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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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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안녕하세요 여기는 능력자 사무소 입니다.
글쓴이: 느티나무
작성일: 12-04-30 23:54 조회: 3,321 추천: 0 비추천: 0

사람이라는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종족이다.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았으며, 많은 진화를 이루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는 일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계단씩 성장하기 위해 적응을 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한 단계 적응하면 성장한다는 뜻이고 결국 적응이란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가르쳐주는 말이다.

적응 하지 못한 생물은 죽어나갔고, 적응에 성공하여 살아남은 사람들도 적응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가령, 신입사원은 아직 사회에 적응 하지 못해 어려워하고 갓 결혼한 부부는 신혼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신혼부부’기간을 거친다. 그 중에는 적응에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곤혹을 치르곤 한다.

올해로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은 현도 그러한 부류이다. 고등학교가 첫해도 아니거니와, 이미 초, 중학교 때에 갑자기 선배가 되어 본 적이 있는 주제에 나름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후에 겪는 첫 선배 입장에 나름 자부심을 느끼는 중이다. 게다가 때때로는 자부심이 강하게 죄여와 혼란이나 패닉을 유발하기도 한다. 은현은 그 점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1학년 신입생이 들어오고 나서 학교도 1년 전 과는 많이 변했다. 작년까지 웃고 놀던 선배들은 쉬는 시간에도 보기 힘든 존재가 되었으며, 2학년들은 2학년 주제에 학교 최고선배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숙제를 빼먹은 현은 하는 수 없이 도서실에 책걸상을 옮기기로 했다. 현의 학교는 새 학년을 맞아 도서실을 증축한 참이다.

그러나 그의 앞에 있는 책상들은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무리 옮겨도 줄지 않는 이상한 현상을 보였다.

현이 ‘겨우 옆에 있는 교실로 책상들을 옮길 바에는 왜 옮기는 건지’ 의문을 가지며 교실 문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문 앞에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자아이가 고개를 숙였다. 약간 갈색 빛이 도는 완벽하리만큼 단정한 단발머리를 한, 몸집이 작은 아이였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수줍다. 그것은 아직 신입생이기 때문일까. 낯익은 애는 아니다.

“넌.......누구?”

“아, 안녕하세요.”

여자애가 꾸벅 인사를 했다. 수줍으면서도 대담한 표정이었다. 아마 긴장을 많이 하고 있으리라.

“이번에 이 학교에 오게 됬어요. 역시 기억 안 나시나요?”

‘아는 애였나?’

현은 여자애를 훑었다. 그러나 역시 면식이 있는 애는.........맞는 것 같았다.

“아, 혹시.”

“기억나셨나요?”

“안녕하세요. 이희나 입니다.”

앞에 있는 여자애는 는 몇 개월 전에 만난 적 있는 애였다. 현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바로 옆에 붙어있던 중학교 애인데, 몇 개월 전에 그가 불량배들에게 구해준 적이 있다. 말이 구해줬다지, 어쩌다보니 맞아 준 것 뿐이다. 현은 그렇게 정의로운 성격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학교는 중학교가 옆에 붙어있는데다 학생 수도 적기 때문에 다들 얼굴정돈 알고 있다.

“뭐 놓고 간 물건이라도 있어?”

아직 선배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후배를 위해, 현이 어린이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정직한 억양을 내며 말했다. 다른 애들이 봤다면 분명히 토를 하는 시늉이라도 냈을 것을 생각하며, 그가 다른 교실에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표했다.

“아니요. 동연선배가 여기에 있을 거라고 해서요.” 아직 수줍은지, 여자아이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도와주러온 온거면 됐어. 고맙지만 괜찮아 야. 가봐.”

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아니에요. 동연 선배도 가지 말라는걸 제 마음대로 온 거예요.” 그녀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그러나 현은 아직 신입인애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역시 조금 찔렸다. 아무래도 벌칙이다 보니,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곤란할 테니까.

본격적인 새 학기가 시작 되는건 조금 후지만 ,벌써부터 마이너스를 남겨서는 곤란하다.

“괜찮으니까 가봐. 어........네가 이런 힘든 일을 하면 내가 곤란해 져서 말이야.”

현은 화내는 얼굴의담임을 생각하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요.”

어째서인지 희나의 얼굴을 붉어졌다. 그리고는 그걸 무마시키려는 듯 마음대로 들어와 책걸상을 날랐다. 이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가를 생각하며 현은 그녀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끈질긴 설득에도 그녀는 굴하지 않았고, 결국은 현은 그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혼자 많은 책상을 옮기기에 곤란해 하던 참에 도와준다고 하니 거절하기 싫은 본심이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현과 후배와 함께 책상들을 다른 교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곧 의자를 4개씩 번쩍 들어 옮기는 를 보며 혀를 내둘렀으며, 특히 마지막 남은 책상두개를 아무렇지도 않게 옮길 때에는 이미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이 부실로 돌아 왔을 때에는 설아와 주희도 있었다.

두발단속이 약화 된 이후 생긴 두발 자유화. 야간 자율 학습이 철폐되고, 동아리가 사라지기 몇 년 전, 그때 당시의 고등학교학생들은 성적을 담보로 교장이 만족할만한 모의고사 점수를 받아낸 학생들은, 두발자유화라는 권한을 받았다. 뉴스 기자에게 사연을 투고하는 치밀함을 보인덕분에 그날 밤 뉴스에서는 사연이 재미있게 소개되었고, 교육부도 현이 입학할 즈음에는 튀는 머리가아니라면 염색까지도 허용하는 특혜를 주었다. 사실 두발에 대한 규정도 최종적으로 성적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기르기 시작한 그녀들은 머리가 조금 길었다. 특히 설아는 검은머리를 허리까지 늘이고 있으며, 대신 주희는 자연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있었다.

그녀들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너 일을 하긴 하는구나.”

친구인 혁수가 감동한 듯 말했다.

“사람을 뭘로 보고. 책상은 다 옮긴 거야?”

