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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소녀 공명첩
글쓴이: 마린
작성일: 12-04-30 23:53 조회: 2,821 추천: 0 비추천: 0

The empty name instrument of maiden magician』

'마법 소녀', 라는 개념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마법을 상상하게 되는 가.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랑. 원한. 희망. 좌절. 분노. 동경. 꿈. 윤리. 의심. 믿음. 호의. 악의.
모든 것이 살아가는 곳이다.
인간은 사랑과 희망의 좋은 면에서 마법 소녀를 발견하고는 한다.


그들은 분홍빛 반짝이를 뿌리고 사랑의 주문을 외우며, 인간 소녀들이 바라는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용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마법 소녀는, 내가 아는 마법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원한과 악의에서 태어나 인간을 먹는 다.
검은 어둠의 친구이고, 죽음의 언령을 내린다. 그 아름다움 만큼은 보장하지만, 맨처음 태어났을 때의 그 흉칙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인간 안의 마법이란 이렇다. 마법 소녀는 인간에게서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인지 너무나 잔인하고 현실적인 냉소를 지니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 그곳은 지옥이 아니지만 천국도 아니다.
단, 좋은 일면만을 보려는 낙관론을 배신하고 엄연히 존재하는 하나의 개념.
그게 내가 아는 마법 소녀였다.

서장.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이야기 해 두는 것이지만, 사람에게 있어서 계약이 얼마나 신중하고 조급하지 않은 고려 과정을 거쳐야 하는 지는 말 안해도 알겠지. 그건 어릴 때 엄마나 선생님과 하는 간식을 몰래 꺼내 먹지 않겠습니다, 짝꿍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하는 소위 '약속'과는 차원이 다른 강도의 개념이다. 특히 문서를 통해서 하는 거라면 더더욱 신중을 요한다. 그리고 그 문서에 마법이 묻어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이성적인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정신 상태라면 나는 그 문서에 서명 하려는 당신을 향해 결단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정신 차리라고, 이 머저리야.


일단 마법의 계약서는 마치 컴퓨터만큼이나 정신적인 개념이 개입되기 어렵고 또한 그 취지가 좋으리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 다. 내가 아는 어떤 마법 계약이 가장 큰 예인데, 나는 지금부터 그 마법 계약의 위험성에 대해 알리는 한편 내가 그 마법 계약서, '마법 소녀 공명첩'을 추적하며 겪었던 심심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부탁이다.


서명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이성적으로 따져 보시길.
그리고, 자신의 악의에 맞서 나가는 연습을 해 두시길.

기분이 나쁘다.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녀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다리가 있었고, 다리 아래에는 천이 흘렀다. 다리와 그 아래 흐르는 천 이야기를 하면 소녀가 자살이라도 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이 들이 많겠지만, 아쉽게도 소녀는 죽을 만큼 슬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곧 그렇게 되기라도 할 듯 아슬아슬한 감정의 사다리에서 소녀는 손 하나로 버티듯 늘 긴장하고 있었다.
학교라면 지긋지긋했다. 진절머리가 나려고 할 때쯤이면 어른들은 꼭 누군가의 성공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에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이 무거운 마음을, 기분 나쁜 마음을, 이 세상에서는 청춘이라 부르고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한다.

웃기지마. 그저 당신들과 똑같은 공산품을 뽑아내고 싶은 거 뿐이잖아.


'작가? 정신 좀 차려라. 그런 건 네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뒤에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
'?그런 걸로 성공하는 건 천재들이나 가능한 거지. 밥 빌어먹기 딱 좋은 직업이라고.'

머리 속에서는 하루 이틀 들은 게 아닌 뻔한 잔소리가 멤돈다.
소녀는 한 숨을 쉬며 다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래 쪽을 내려다 보았다. 여기선 떨어져도 하나도 멋지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소녀의 허리 깊이 밖에는 되지 않는 얕은 천이니 여기서 떨어지면 익사하는 게 아니라 머리가 깨져 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배시시 웃고 말았다.

"별로 웃을 기분도 아니면서 잘도 웃네."

