두는 맛있는데?”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여간…….”

그렇게 말한 비니는 나를 바라보던 모습에서 뒤돌아섰다. 몸에는 여전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의 모습으로, 애써 내 앞에서 수치심을 참으려고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벨 형.”

비니가 방금 전에 비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저 사실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언제까지고 벨 형과 함께 있고 싶어요. 그래서 여기에 남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형도 나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비니가 나를 끌어안았다. 내 옷의 천과 가죽 너머로 비니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니.”

나는 품에 안겨온 비니의 작은 등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결심해왔던 말을 드디어 그녀에게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그녀에게 이 말을 해 두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만 같아서.

어쩌면, 지금이 그녀와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인 것 같아서.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비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대해서 웃거나 울거나 화를 내도 좋아. 다만 이것 하나만은 약속해줘. 절대로 내가 하는 말을 비웃지 않기로. 그것만은 부끄러워서 참을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그럼 이렇게 말해줘. 저, 비니가 벨 형이 하는 말을 비웃게 되면, 그 때에는 제 눈을 막아버리고, 제 귀를 잘라버리고, 제 손발을 묶어버려도 좋습니다.”

“……귀찮은데. 그냥 안 들으면 안 되나요?”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말해줘.”

“저, 비니가 벨 형이 하는 말을 비웃게 되면, 그 때에는 제 눈을 막아버리고, 제 귀를 잘라버리고……그 다음이 뭐였죠?”

“제 손발을 묶어버려도 좋습니다.”

“마지막 문장만 의미심장한데요. ……제 손발을 묶어버려도 좋습니다.”

좋다. 이제 결심이 섰다. 비니가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용기를 낼 차례이다.

“비니, 이번 일에서 무사히 벗어나고 평화로워지면, 그 때는.”

그 때에는,

그 후에는,

그 다음에는.

계속해서 다음을 말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내뱉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목구멍을 죄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힘겹게 다음 단어를 내뱉었다.

“우리, 결혼하자.”

비니가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놀란 얼굴로.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정말로 기쁜 표정으로.

비니가 떠나지 전, 나는 그녀와 키스했다. 아주 길고, 오랫동안 키스했다.

그리고 며칠 후, 한 발의 총알이 그녀의 머리를 관통했다. 누군가의 증오심 깊은 총성만이 내 귀를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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