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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가고이고!
글쓴이: 신약io2
작성일: 12-04-30 23:51 조회: 2,855 추천: 0 비추천: 0

프롤로그

-쫓았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장맛비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쫓았다.

-쫓는 이유 따위 어떻게 되는 좋았다. 그녀를 잡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그래서 쫓았다.

“헉.. 헉..”

원래 체질이 그렇게 달리기를 잘 하는 체질이 아닌데다가 온몸으로 맞고 있는 차가운 장맛비 때문에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계속 달렸다. 숨이 차든 말든 달렸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서 옷에 묻은 흙을 털고 다시 달렸다.

그렇게 2시간. 깜깜한 밤에 비까지 내려서 바로 앞에서 뭐가 날아와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런 어둠에서도 눈에 띄는 그녀의 연노랑색 머리카락 덕분에 나는 그녀를 쫓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목표물인 여자 또한 점점 지쳐갈 즈음에...

“!”

그녀가 좁은 길 끝의 횡단보도 앞에서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 아무래도 신호등이 빨간불인 모양이다.

절호의 기회다.

현재 차들은 별로 다니지 않지만, 빗속이라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옆에서 한 차가 달려오기만 한다면 바로 그녀를 보지 못하고 교통사고 확정이다.

게다가 길의 양 옆은 높은 담. 적어도 그녀의 키에 두 배 정도는 되어 보인다. 그 담을 넘으려고 하다가는, 금세 나에게 잡히겠지.

그건 자신도 알고 있는 모양인지, 그녀는 어찌할 줄 몰라 하면서 초조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독 안에 든 쥐 신세다.

‘이제, 잡을 수 있어!’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남은 힘을 짜내어 달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녀와의 거리. 포획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 어이!”

-그녀가 횡단보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젠장!”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녀를 따라 횡단보도로 뛰어들었다. 빨간 불이었지만, 횡단보도 옆에서 오는 차는 없었고, 지금 내가 달리는 속도와 그녀가 달리는 속도를 비교해봤을 때, 건너편에 다다르기 전에 그녀는 나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빵빵-!

그녀와 나의 거리가 점점 좁혀져 가고 있을 때, 횡단보도 오른쪽에서 크락션이 시끄럽게 울리면서, 눈부신 빛이 이쪽을 비추었다.

그 빛은 점점 환해지는 듯 했고, 내가 설마하는 마음으로 오른쪽을 돌아보았을 때,

끼이이익-!

“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콰과광-!

시야가 흐려지면서 온몸에 느껴지는 심각한 고통. 믿기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 차에 치인 것이었다.

“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차디찬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쳐졌다.

복부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냥 가벼운 타박상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입에서는 피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히, 히이이익!!”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서는 두려워졌는지 자신의 차에 다시 탑승하고는 피를 토하고 있는 나를 내버려둔 채 빗속을 다시 질주했다.

‘잡아야.. 되는데..’

그녀는 안쓰럽다는 듯이 이쪽을 보았지만, 자신을 잡으려던 사람이여서 그런지, 이윽고 고개를 돌리고 다시 뛰었다.

결국 그녀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으윽..”

차가운 아스팔트. 차가운 장맛비. 만신창이가 된 내 몸. 그런 내 몸으로 흘러내리는 검붉은 색의 뜨거운 피.

“설윤... 아...”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 여자의 이름을 부른 후, 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로 차디찬 아스팔트에서 의식을 잃었다.

-이 이야기는 착실한 남학생 우이현과 활기찬 여학생 저 민설윤이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1장: 가정적인 남고생과 이웃집 고양이 소녀


저기 말이야.

새벽에 잠깐 깼다가 다시 자려면 잠이 안 오지 않아?

그럴 때는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데워서 먹거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잠이 더 잘 온다고 해.

여기서 주의할 점은 남까지 잠을 설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점이야.

새벽에 잠이 안 온다고 친구에게 문자를 한다거나,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거나, 친구네 집에 같이 자러 온다거나... 뭔가 말이 좀 이상한가?