옆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그쪽을 돌아보았다. 상대는 수상해 보이는 복장에 수상한 인상이었다. 하얀 피부에 흔한 보브컷의 금발.
외국인인가?
복장은 마치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레이스며 프릴이 달린 덕지덕지한 원피스. 가슴에는 하트 모양의 큼직한 펜던트까지 달려 있는 이상한 복장의 여자였다.
무슨 취미 나쁜 코스츔플레이어라도 되는 지, 여자는 그런 차림에 그 묘한 인상의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소녀는 그다지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처음 보는 이상한 차림의 여자가 자기 기분을 알 리 만무하고 이 사람과 이야기한다고 기분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뒤에서 여자가 계속 말을 걸어왔다.

"힘 들지? 내가 도와줄까?"
"….
"사양하지말라고, 귀여운 아가씨."

소녀는 홧김에 뒤를 돌아보았다.

"초면에 당신이 뭘 안다는 거예요."
"잘 알지. 나는 너같은 녀석들을 주로 상대해 왔거든. 뭐, 비즈니스는 아니고. 자선 사업 같은 거야. 어라, 이것도 사업이라는 말이 들어가니까 비즈니스의 일종인가? 흠…? 뭐, 그건 됐고. 아가씨. 그 무겁고 짜증나는 마음을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 안 해봤나? '웃기지마. 그저 당신들과 똑같은 공산품을 뽑아내고 싶은 거 뿐이잖아'라고 말하면서 실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자기가 싫지 않아?"
"…!"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사실 굉장히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속으로 내뱉은 폭언을 어째서 이 여자는 알고 있는 것인가.

"너무 놀라지는 마. 내가 그랬지? 너같은 녀석들을 주로 상대해 왔다고. 그럼 늬들 생각 정도는 금방 읽을 수 있어야지. 안 그럼 이 일 못하지."

여자가 푸훗, 하고 웃어제꼈다.
재수없는 여자다.

"대체 당신이 날 어떻게 도울 수 있다는 거예요. 만약 공짜 유학이네 뭐네 하는 미끼로 애들을 낚는 신종 사기꾼이면 사양하겠어요. 아님 불법 체류 브로커는 아니겠죠?"
"물론 브로커는 아냐. 사기꾼도 아니고."

여자가 웃었다.

"굳이 말하면, 너한테 행복의 마법을 걸어줄 마법 소녀야."
"사기꾼이 맞군요. 가겠어요."

무슨 사기안 이냐.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오는 말에 소녀는 더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아졌다.

"귀찮은 여자애구나. 요즘 여자애들은 마법을 믿지 않는 건가. 하루 운세나 행운의 아이템은 믿으면서…."
"…어차피 당신이 뭘 하든지 바뀔리 없어요. 슬픔이나 스트레스 같은 게,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일리가 없잖아요."

소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 놀랐다. 자신이 지닌 지금 이 고민이 객관적으로 보면 슬픔이나 스트레스처럼 간단한 개념으로 취급된다는 것도 그랬고, 어느 새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에도 놀라웠다.
그리고,
?스슥

"…!"
"이제, 믿겠어?"

소녀의 그림자. 분명 평범히 쳐져 있었을 터였던 그림자는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공중에 검은 장막의 형태로 떠올라 있었다. 검은 그리고 끝이 뾰족한 발톱으로, 여자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들이 자신을 겨누고 있다는 것에 소녀는 두려움을 느꼈다.

"…."

하지만 그 잠시 사이동안 여자는 그 그림자를 거두었다.

"너무 놀라는 거 아냐?"
"난…!"

들키듯이 소녀가 치를 떤다.