주희가 살짝 기분좋아하며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강혁은 친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는 킥킥 웃었다.

“희나 덕분에. 근데 뭐 하고 있는 거야?”

혁수가 종이에 관심을 보였다.

“이번년도 반을 이끌어갈 계획을 미리 짜는 거야. 그래봐야 대충 뼈대만. 선생님 지시야.”

말을 마친 주희는 시선을 은하에게 옮기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의 얼굴에 불안이라는 단어가 스쳤다.

“근데 설마 저 애도 같이 옮겼니?”

“어. 그런데.”

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곧, 설아와 주희가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내가 신입생 부려먹지 말자고 했잖아. 지금 반항하는 거야?"

다행이 희나가 해명을 해주었고, 현은 대신 음료수라도 대접하라는 명을 받았다. 후배를 부린 죄를 명목으로 설아나 주희, 혁수 것까지 사게 된 강혁은 지갑을 걱정하며 하는 수 없이 교실을 나왔다.

현이 다니는 학교의 매점은 지하에 있다. 그것은 결국 아직 추운 지하복도를 걸어야하는 말이다.

예상대로 지하복도는 3월의 냉기가 가득했다.

현은 따뜻한 양지를 놔두고 아무생각 없이 추운복도로 온 것을 후회해야만 했다. 순간, 그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학생 두 명이 누워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번년도에 현의 학교에 입학하게 된 신입생 이었다.

황당해진 현은 그들을 툭툭 쳐서 깨웠다.

그들은 곧 일어나더니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러고는 현을 발견하자 깜짝놀라 인사했다. 현은 그런 후배를 보며 잠시 우월감을 느꼈다. 그것은 선배라는 점의 몇 안되는 장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왜 자고 있었어?”

현이 기분좋게 웃으며 말했다.

“어.......분명히 선배님들이 힘들게 교실정리를 한다기에 도와드리러 가던 중이었는데요. 왜 여기서 자고 있는지 저희도 잘.......”

신입생인 초병과 용빈은 이반을 찾아오던 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복도에 자고 있던 것은 본인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듯한 후배들을 보며 강혁은 웃음을 지었다.

매점에 들린 현은 살짝 오른 음료수가격에 절망해야만했다. 현의 집은 어느 정도 유복한 집안이지만 그렇다고 학생인 만큼 용돈이 많은 것은 아니었기에 용돈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 자신도 포함해 5인분의 음료를 사게 됐기에 이번 지출은 컸다. 물가 상승폭에 비해 자신의 용돈이 동결인 것에 불만을 품으며 현은 음료수 값을 지불해야만 했다.

동아리방에는 방금 전 보았던 후배들도 있었다. 현은 그들의 이야기를 했고, 설아나 주희, 혁수는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초병과 용빈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 맞다. 음료수나 내놔.”

주희가 이제 생각난 듯 손을 내밀었다.

들고 있던 봉지에서 음료수를 나눠주던 현이 난처한 얼굴을 보였다. 사람 수에 비해 음료수의 양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현은 신입생들이 교실로 갔을 상황을 왜 생각 안했는지 후회했다.

다행히 설아가 눈치 챘는지 신입생에게 음료수를 내밀었고, 현도 다른 신입생에게 자신 몫의 음료를 내밀었다.

희나가 갑자기 얼굴을 움찔하더니, 현에게 말했다./

“선배, 저 화장실 다녀올게요.”

“어, 그래.”

희나가 교실을 나가자 주희가 갑자기 소근거렸다.

“너 희나 어떻게 생각해?”

갑작스런 물음에 현이 깜짝 놀라 마시고 있던 음료를 주희에게 벹어 버렸다.

“3월이라 아직 더운데 참 고맙다.”

주희가 노려보며 강조하듯 또박또박 말했다. 밖은 아직 추웠다.

현이 미안해하며 휴지를 건넸다.

“그게 무슨 뜻이야?”

“혹시 마음이 있나싶어서 말이야. 너는 아직 모르는 것 같길래. 혹시 희나에 대해 뭐 들은 거 있니?”

설아가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바위가 떨어진 것 같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앞문이 교실 안으로 떨어져 들어와 큰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앞문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이다.

깜짝 놀란 설아는 옆에 있던 현의 팔을, 주희는 본능적으로 혁수의 팔을 붙들었다. 강혁은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남자인 현과 혁수를 선두로 조심스레 앞으로 다가갔다. 앞문의 경첩은 강한 충격을 받은 듯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학교가 너무 전통이 있어도 문제라니까. 이런 부분은 전통이 없어도 되는데.”

전통을 강조하는 학교의 방침을 생각하며 주희가 쓴웃음을 지었다.

현의 반 담임선생님이 오더니 강혁들이 놀랐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수위 아저씨가 문을 보더니 뭘 했길래 이렇게 됬냐며 놀라기도 했다.

도서실은 문을 닫았지만 설아와 주희는 책 반납을 위해 학교에 남기로 했다. 현은 혁수와 같이 가기로했다.

길을 걷는 내내 혁수는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강혁아.”

조용히 걷던 혁수가 대뜸 말했다.

“왜”

현이 덤덤히 대답했다.

“현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혁수가 찜찜한 표정을 유지한 채 말했다.

“은하 말이야. 정말로 어떻게 생각해?”

“그냥 조금 소심한 후배 라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뜻 없어. 정말이야”

혹시 오해라도 살까 급하게 말했다. 추궁받는 기분은 여러모로 씁씁했기 때문이다.

“그거 말고.”

혁수의 말에 현이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 외에 뭐가 있는데?”

혁수가 별안간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너 아직 희나에 대해 들은거 없지?”