어쨌든. 결론은 딱 한가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것.

[선배, 저 잠이 안 와요.. 선배 집에서 같이 자면 안 되요?]

“...그냥 우유나 마셔.”

그래야 키가 클 테니까.

[그래도요...]

“남녀가 한 방에서 같이 잔다는 것에 대해 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거니.”

[선배랑 저는 가족보다도 더 깊은 관계잖아요.]

“가족을 좀 더 소중히 여기라고!”

[뭐, 좋잖아요. 선배는 로리콤이니까 저같은 여자애가 이런 부탁을 하면 속으로는 기뻐하고 계신 거죠?]

“무, 뭐?”

[어라, 진짜 그런 거에요? 후후-.]

“으, 으으..”

할 말이 없다.

[뭐, 전 선배의 그런 점도 좋아해요. 매일 제 자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벽에 걸어놓는다던가, 제 아침밥에 흥분제 같은 이상한 약을 넣는다던가 그런 것도 모두 이해가 가능해요.]

......

“네 상상으로 사람을 변태로 만들지마!”

어디 사는 놈이냐! 그 자식은. 로리콤인 내가 봐도 그건 바로 경찰행이라고!

[후아암~ 선배 이제 졸려요.]

“난 잠 다 깼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가 아니라, 어이 잠깐만!”

뚝-

매정하게 끊긴 전화.

“으윽...”

이쪽은 완전히 잠이 달아나버렸다고-.

아. 안녕하세요. 인태고등학교 2학년의 우이현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해외출장 중이셔서, 넓은 2층집에서 혼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아주 착실하게 문제없이 고교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인 것은, 최근 저에게 이상한 병이 생겼다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는 당신은 유치원 교사나....]

저번에 학교에서 적성 검사를 했을 때 나온 코멘트에서 이렇게 쓰여 있었는데, 이것을 본 저희 반 애들은 모두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얘들아! 이현이가 로리콤이였어!]

-로리콤.

로리타 콤플렉스의 준말. 여러분도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14세 이하의 여자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원래 저는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성격도 아닌데, 왜 이런 로리콤이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자면, 역시 1년 반 전에 있던 그 사건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건 정말로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름도 모르던 옆집 소녀하고 같이 살게 된 그 일은-.

*

1년하고도 반년 전, 어느 겨울.

방에서 아버지가 누군가하고 얘기하고 계셨다.

뭔가 심각한 이야기인가.. 하고 방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아들이 벌써 고등학교 들어가던가?]

[그런데 왜?]

[아니.. 사실 부탁할 게 있어서.]

[...뭔데.]

부탁이라면, 설마 돈? 안 되는데. 우리 집 돈 없는데.

[나랑 안사람이랑 다음주부터 일 때문에 3년정도 해외로 나가야 되거든.]

[처음 듣는 이야기네.]

[그런데 알다시피 내 딸이 조금 적응을 못 하잖아.]

딸이라면,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아저씨 딸?

[데려가기가 좀 그렇더라고. 본인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그건 큰일이겠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이번은 중요한 일이라 가지 않을 수가 없어. 결국 누군가에게 맡기고 가는 수밖에 없겠다... 했는데.]

[그렇구나.]

저 아저씨도 힘들겠네. 3년이나 딸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그래서 말인데..]

[?]

[네 아들, 듣는 바로는 완전히 만능이라던데?]

에, 나?

[....맞지.]

-아버지!

[내 딸 좀, 네 아들한테 맡길 수 없을까?]

[‘에, 에에에에?!!’]

갑자기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네. 아니 왜 갑자기 내가 나오는 거야.

내가 일을 많이 하기는 했어도 애 봐주는 일을 한 적은 없는데.

오늘 온 그 애는 확실히 여려보이는 데다가 키도 작고 초등학생인줄 알았는데.

애시당초 외동이라서 ‘보살피다’라는 개념조차도 확실히 모르는데.

[부탁한다. 너 말고는 진짜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다, 내가.]

아버지, 거절하세요!