"네 잠재 의식에 나와 있다고. 네가 쓰는 이야기에는 이것보다 심한 판타지 요소가 들어 있잖아. 용이니 왕자니 마족이니…. 오호, 마법 소녀는 나오지도 않네? 왠지 짜증나네. 넌 제대로 이 현실을 보고 있는 지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냐, 아가씨?"
"무슨 말이죠?"
"넌 글을 쓰면서 바라잖아. 마법이 있고 초자연현상이 일어나는 신나고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재미있는 세계를 말야."
"…."
"그게 지금 네가 그 무거움을 느끼는 원인 아냐? 네가 바라는 것과 이 세계의 괴리."
"…."
"아하하. 괴리감이라, 좋아하는 말이지. 이 계약을 맺으면 난 반드시 너에게서 슬픔이 사라질 것을 약속하지. 넌 행복해 질거야. 나는 알아. 그냥 서명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이걸 거절하냐 마냐는 네가 정할 일이야."
"…."

여자가 품에서 꺼낸 것은 A4용지 크기 정도의 종이 였다. 알 수 없는 문자로 적혀진 그 용지는 감촉만은 평범한 종이가 아니

었다. 무언가의 가죽인 것처럼 부드럽고도 뻣뻣하다. 소녀의 머리에서는 이미 그 서약의 내용은 아무래도 좋은 지도 모른다.

"재밌는 사실 가르쳐 줄까?"

여자가 건내는 깃펜을 받아들던 소녀가 아무 감정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기 서명하면 네가 원하는 판타지가 펼쳐질 지 누가 알겠어."

싱긋. 여자가 웃었다. 마법이 묻은 종이. 마법 소녀. 그런 판타지를 바라는 소녀를 무너뜨리는 건 간단한 일이라는 걸 여자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이뤄지고 있어. 지금도 이뤄지고 있어.
뒷골목에서 마법 소녀가 웃고 있어. 지금도 서명되고 있어.


Act. 1

축복시에는 지하철이 없다. 남자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아픈 다리를 억지로 지탱해 가면서 남자는 버스에서 내린다. 저녁 10시를 조금 넘은 시간. 거리는 퇴근 차량과 하교하는 학생들로 북적 거렸다. 그 거리를 지나치면서 남자는 숨을 씹어 삼키듯 어렵게 어렵게 내쉬었다. 남자는 매우 지쳤다.

'그간 수고했네. 집에서 쉬게.'

퇴근 전에 호출을 한 상사의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서 멤돌었다. 퇴직금은 다음 주에나 입금된다는 듯했다.
남자에게는 그저 하루가 하나의 숙제처럼 쌓여있었다. 숙제를 거의 끝냈을 때는 다른 숙제가 떠오르고는 했다.
어두운 거리는 자세히 볼 것도 없이 그 알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 묘한 분위기에서 남자는 한 소녀를 발견했다.
1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작은 소녀는 왠지 모르게 다른 병풍같은 사람과는 느낌이 달랐다. 무리에 섞이지 않고 따로 노는 듯한 그 괴리감에 남자는 어렵지 않게 눈으로 그녀를 쫓을 수 있었다.
딱히 그가 어린 여자가 취미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딸이 생각나 그 또래 아이들만 보면 응시하는 버릇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소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찡긋.

윙크였다.

그건 굉장히 남자를 직시한 자세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소녀가 자신에게 윙크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리고,

매료된 듯 소녀를 뒤쫓기 시작했다. 정말 급한 듯. 자신은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남자는 소녀의 뒤를 밟았다.
앞에서도 말했듯, 축복시에는 지하철이 없다. 하지만 지하보도는 있다.
지하보도 아래로 내려간 소녀를 쫓아 남자가 황급히 지하보도를 뛰쳐내려간다.
소녀의 등 돌린 걷는 모습은 남자가 아무리 힘껏 달려도 커지지 않았다.

남자는 애가 탔다.

그리고 지하보도 안에 들어선 그는 그 소녀가 걸음을 멈추고 자기 쪽을 향해 서 있다는 걸 눈치챘다.

"…저."
"아저씨는."

남자의 말을 자르고 소녀가 말을 시작했다. 소녀는 궁금증에 찬 귀여운 눈을 굴리며 남자의 앞으로 걸어왔다. 마치 서양식 인형처럼 예쁜 프릴 장식의 원피스에 인형같은 외모. 가슴에는 하트 모양 펜던트. 알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소녀였다. 소녀와 남자의 거리는 이제 1m도 채 되지 않았다.