혁수가 말하기를 망설여 했지만 곧 결심한듯, 입을 열었다. 주희와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혁수는 희나의 선배였기도 했다. 그리고 귀여운 얼굴과 수줍은 성격 덕에 선배들이나 동급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희나에게는 대쉬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중 유난히 희나에게 잘해주는 남자애가 있었고 결국 그 남학생과 희나는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학생은 실종 되고 말았다. 그 후로 학교에는 희나가 남학생을 어떻게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혁은 가슴속에서 뭔가 꿈틀 거리는 것을 느꼈다. 혁수가 다녔던 학교는 그리 멀지않은 학교라 강혁도 알고 있는 이야기다. 실제로 뉴스에서 났었던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온 현은 자신의 친구가 말한 것이 계속 머리에 도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잊으려고 했다. 단순한 후배지만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건은 어떻게 된 걸까? 단순한 후배가 그런 사건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 신경 쓰였다. 물론 실종된 학생이야 희나와 관계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찾아보기만 하는 거라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한 강혁이 컴퓨터를 켰다. 2년 전 사건이지만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자료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친구와 만나기 위해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라는 말만 있을 뿐, 희나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강혁은 자신이 어느새 희나에 대한 정보만을 찾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것을 보며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복잡해진 강혁은 침대에 누웠다. 전국 어디에서도 실종된 학생과 유사한사람을 본 목격자조차도 없다........실종되기 전에 여자 친구와 만나기 위해 나갔다.......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강혁은 밖으로 나갔다.

놀이터에는 혁수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희도 있었다. 대충 주워입고 나온듯한 혁수와는 달리 주희는 잠깐 나오는 것인데도 깔끔한 옷차림 이었다.

“안녕. 혁수가 불러서왔어.”

강혁이 오자 주희가 손을 살짝 올리며 인사했다.

“여자애라면 나보다 더 잘 알 것 같아서 불렀어. 여자애들은 소문을 잘 듣잖아. 괜찮지?”

혁수가 강혁의 눈치를 살폈다.

“상관없어.”

강혁이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강혁은 주희가 온 것에 별 신경 쓰지 않았다. 혁수를 만나는 것이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해, 친구. 네 기분도 이해해. 2년 전에 우리도 그런 기분이었으니까. 물론 넌 더 충격이겠지만.”

“그래서 뭐가 궁금한 거야?”

주희도 평소 학교에서의 성격과는 달리 조금 진지했다.

“네가 알고 있는 것 전부.”

강혁은 자신이 조금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과연 단순히 잘 아는 후배와 관련됐기 때문일까?

“그래. 너도 나름대로 조사한 것 같지만, 아마 세세한 소문까지는 인터넷에 없을 거야. 그래서 혁수를 불렀겠지.”

추리하는 듯한 주희의 말에 강혁은 따로 긍정하지 않았다.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만 해줄게.”

주희가 잠시 눈을 감더니 입을 열었다.

“실제로 바람피우다가 ‘벌 받았다’ 는 우스개 소문도 돌았어.”

강혁은 이상함을 느꼈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 일에 희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연히 희나가 여자 친구 역할이었다는 것 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분별력 있는 주희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법한테 어째서 주희마저 그런 말 들을 하는 걸까?

“실종되기 전에 그 애가 집에서 놀러 나갈 때 여자 친구랑 놀러나간다 하고 나갔었대. 실제로 희나가 그 애집에 찾아갔었고. 남자애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그 애 소문이 별로 좋지 않았어.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애한테 치근덕거리는 모습을 희나가 멀리서 노려보고 있다 던지 유난히도 그 애 옆에 붙어서 다녔다던가 하는 소문이 돌았지. 집착이 강했다는 소문도 있어. 실종된 애도 원래는 좋아했는데 그것 때문에 헤어졌다는 거지.”

주희의 말에 강혁이 실 웃음을 지었다.

“에이, 그건 그냥 소문 아니야?”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 사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진 않아. 그런일에 별로 신경쓰지않는 설아도 찜찜해 했었고, 나도 찜찜해서 말이야. 목격자도 너무 많고. 너도 찜찜해서 이렇게 나와 있는 거 아니야?”

강혁도 그 말에 반박하지 못 했다.

“나는......”

강혁이 뭐라 말하기 전에 갑자기 노래가 흘러나왔다. 주희는 주머니에서 꺼내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은 주희는 쓰러지듯 놀이터모래에 주저앉았다.

병원에 도착한 그들은 정신없이 병실로 들어갔다.

“설아야!”

주희의 외침에도 설아는 깨어나지 않았다.

“어, 그래. 주희야. 왔구나. 그리고 그쪽은......”

옆에 있던 설화의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설화 친구 최강혁 입니다. 옆에 애는 친구 혁수구요.”

강혁과 혁수가 꾸벅 인사 했다. 그러고는 곧, 처음보는 친구의 어머니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최대한 순한 얼굴을 했다.

“그래. 설화 친구구나........ 이렇게 친구들도 왔는데 일어나지를 못해서 어떻게하니.......”

“어떻게 된거예요? 집근처까지는 분명히 같이 왔는데.......”

주희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누워있는 설아를 바라보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이야기 했던 친구를 병실에서 다시본 기분은 과연 무슨 기분일까.

“신고한사람 말로는 비명소리가 들리길래 가봤는데 쓰러져있었다지 뭐니. 대체 누가.......” 설화의 어머니는 소리 없는 울음을 터트렸다.

병실에 침묵이 감돌았고, 강혁 들은 간호사가 들어온 것을 핑계로 병실을 나왔다.

그 날 밤 강혁은 밤새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 강혁이 학교에 도착해 있었을 즈음에는 이미 전 학년에 소문이 퍼져있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소문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엮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인근에 살인마가 숨어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학교에 귀신이 나돈다는 소리도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강혁과 혁수, 주희는 급식실로 향했다. 하지만 어제 일어났던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은 듯 조용한 식사가 되었다. 주희나 혁수도 별로 조금 피곤해보였다. 별로 입맛이 없었던 강혁은 혁수나 주희보다 먼저 나왔다. 멍하니 계단을 내려오던 강혁은 그만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강혁이 반사적으로 사과했다.

“선배?”

그러나 부딪힌 사람은 희나였다. 하지만 강혁은 어쩐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희나가 가까이 붙으며 말했다.