[...뭐, 좋을 대로 해.]

에? 에에에에에?!!

[잠깐만요!]

멘탈이 붕괴된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두 분 모두 얼떨떨한 표정. 밖에서 내가 듣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신 모양이다.

[아니, 그래도 저랑 의논도 좀!]

그렇게 말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신 다음에 침착하게 말씀하셨다.

[잘 된 일 아니냐. 어차피 네 엄마랑 아빠도 곧 해외로 출장가야 되는데. 외롭던 찰나에 여동생이 생겼다고 생각해.]

[그래도 잘 모르는 사람의 딸을!]

[뭘 잘 몰라. 옆집에 사는 앤데.]

그, 그럴 수가!

그 귀엽고 어려보이던 애가, 옆집에 살던 애였어?!

[의외로 어울리는 조합 아니겠냐?]

[그치?]

역시 친구라는 것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건가 보다. 그건 좋은데,

왜 이야기가 그 쪽으로 가는 거냐고!

[승낙인가?]

[...예.]

그렇게 해서 나는, 가끔 집앞에서 스치기만 하는 정도인 그녀를, 그러니까 거의 초면인 여자아이, 민설윤을 3년동안 맡게 된 것이었다.

*

1년 반정도 맡게 된 지금 이 순간. 어쩌다 보니 로리콤이 되버린 나는 설윤이와 만나는 모든 순간에 조심해하면서 살고 있다.

보기만 하면 안아버리고 싶을 정도의 귀여운 애라서, 정신줄을 잘못 놓기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기도 싫다.

-현재 아침 7시.

학교 종이 치는 시간까지 앞으로 30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설윤이를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

멀리서 나를 부르는 낭랑한 저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으니 어제까지 쌓였던 피로들이 모두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어어.”

민설윤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자면,

연노랑색 생머리의 초등학생 체형. 누가 보면 바로 미아라고 의심할 듯한 순수한 표정을 지닌 소녀다.

뭐, 실제로 성격까지 불순물 하나 없는 순수함 그 자체라서 미아가 되는 일도 있기는 있지만.

“오늘은 기운이 없어 보이시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걱정되는 듯 쳐다보는 그녀. 하지만 나는 그다지 피곤한 상태도 아니다. 오히려 날아갈 것 같은 기분.

“없어없어.”

“그렇군요...”

그래도 미심쩍은 듯 계속해서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본다. 그리고 내가 그쪽을 보면 다시 안 본 척 시선을 피하고...

“왜 그러는데.”

“선배.”

“왜.”

“-혹시 차이신 거예요?”

......

갑자기 너무 뜬금없는 말을 들었다.

언제부터 내가 여자친구가 생겼고, 차여서 시무룩해진 설정이 생긴 거지?

“누구한테.”

“여자친구한테요.”

“.....”

애시당초 나에게는 여자친구가 없다.

너 먹여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교제할 시간이 어딨냐. 하고 싶어도 못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애써 감정을 누르면서 질문.

“저번에 선배 친구가 그렇게 말하던 데요.”

“...아, 그건가.”

얼마 전, 앞자리에 앉은 애하고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도중에 이런 얘기를 하였다.

[지난 주에 노래방을 갔다 왔는데...]

[노래방? 누구랑 갔는데. 여자친구? 얘들아- 이현이 여자친구 있대!]

[야!]

그게 어떻게 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1학년 교실까지 흘러들어간 모양이다. 소문 한번 정말 빨리 퍼지는 구나.

“그것보다 언제 여자친구랑 노래방을 가신 거예요?”

“.....”

넌 그 이야기를 아직도 믿고 있었냐. 벌써 1달 전 이야긴데.

“설마 일(=아르바이트) 한다는 핑계를 대고 나가신 건!”

“어이.”

네 선배가 일 핑계대고서 놀러나갈 것 같니!

“그것보다, 그 때 노래방 너랑 같이 간 거잖아!”