"아저씨는, 나를 왜 쫓아왔어?"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걸까. 하긴 요즘 세상이 흉흉하니 그럴 수 밖에.
라고 남자는 납득했다. 그래서 해명을 하기로 했다. 놀래켜서 미안하구나, 아저씨 딸도 네 또래라 궁금증에 그만 쫓아왔구나.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타이밍을 가로채고, 남자에게 윙크를 하던 그 소녀는, 특이한 인상의 그 소녀는, 인형같은 화려한 복장에 아름다운 용모를 한 그 소녀는.
남자의 팔뚝을 강하게 잡아왔다.


"혹시 나랑 놀아주려고? 아니면…."

소녀의,
.

"내 먹이가 되어 주려고?"

소녀가 쥔 남자의 팔뚝이 멋대로 휘더니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가 남자의 뇌까지 울렸다.

"끄윽…!"

남자는 소녀의 손을 뿌리치며 팔뚝을 부여잡았다. 어렴풋이 자신의 팔을 꺾은 힘이 소녀의 손에서 온 힘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남자가 소녀의 팔을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가늘고 흰 팔일 뿐이었다.

"뭐지, 넌?"
"흠?아저씨는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네. 근육의 탄력성도, 근력도…. 보통은 팔이 잘려나갈 힘일 텐데."
"…크윽."

팔에서 피가 나서 머리가 슬슬 아파오는 게 느껴졌다. 힘들다. 몸이 이대로 였다가는 쓰러지고 말 것이다.
소녀는 자신의 등뒤로 검은 오라를 두르기 시작한다. 남자는 알 수 없는 그것은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검은 괴물이 되었다.

"원래 보통 인간들에게는 안 쓰는 주의지만…. 난 조심성이 강해서 말야."

소녀가 검지로 자신을 가리킨다. 그 괴물들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퇴직금도…아직 못 받았는 데.'

이와중에도 남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괴물들이 남자를 덮치고도 남았을 시간이 흘러도 괴물들의 숨소리만 들릴 뿐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가 다시 눈을 뜨고 바라본 장면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다가 공중에서 박제처럼 멈춰버린 검은 괴물과 그 괴물의 중심에 있는 작은 소녀였다. 정확히는 그 소녀의 가슴이 피로 전멸해가는 게 보였다. 그녀의 심장이 있을 자리에는 누군가의 팔이 뚫고 나와 있었다. 그 팔 끝의 손에는 뭔가를 쥐고 있었다.

"…쿨럭."

소녀가 피를 토했다.

"어, 째서. 인간이. 맬리스를 직접 만질 수 있는…."
"…미안해."

새로운 인물의 목소리. 아마도 소녀의 심장을 관통한 저 팔의 주인인듯 했다.
아름다운 소녀의 음성 이었다.
왠지 모르게 사과하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녀의 심장을 관통했던 팔이 다시 뒤로 빠지면서 참으로 현실적인 소리가 지하 보도 안에 울렸다.

?털썩

자리에 쓰러진 소녀와 함께 검은 괴물들이 흔적을 감춘다. 그리고, 그 무서운 소녀의 심장을 관통시켜 쓰러뜨린 인물의 모습이 드디어 보였다.
빨간 색이 강한 특이한 밝은 적갈색 머리는 목 뒤에서 양갈래로 묶었고 우습게도 머리에는 캡모자를 쓰고 있었다. 복장은 이 근처에서 자주 보이는 여고의 교복이다. 뒤에는 빨간 색 백팩을 매고 있어 묘하게 소녀의 머리 색과 어울렸다.

"…괜찮으세요?"

소녀가 남자에게 다가왔다. 얼굴에는 걱정반 안심반이었지만 피묻은 소녀의 왼팔이며 아까부터 신경쓰이는 뭔가를 들고 있는 왼팔이 남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아까부터 잊고 있었지만 남자의 팔에서는 피가 굉장히 많이 나고 있었다. 소녀는 그게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구급차를 부를 까요?"