“어? 어........기분좋아보이네 무슨 좋은 일 있었어?”

“좋은일은 무슨요. 고민거리가 해결 됐거든요.”

"어........그러니까 혁수하고 주희가 기다려서 말이야. 다음에 보자."

강혁이 급히 급식실로 다시올라가려 했다. 희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어째선지 싫었다.

“방금 만났는데 벌써요?”

희나가 가까이 다가와 팔짱을 꼈다. 강혁은 깜짝 놀라 팔을 빼려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힘을 주는 바람에 희나가 넘어질 뻔했다. 희나의 얼굴이 굳었다. 강혁자신도 희나만큼이나 놀랐다.

“왜........그러세요?”

이제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강혁은 자신이 한 일을 후회했다. 내가 희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단순한 소문 때문에? 나도 혁수나 주희처럼 신경 쓰고 있는 걸까?

“미안해. 요즘 힘들어서 그래.”

그러자 희나는 굳었던 얼굴을 풀고 웃었다.

“아니에요. 힘든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오빠를 힘들어하게 하는 거라면 죽어도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요.”

강혁은 순간, 희나의 눈빛이 무섭다고 느껴졌다.

“무슨 일이야?”

주희가 급식실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강혁은 희나가 어째선지 주희를 노려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희 또한 희나 만큼이나 차가운 눈빛으로 희나를 째려보았다. 구경꾼들은 축구경기 보는 사람마냥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미안한데 하나만 묻자. 너 어제 학교 끝나고 뭐했니?”

“그걸 왜 제가 알려드려야 하죠?”

강혁은 순간 어? 하는 물음을 가졌다. 희나가 언제부터 이렇게 반항적이었지?

“미안한데 알려줄래?”

주희가 분을 삭히는 듯 살짝 눈을 감았다.

“어제 선배가 집에 가라고 내쫒은 뒤로 바로 집에 갔는데요.”

“그래? 그럼 혹시 네가 어제 앞문 만졌니?”

“아니요. 그게 왜 제 탓이죠?”

“그래? 미안해. 의심한건 아니야.”

“그러길 바랄게요.”

할 말을 다한 주희가 구경꾼을 헤치고 걸어갔다. 그 뒤를 혁수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따랐다.

“가자.”

“잠깐만.”

강혁이 뭔가 말을 하려하자 주희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매우 화난듯 주희의 얼굴이 잔뜩 찡그러졌다.

“가자는 말 안 들려?!”

주희의 재촉에 강혁도 뒤를 돌았다.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전에 이곳에 계속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저런 여자 말 듣지 마세요.”

희나가 강혁을 붙잡으며 말했다. 강혁이 뿌리쳤다. 그러나 희나의 손이 다시 붙잡는다.

“싫어요. 이번엔 저 여자에요?”

희나가 과민 반응을 보였다.

“저 여자라니? 주희도 주희지만, 너도 말이 좀 심하다.”

강혁이 인상이 조금 찡그러졌다.

“아니요. 오빠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상관없어요.”

“너 대체 왜 그래?”

강혁은 이제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희나의 얼굴은 조금씩 심각해져갔다.

“제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몰라. 모르니까,”

희나가 강혁의 말을 잘랐다.

“오빠 좋아해요. 그럼 됐어요?”

고백. 그러나 기분 좋은 감정은 들지 않았다. 다만 시베리아 벌판 같은 차갑고 두려운 느낌만이 들었다. 고백이란게 이렇게 차가운 것이었을까.

“알았으니까 그만하자.”

여자가 고백을 한다. 분명 주변에서 환호성이 나와야 정상이지만, 어째선지 조용했다.

“아니요. 그만 못 해요. 제가 고백했잖아요.”

희나는 이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알았어. 생각해 볼테니까 이제 제발 그만.”

강혁도 신경질 적으로 내벹으며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거기서요.”

그러나 희나가 외친다. 강혁은 못들은 채했다.

“후회하기 전에 거기 서라고요!”

그것은 외침이 아니라 고함이었다. 마치 명령하는 듯한. 강혁은 무시하고 걸었다. 뒤로 희나의 외침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강혁이 교실로 들어오자 혁수와 주희가 다가왔다.

“이제 교실로 알겠지?”

주희가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강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시치미 떼지 마. 너도 봤잖아.”

강혁은 희나가 한말을 생각하며 복잡한 얼굴을 했다.

“문 고장 난거라면 반에 들어와서 들었을 수도 있잖아.”

희나도 충분히 이상하다고 강혁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녀를 그런식으로 의심 할 수는없었다.

“넌 아직도 그 애를 변호하고 싶니?”

주희가 신경질적으로 강혁을 노려보았다.

“너도 너다. 희나를 대하는 태도가 어제하고는 너무 다르잖아. 설아가 입원해서 날카로운건 알겠는데, 희나랑 설아는 아무 관계 없잖아.”

주희가 분을 삭히듯 한숨을 내셨다.

“그 애가 어제 바로 집에 갔다고 했지?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야. 그날 너희들이 가고 나서 설아랑 희나를 봤거든.”

강혁은 지금 상황이 복잡하게만 느껴졌다.

“너 문이 부서지기 직전에 설아가 무슨 말을 한지 알아? ‘너 혹시 희나에 대해 들은거 있니?’ 였어.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해?”

주희의 언성이 높아졌다.

“나도 어떻게 된지는 몰라. 하지만 그 애가 분명해. 그래. 문은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설아를 그렇게 만든 것은 그 애가 분명해”

그렇게 말하고는 주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정해 주희야. 강혁이도 복잡해 하고 있는 것 알잖아.”

혁수가 주희를 진정시켰다.

“나도 알아, 하지만!”

주희가 신경질 적으로 소리쳤다.

“바람좀 쐬고 올게.”

강혁이 교실문을 나섰다.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조금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혼란이 그칠줄을 몰랐다. 전 남자친구가 실종된게 희나랑 정말 관련이 있을까? 문은 어떻게 박살난거지? 또, 설아는?

수업이 거의 끝나갈 때에는 이미 모든 반에 소문이 퍼진 후였다. 하지만 그들도 분위기를 느꼈는지 특별히 그것에 대해 말을 걸지는 안았다. 멍하니 있는 강혁의 귀로 반친구들의 말이 들려왔다.

“....,,.그러고는 미친 사람처럼 한참 노려봤다며?”

“거의 실성한 사람 같았대.”

“얼굴은 귀여운데 애가 좀 무섭지 않았냐? 조용할 때는 귀여웠는데.”

“그럼 네가 말이라도 걸어보지 그래?”

“싫어, 난 아직도 무서워 죽겠는데.”

수업이 끝나고 주희는 먼저 가겠다는 말을 하고 가버렸다. 혁수도 어느새 사라졌다. 멍하니 창밖을 보던 강혁은 뒤돌아 교실을 둘러보았다. 불과 30분전만 해도 떠들썩했던 교실은 쥐 죽은 마냥 조용했다. 창밖의 풍경도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하고 있었다. 집에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강혁이 다시 뒤를 본 순간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희나가 강혁을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강혁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났다.

“너 이러는 것 집착이야. 이러지마.”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강혁이 머리를 짚었다. 진심이었다.

“말했잖아요. 오빠를 위해서라면 상관없다고요. 아까의 답변은요?”

아까와는 다르게 다시 조용한 말투였다. 하지만 강혁은 이러한 그녀도 귀찮게만 느껴졌다.

“미안해. 나는 너와 좋은 선후배로 지내고 싶어.”

강혁이 미안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러나 거짓말이었다. 이제 그녀와 관계되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희나가 모든 것을 포기하듯 한숨을 쉬었다. 강혁은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를뻔 했다.

“이번엔 주희선배한테 홀렸나요?”

희나가 노려보듯 강혁을 보았다.

“설아 선배가 오빠한테 들러 붙길래, 오빠 주변에서 떨어뜨렸어요. 그런데 이제는 주희선배인가요?”

강혁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희나가 소리쳤다.

“제가 대체 어떻게야 오빠를 다른 여자로부터 지킬 수 있죠? 네? 대답해주세요!”

강혁은 놀라서 슬금슬금 뒷걸음 쳤다. 곧, 듸로 단단한 벽이 느껴졌다.

“너 이러는 거 아니야. 넌 미쳤어. 미쳤다고. 제정신이 아니야.”

강혁은 주희가 한말을 떠올렸다. 설아를 그렇게 만든건 그 애가 분명해.

“또 그 여자 생각하고 있죠? 그럼 제가 다시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해드릴게요.”

강혁은 순간 움찔했다. 그러나 희나는 뒤돌아 교실 밖으로 나갔다. 강혁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시는 그렇게 만들지 못하도록 한다니. 뭔가 하려는게 아니였나? 그리고는 이내 설아를 떠올렸다.

‘또 그 여자 생각하고 있죠? 그럼 제가 다시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해드릴게요.’

강혁은 급하게 휴대폰을 열었다.

“휴대폰이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중입니다.”

깜짝놀란 강혁이 급하게 교실을 나와 희나를 찾았다. 그리고 외쳤다.

“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설마 주희까지 건드린 것은 아니겠지?”

“아직도 주희선배 생각인가요? 손보길 잘했네요.”

그렇게 말하며 희나는 기분 좋은 듯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하지만 역시 그걸로는 부족한가?”

“주희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강혁이 급하게 소리쳤다. 병실에 누워있는 설아와 주희가 겹쳐보였다.

“단단히 홀렸나보네요. 좋아요. 주희선배가 있는 곳을 알고 싶으면 부탁해주세요.”

강혁은 죽도록 싫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강혁이 이내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좋아, 부탁해. 주희가 있는 곳을 알려줘.”

“정말 단단히 홀렸나보네요.”

“닥치고 말해!”

“걱정 마세요. 제가 곧 정신차리게 해드릴게요.”

희나가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강혁이 느끼기도 전에 몸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서있기도 힘들 정도의 압박감이 몸을 덮었다. 저도 모르게 강혁이 주저앉고 말았다. 고통이 밀려왔다. 중압감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버렸다. 이내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강혁이 미친듯이 괴성을 질렀다. 공포감. 마치 롤러코스터의 하강 구간에서나 느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미지에 대한 공포감.

“이제 정신 차리셨나요?”

몸의 압박감이 돌아왔다. 강혁은 숨을 헐떡이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방금 전 그것은 뭐였을까.

“좋아요. 오빠에게 기회를 드릴게요. 주희 선배는 이 학교 안에 있어요. 빨리 구하지 않으면 위험할 걸요?”

그녀에게는 여유가 느껴졌다. 우월감위에 군림하는 자의 여유, 언제든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완벽에서 오는 자신감.

“5분 드릴게요. 찾아보세요. 제가 직접 손쓰기 전에요.”

강혁의 머리가 혼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여자애를 협박해 강제로 알아낼까? 아니면 경찰? 아니, 이 여자애는 미쳤다. 미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어떻게 되지 않는다. 방금 전의 그것도 도저히 상식의 그것이 아니다.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지금은 몇 초나 지났지?

강혁은 미친 듯 학교를 돌아다녔다. 학교는 토요일 인만큼 조용했다. 아니, 이런 생각할 때가아니다. 여자화장실까지 닥치고 들어가 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압박해왔다. 시간이 다하면.......시간이 다하면.......시간이 다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강혁은 계속 의문을 머리로 되물었다. 주희는 어디에 있을까........시간이 다되면 주희는.......시간이 다되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그전에 희나는 어떻게 하려는 걸까.

뭔가 깨달은 강혁은 깜짝놀라며 방금 내려온 계단을 다시 올랐다. 그러나 절망했다. 여기에 있어야할 희나가 없다. 강혁은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늦었다. 희나가 먼저 출발해버렸어. 하지만 어디로?