핸드폰을 드는 그녀를 손사래를 치며 막아선 남자가 물었다.

"너, 아니, 아가씨는 뭐하는 사람이야…저 괴물 여자애는 뭐고."

잠시 남자를 쳐다보던 소녀는 뒤를 돌아 쓰러져 있는 소녀를 보더니 한숨을 쉰다.

"'마법 소녀'를 혹시 아세요?"
"마법 소녀?"
"마법 소녀라면 딸이 텔레비전만 틀었다하면 쳐다보고 앉아있는 그 별가루를 날리며 부끄러운 주문을 외우는 그 마법 소녀?"
"아니에요."

소녀가 딱 잘라 부정한다.

"외모는 닮았지만, 아니에요."
"그럼 뭐야? 마법 소녀라니…."
"사람에게는, 사랑이나 희망같은 좋은 감정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절망이나 증오, 열등감, 원망처럼 좋지 않은 감정도 많죠. 이 감정들이 내는 특유의 힘과 파장이 있는 데 이 힘이 실생활에서 '마법'이 되는 건 이 감정들이 '맬리스(Malice)'라는 형태로 나타날 때에요. 인간 중에는 체질적으로 이게 강해서 마법 소녀들과 직접 싸울 수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맬리스를 모아 정제하면 이런 모습이 되지요."


소녀가 왼손을 펴보였다. 탁한 붉은 색의 돌. 어떻게 보면 보석인지도 몰랐다.


"이걸 심장으로해서 맬리스로 살을 붙여태어나는 게 마법 소녀. 누군가가 임의로 만들고 있는 걸로 추정되지만, 그게 마법 소녀예요. 하지만 맬리스로만 된 인형은 만들어지기 쉽지만 성능이 비교적 떨어지죠. '인간'을 그릇으로 만드는 거에 비해…."


인간을 그릇으로.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쳐왔다.


"인간을 그릇으로 해서 그 인간 안에 마법 소녀의 정제된 맬리스 심장을 존재하게 하는 거죠. 그 인간의 나쁜 감정을 빨아먹고 그 인간 속에는 마법 소녀가 자라게 되요. 맬리스로 변환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진행속도가 아주 빠르죠. 마법 소녀는 성장해가면서 그 사람의 몸을 점점 점령해 가는 데, 끝에는 아까 그 소녀처럼 완전히 몸을 먹혀서 하나의 마법 소녀가 되고 말아요."


다시 돌아본 쓰러진 소녀는 어느새 딴 아이가 되어 있었다. 아까와는 다른 평범한 여자아이. 마법 소녀의 가면이 벗겨진 인간은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소녀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남자의 다친 부분에 엉성하게나마 지혈을 해주었다. 남자가 그걸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렇게 좋은 거라면 다른 마법 소녀도 전부 그렇게 만들면 되잖나?"
"인간을 그릇으로 한 건, 성능은 좋지만 단순한 맬리스 덩어리인 마법 소녀보다 몇 배는 만들기 힘들어요. 왜냐면 그릇으로 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이 엄격하기 때문이에요. 마법 소녀를 키워낼 만한 큰 절망이나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맬리스 자체가 갖는 음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쉬운 여자가 좋죠. 그리고 무엇보다,"


소녀는 그쯤에서 남자쪽에서 아예 등을 돌린 채 그 쓰러진 소녀쪽을 바라본다.
부패되지 않고 먼지가 되어 가는 소녀는 이제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해요.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식의…."
"서명? 이런 꼴이 되길 원하는 인간이 있나?"
"아마도 '너의 슬픔을 없애주겠다'는 식의 입발림을 하는 것 같지만…. 그리고 실제로 마법 소녀가 성장하면서 그런 걸 양분으로 하기 때문에 마법 소녀를 몸에 키우면 정말로 느껴지지 않은 데요, 스트레스나 슬픔이."