발자국 소리가 들어왔다. 고요한 복도에 조금씩 발자국이 멀어지고 있다. 강혁은 미친 듯이 달려갔다. 옥상 문이 열려있었다. 옥상에 올라왔다. 희나가 어딘가로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국기 게양대 에는 밧줄이 달려있었다. 밧줄은 길게 늘어져 벼랑에서 끊겼다. 하지만 줄이 팽팽하다. 무엇인지 모를 오한이 느껴졌다. 희나는 국기 게양대 옆에 우뚝 서있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낸다. 그리고 자르기 시작했다.

온힘을 다해 달려간 강혁은 벼랑을 향한다. 팽팽한 고무줄이 끊어지는 듯 하는 소리가 났다. 손을 뻗어 밧줄을 잡는다. 떨어지는 힘 때문에 조금 앞으로 밀렸나갔지만 그래도 잡았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에 강혁은 감사하며 숨을 거칠게 헐떡였다. 그러고는 조금씩 당겼다. 찢어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빠는 이래서 재밌다니까.”

강혁은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뚝 끊어진 느낌이 들었다.

“사람목숨 가지고 노니까 좋냐? 좋냐고! 너 진짜 제정신 아니구나?”

희나가 킥킥 웃었다.

“너 같은 건 질색이야.”

강혁이 진심으로 화내며 쏘아붙였다. 그러자 희나의 웃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다시 말해 봐요.”

“왜? 다시말해줘? 너같은건 질색이라고.”

강혁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지금만큼은 우위라고 느껴졌다.

“다시 말해 보라구요.”

그녀가 힘이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뇨. 오빠가 저한테 그런 말을 할리가 없는걸요. 분명 ‘힘’이죠? 누군가가 정신을 조종하고 있는 거죠?”

힘? 이애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너, 귀먹었니? 똑똑히 말해 줄 테니까 잘 들어. 너.질.색.이.야.”

강혁이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말했다. 진심이 섞인, 그 나름의 분노였다.

“아니야!!!!”

희나가 비명을 질렀다. 이 세상, 그 모든 것을 거부하는 듯 하는 비명이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그리곤 노려본다.

조금 전의 압박감이 느껴진다고 머리가 판단하기도 전에 몸이 앞으로 고꾸라져 엎어졌다. 손에 압박감이 더해져 점점 둔해지고 있었다. 놓치면 안 된다. 주희가 아직 매달려있다.

강혁의 손에 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강혁은 어서 이 이상한 현상이 풀리기만을 기도했다. 어느새 희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중압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혹시 이 중압감은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 아닐까. 희나가 손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그 여자인가요? 그 여자만 없으면.....!”

압박감이 더해지자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손이 점점 풀리고 있었다. 놓을 수 없다는 듯 손에 힘을 주지만 그것을 비웃듯 조금씩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헛것이 보인다. 이대로는.........이대로는..........

갑자기 중압감이 풀렸다. 강혁은 아주 잠깐 풀린 손에 확실히 힘을 주어 밧줄을 잡았다. 강혁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보았다. 쓰러져 있는 희나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

“빨리.”

누군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는 강혁에게 여자애가 말했다. 정신이 든 강혁은 밧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 히나가 강혁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것을 여자애가 막아섰다.

“방해하지마세요. 당신은 또 누구죠? 혹시 이번엔 그쪽인가요?”

기가 차다는 듯 희나가 코웃음을 쳤다.

“이게 무슨 짓이지?”

여자애가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이제 알았다는 듯 희나가 말했다.

“그래요. 당신은 ‘그쪽’이었어요.”

희나가 손을 뻗었다. 여자애는 장작불 같은 머리를 휘날리며 재빨리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는 스탠딩자세로 폭발하듯 희나에게 달려갔다. 여자애가 조금 전 까지 있던 자리에 있는 담배 곽은 이미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눌린 상태였다.

희나에게 달려가던 여자애는 다시 방향을 틀어야했다. 여자애가 있던 곳은 강하게 짓눌렸다.

여자애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이내 그것이 자신 때문 이라는 것을 눈치 챈 강혁은 더욱 밧줄을 세게 잡아당겼다. 곧 주희가 벼랑 끝에서 매달려왔다. 몸은 멀쩡했다. 숨은 쉬고 있었다. 그러나 수면제라도 먹었는지 깨어날 생각을 하지않았다. 둘은 이제 일반인이니 뭐니 하는 이상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희나가 이상한 힘을 행사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통해 여자애도 그것에 대해 아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여자애는 왜 희나처럼 저런 것을 하지 않는 걸까 생각했다. 곧, 여자애는 저런것을 못하는 정상인이라고 생각한 강혁은 주희를 들고 조심조심 옥상 문으로 갔다. 여자애도 그것을 눈치 채고 방향을 바꿔 시야에서 가려주었다.

옥상문 구석에 주희를 쑤셔 넣은 강혁은 다시 옥상에 왔다. 여자애는 보기 애처로울 정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네? 어떻게 해야 오빠 옆에서 떨어 질건가요?”

여자애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강혁은 옥상 문을 쾅쾅 두드렸다. 미친듯한 얼굴이 이쪽을 향한다. 무섭다. 강혁은 순수하게 무섭다고 느꼈다.

강혁이 옥상 문으로 도망치자 희나는 미친 듯이 옥상 문을 노려보며 걸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걸음이라고 생각 되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

희나가 옥상문으로 나오는 순간 강혁이 마포자루를 내리쳤다. 그러나 어째선지 느렸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일까.

희나가 쳐다본 순간 마포자루는 뒤로 넘어가 벽에 붙었다. 희나와 마주친순간 강혁은 계단으로 튕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밀쳐진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물리적인 힘을 받아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중력의 그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체 이것은 뭘까.

강혁이 신음 하는 동안 희나가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두려움을 느낀 강혁은 일단 도망쳤다. 희나의 걸음은 생각보다 빨랐다.