소녀는 쭈그리고 앉아 모래가 돼 버린 소녀, 아니, 마법 소녀의 잔해를 내려다보다가 손으로 그걸 쓸어 모은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삐져나와 잘 모아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에요. 아까 그 여자애도 잊고 싶었던 슬픔이 있었단 거죠."
"…."
"하지만, 마법 소녀의 심리는 더욱 심하데요. 자기가 그 동안 외면해 온 슬픔을 온몸으로 한번에 느끼게 되니까요. 그걸 막는 건, 안타깝게도 이런 무식하고 찜찜한 방법 뿐이죠."


소녀는 모래를 내려다보며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남자도 그저 아무말도 없이 소녀가 하는 재간을 쳐다만 볼 뿐이었다.

남자와 통성명을 했다. 남자는 자신을 본명 대신 '미스터 김'이라고 부르길 원하는 듯 했다.


"뭐예요. 어린애도 아니고 무슨 게임 캐릭터 이름마냥."


내가 비웃듯이 말하자 미스터 김도 내 이름을 듣고 어이없어 했다.


"아가씨도 만만치 않은 데. 박제인이라."


내 이름을 가지고 말도 안돼는 농담을 해대는 그에게 내가 물었다.


"근데 아저씨 오늘 안 좋은 일 있었어요?"
"응?"
"마법 소녀도 아무나 먹진 않거든요."
"…짤렸거든."
"아하."
"전에 하던 일을 내가 좀 일찍 그만뒀더니 아내가 날 굉장히 푸대접하더라고. 그래서 새 직업을 구했는 데 아내가 딴 남자가 생겨서 이혼했어. 집에선 딸내미가 기다리는 데…. 이렇게 다쳐가지고선 아빠가 짤렸단다, 내 사랑하는 딸아, 라고 하면 딸

이 무슨 얼굴을 할지, 원."
"전엔 무슨 일을 하셨는 데요?"
"흠, 이건 비밀인데."

미스터 김은 응급실에 가는 걸 마다하고 약국에서 산 싸구려 붕대로 팔을 둘둘 감으며 씩 웃는다.

"비밀부대 특전사였어."
"…당신 대체 몇 살이에요."

농담 하지 마, 이 아저씨야.

"남자에게 나이를 묻는 건 실례라고, 제인 아가씨."


난 한숨을 쉬었다. 마법 소녀를 대할 때보다 어려운 상대가 존재했을 줄이야.


"그나저나 아가씨는 아까 보니까 대단하던데. 그것보다 그 긴 설명 뒤에 내가 아가씨는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었잖아."
"난…."


미스터 김이 붕대와 씨름을 하는 걸 보며 나는 짧게 말했다.


"그냥, 맬리스가 조금 강한 보통 여고생이에요. 정식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뭐가 강하다고?"
"맬리스 말예요. 아까 실컷 설명해 드렸잖아요. 이게 강하면 마법 소녀와 맞서 싸울 수 있어요."
"오호, 그렇단 말이지….다 됐다."


붕대를 다 맨 그가 불쑥 물었다.

"그 맬리스란 거, 단련하면 강해 지냐?"
"잘 모르지만 단련해서 강해진 사례는 알고 있어요. 왜요?"
"아가씨가 아까 '정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했으니까 정식으로 하는 방법이 있다는 거잖아?"
"설마 이 일을 하겠다고요?"

미쳤군.

아까 그 마법 소녀가 매료의 마법을 써서 유인한 것 같긴 했지만 설마 그것 때문에 머리가 정말 어떻게 된 건 아니겠지.

"아까 아가씨 설명을 듣고 보니까 그 일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 참에 새 직장도 구해야 하고. 왜, 아가씨가 보기에 나는 재능이 없나?"
"…."


솔직히 말해서 일반인치고는 굉장히 강한 맬리스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아저씨가 아까한 농담대로 아저씨가 특전사 출신이라도 꽤 어려울 거에요. 애초에 이것말고 다른 좋은 직장도 있을 텐데요."
"아까 아가씨가 했던 그 주옥같은 말들 때문에 반한 것 같아. 책임지라고, 아가씨."
"중년 남자한테 책임져달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저씨도 정말 나름대로 막무가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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