오른쪽 뒤꿈치가 위로 올라가려는 힘을 받았다. 자세가 흐트러진 강혁은 넘어질 뻔했으나 다시 자세를 잡았다. 멀어졌다 생각하는 순간 뒤에서 의자가 날아왔다. 간신히 어깨가 빗겨가자 강혁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본능적으로 뒤를 보았다. 희나의 주변에 물체들이 떠있었다. 책상, 의자, 칠판지우개, 옥상에서 가져온듯한 돌맹이.

“아직 멀었어요. 그 새 한눈을 팔다니 말이에요. 오빠에겐 조교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책상이 날아왔다. 강혁은 뒤로 움직여 피한 뒤 바로 날아오는 무언가를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손을 들었다. 칠판지우개였다. 강혁이 기침을 하는 순간 의자가 날아왔다. 미처 피하지 못한 강혁은 쓰러졌다. 그리고 위로 돌맹이가 떨어졌다. 손으로 받아내려던 강혁은 옆으로 굴러 피했다. 굉장한 소리가 나며 복도바닥이 조금 깨졌다. 비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니, 강혁은 오금이 저려왔다.

이제 더 이상 희나 옆에 떠있는 물건은 없지만, 책상, 의자는 아직 널부러저 있었다. 강혁은 책걸상이 오히려 근처에 있다면 위험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희나는 어째서인지 이상한 힘을 쓴다. 자신이 혼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이 생각까지 미친 강혁은 의자를 던졌다.

그러나 그것을 간단히 멈추게 한 희나는 승승장구하며 웃었다.

“이런 것 정도로는 소용 없.......”

말을 맞추기도 전에 충격을 받은 희나는 쓰러졌다. 그 뒤로 아까의 여자애가 있었다.

희나는 바닥에 쓰러 진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안도감에 다리가 풀린 강혁은 털썩 주저앉았다.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희나를 가리켰다.

“너도 혹시 쟤랑 같은 부류니? 어......,.그러니까 너도 저런걸 하니?”

“어.”

그렇게말하며 그녀는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외계인?”

“아니.”

이번에는 고개를 젓는다.

“어.......일단은 구해줘서 고마워. 난 강혁이야. 최강혁.”

강혁이 손을 내밀었다.

“난 소현지.”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거부했다. 멋쩍어진 강혁이 손을 도로 집어넣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돌았다. 현지는 신경쓰지 않는 듯 했지만 강혁은 괜히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었다. 강혁의 뒤를 보고 있던 현지의 얼굴이 일순간 놀람으로 물들었다.

현지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 둘은 몸이 일순간 가벼워진다고 느껴지더니, 이번엔 반대로 몸이 솟아올라 천장에 부딪혔다. 그들은 천장에 머리와 어깨를 짓눌리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압박만큼은 조금 전과는 상상도 없을 만큼 강했다

“오.빠. 또. 인.가.요?”

희나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웃고 있지 않았다. 희나의 얼굴은 공포 그 자체였다. 동공은 가득 열려있었고, 시선은 강혁만을 향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강혁만을 바라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릴게요. 오빠. 제 남자가 되 주세요.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해요. 그렇게 하겠다면 그만 용서해 드릴게요. 제발요.”

강혁이 현지를 보았다. 현지도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강혁보다 더 괴로운 듯 했다.

“그럼 이애도 살려 줄 거야?”

강혁이 포기하듯 말했다.

“이제야 말이 통하네요.”

“하지만 살려 주는 것은 오빠만이에요. 저 여자는 오빠에게 꼬리친 죄로.......”

그렇게 말하며 희나는 천장에 붙어있던 돌맹이를 움직였다.

“잠깐!”

강혁이 다급하게 외쳤다.

“나라면 뭐라도 할 테니까 그만둬!!”

“기억나세요? 오빠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고 한 말.”

희나의 얼굴에 잔혹한 웃음이 피었다. 희나의 손에 따라 돌맹이가 움직였다. 그것은 정확히 현지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강혁은 희나에 대해 이해 할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집착. 그것을 사랑하나 때문에, 아니 적어도 이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이 어떻게 사랑일까. 그 모든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일말의 공감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해 분노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저 여자아이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만 두라는 말, 안들려?”

그러고는 강혁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었다. 희나의 눈이 놀람으로 번졌다. 그 순간, 강혁에게 느껴지는 압박감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천장에서 강혁이 다시 지구의 중력을 받기 시작했다.

강혁과 현지가 다시 중력을 받아 땅으로 내려왔다. 충격을 받은 듯 희나는 당황한 듯 했다. 강혁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강혁이 미끄러지듯 달렸다. 희나가 강혁을 향해 손을 들었다. 강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희나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강혁은 그대로 있는 힘을 다해 어깨로 밀쳐버렸다. 희나는 충격을 받으며 벽에 부딪혔다.

희나가 비틀비틀 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이미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녀가 비틀 비틀 거리 중얼 거렸다.

“오, 오빠.........어째서.......왜.......”

희나는 강혁을 보며 흐느꼈다. 그러고는 곧 힘이 다한 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순간, 강혁도 갑작스런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그러고는 곧 의식을 잃었다.

강혁은 꿈을 꾸었다. 사방에서 이상한 불꽃들이 날아다녔고, 사람들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강혁의 옆으로 하나둘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그들을 보며 뒷걸음 쳤다. 그 순간, 꿈이 바뀌었다. 꽃밭으로 바뀌었으며 그 너머로 강이 보였다.

강혁은 꿈에서 깼다. 푹신한 느낌이 느껴졌다. 적어도 복도바닥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여기가 어디건 피곤해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 순간, 누군가 눈을 콕콕 찔렀다.

“일어나.”

강혁은 아파하며 눈을 뜬 순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현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이 베고 있는것이 현지의 무릎인 것을 알아차리고는 깜짝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주변을 살폈다.

“뭐하는 거야?”

“아까의 답례야.”

현지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그보다 여긴 어디야?”

“병원.”

안심이 된 강혁은 도로 침대에 누웠다. 이미 머리는 복잡했다. 지금까지 부정해왔던 사실들이 진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사는 왜 진작 발표를 하지 않은 거지? 혹시 나사도 몰랐던 건가?”

강혁이 진심으로 말했다.

“난 외계인이 아니야.”

현지가 말했다.

그 때, 병실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현지야, 우리 왔어.”

어딘가 실없어 보이는 남자가 과일바구니를 달랑거리며 말했다.

현지는 딱히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듯했다.

“몸은 어때? 미안해. 그런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었는데.”

남자가 오래전부터 친한 사이인 듯 치근덕거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강혁의 침대를 둘러싸고 안부를 물었다. 강혁의 존재는 잊은 듯 했다.

“괜찮아.”

현지가 딱 잘라 말했다. 그제서야 남자가 안심하며 강혁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넌 거기서 뭐해? 남의 침대에서.”

“여기가 제 침대인데요.”

어이없다는 듯, 강혁이 말했다.

“현지야, 너. 남자애 침대에서 뭐 하는 거야? 내가 남자는 아직 안된다고 했지?”

남자가 눈을 치켜뜨며 강혁을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거 아니야. 악몽을 꾸는 것 같아서.”

그녀가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너 꿈은 어땠니?”

그가 흥미로워 하며 강혁에게 물었다.

“그냥 알록달록한 꽃밭이 보이고 그 뒤로 강이 보였어요.

강혁이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취향한번 고약해라.”

강혁이 무슨 소리냐는 얼굴을 하자 남자가 알아차리고는 강혁에게 설명해주었다.

“이 애의 ‘힘’은 꿈을 조작하는 거야.”

“꿈이요?”

강혁이 어리둥절하며 뭔가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강혁이 뭐라 말하기 전에 남자가 막았다.

“걱정마, 설명해줄 테니까. 아, 난 오동훈이야. 내 옆에 있는 뚱뚱한 아저씨는 ‘창현이 아저씨’라고 부르면 돼.”

옆에 있던 푸근덕한 인상의 사내가 미소를 보였다.

“옆에 있는 사람은 최경수.”

“안녕.”

어딘가 불안해하는 하는듯한 사내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애는 내 동생 오로라.”

동훈이 안경 쓴 여자애를 가리켰다. 보라색의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를 한 여자애였다. 나이는 강혁과 비슷해보였다.

“꼭 성을 붙여야겠어?”

로라가 마음에 들지않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난 네가 이름에 콤플렉스 가지는 이유를 모르겠어. 오로라. 영롱한 느낌이 들지 않냐?”

그렇게 말하며 동훈이 강혁을 보았다. 화살을 강혁에게 돌린 것이다.

“그렇네요.”

강혁이 대답하자 여자애가 째려보았다.

“음......말하기 앞서서 일단 우리는 외계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둘게. 우리는 ‘힘’을 사용하는 사람들 이고, 우리들 끼리 독자적인 사회를 만들었어. ‘힘’이란 것 우리도 잘 몰라. 내로라하는 과학자들도 밤새 연구중이여도 별로 진전이 없지. 아, 물론 이쪽 과학자말이야. 몇 전에는 거장과학자 하나도 앓다가 돌아가셨고. 아무튼 그냥 자연스럽게 생각해. 네가 팔다리를 움직이듯, 당연하게 생각하면 편해. 아무튼 웬만하면 묻지 마. 우리도 모르니까.”

“‘그쪽’ 사람들은 얼마나 있죠?”

강혁이 물었다.

“너 혹시 ‘이쪽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정확히 총 몇 명이나 되는지 아니?”

곰곰이 생각하던 강혁이 말했다.

“아니요.”

“우리도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 가령 중국이라는 나라는 실제인구가 얼만지 아는 사람은 없어. 공식 인구는 나와 있지만, 그 인구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너무 많거든. 하지만 ‘우리’ 쪽 사람 들이 하나의 사회를 구성할 정도로 많아.”

강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순한 후배인줄 알았던 희나가 이상한 힘을 쓰고, 이상한사람들이 무더기로 나타나다니. 머리가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그럼 정말 외계인은 아닌 거죠?”

“맞는데.”

동훈이 무슨 소리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풀었다.

“농담이야.”

“그러고보니 희나하고 주희는요?”

갑자기 생각난 듯 강혁이 물었다.

“그 희나라는 애는 끌려갔고 주희라는 애는 일반병원으로 보냈어.”

현지가 말했다.

“여긴 ‘힘’ 에 의해 다친 사람들을 수용하는 병원이야.”

“끌려가다니? 경찰에요?”

강혁이 물었다.

잠자코있던 로라가 대꾸했다.

“농담하지마. ‘그쪽’ 경찰에 보내면 어떨 것 같아?”

뉴스에 소개되고, 각종과학연구실로 끌려가는 상상을 하며 강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말했잖아. ‘우리’쪽에도 독자적인 사회가 있다고. 그 아이라면 ‘우리’쪽 경찰에 끌려갔어.”

“그럼 어떻게 되는데?”

강혁이 걱정스레 물었다.

“똑같아. 수감되는거지.” 로라가 말했다.

“그럼 그 애 부모님이 실종신고 내는거 아니야?”

강혁이 진지해졌다. 만약 그 애가 사라졌다면 부모님이 곤란해 할 것이다.

“걱정마. 그 애 부모님도 알고있어. 그들도 ‘이쪽’ 사람이거든.”

"혹시 내가 선처하는 것으로 끝낼 수는 없을까?"

희나가 경찰같은 곳에 수감 되었다고 하니 강혁은 찝찝함을 느꼈다.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 못 차렸어? 너 죽을 뻔 한거는 아니?”

로라가 기가 막힌다는 듯 현지를 보았다.

“네가 잠자는 사이에 치료를 끝냈기 때문에 몸은 멀쩡하지만 조금 피곤할거야. 오늘은 여기서 푹 쉬는게 좋아. 그리고 미안하지만 그 애라면 ‘우리’ 쪽 룰을 어겨서 곤란해. 피해자인 네가 선처한다고 해도 워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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