“아, 그랬었죠.”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사실 그 때 노래방을 같이 간 건 여자친구(물론 없지만)가 아니라 설윤이였다. 너무 시무룩해져 있길래 스트레스를 풀자는 식으로 겨우겨우 시간내서 보내 준건데...

1달 전일이라 잊어버린 모양이다. ....보통 나랑 같이 한 일은 모두 기억하고 다니지 않던가?

그리고는 갑자기 화앗- 하고 얼굴을 붉히더니,

“그럼 제가 선배 여자친구?!”

“....에?!”

이건 갑자기 무슨 염소가 풀 뜯어 먹는 소리래.

“멋대로 이야기 만들지 마!”

“하우... 부끄러워요....”

오늘도 꽤나 활기차구나.... 어레?

“설윤아.”

“네?”

“네 머리 위에...”

“머리 위요?”

그녀의 머리에 ‘그것’이 달려있다. 보통 사람은 달고 있지 않는 ‘그것’이.

눈을 비비고서는 다시 한 번 확인.

‘어레.. 없다...’

눈을 다시 뜬 순간, 그녀의 머리에 달려있던 검은 색의 ‘그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아주 내가 환각까지 보는 구나. 보통 사람한테 그런 게 달려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그래, 이현아. 아르바이트를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한 거구나. 그래도 그 환각은 좀 그렇잖아.

어떻게 여자애 머리에-

-고양이 귀를 달아놓을 생각을 하니.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확실히 그게 달려 있으면 귀여운 느낌이 살아서 어느 애니메이션 캐릭터같기도 해서 좋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일은 없잖아. 고양이 귀가 갑자기 나타났다가 안 나타나는 일은.

설윤이한테 괴물이 들러붙었다던가, 원래부터 본래 ‘저는 선배가 기르던 고양이였습니다.’하는 그런 옛날 만화 같은 일이 아닌 이상.

“왜 그러세요, 선배?”

“아니야. 아무것도.”

..점장님께 부탁해서 아르바이트 일수를 좀 줄여봐야 되나-

*

-그 후에도 나는 많은 환각을 보았다. 그것도 전부 같은 환각.

..점심시간의 옥상에서도.

[선배가 만든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크나큰 행복이에요♪]

[하하. 그래?]

쫑긋-

..하교 시간에도.

[오늘은 약속 없으니까 놀아줄 수 있을 것 같네.]

[네?! 정말요?!]

쫑긋쫑긋-

“음....”

별 희한한 일이 다 있네.

나타나는가 싶으면 어느새 사라져서 없고.

그것보다, 정말 환각이 맞기는 한 건가?

만약 환각이 맞다면, 난 설윤이 아버지에게 글러먹은 놈으로 처리되서 보살피기고 뭐고 강제 전학을 가게 될 거고.

만약 환각이 아니라면, 설윤이 자신의 문제니까(피부병이나) 애를 못 지켜줬다고 설윤이 아버지가 나를 혼내시겠지.

뭐 그런걸 가지고 강제 전학까지 가겠냐고 그러겠지만, 들은 이야기로는 의외로 설윤이 아버지는 딸을 무지무지 아끼시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설윤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완전 집이 초상집 분위기.

..그런데 그렇게 딸을 아끼시면서 왜 혼자 내버려 둔 거지?

어쨌든 결론은 이러했다.

환각이 맞든 아니든, 결말은 항상...

“-최악이다아아아아!!!”

“오, 왜 그러세요, 선배?!”

......

생각하고 있던 걸 그대로 외쳐버리다니.

방금 말한 거, 아마 지구 전체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로 컸겠지.

그것도 설윤이네 집에서.

으으, 민망하다.

“하아..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잖아요! 오늘 선배 조금 이상해요. 갑자기 멍해지지 않나 이번에는 또 소리를 지르시고.”

“미안, 오늘은 집에 가야겠어...”

“에? 선배! 잠깐만요! 책은 다 읽어주시고 가야죠!”

쾅- 소리와 함께 세게 닫히는 설윤이네 집 현관문. 나는 잠시 차가운 문에 어깨를 기대고 서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낮이 긴 여름이라서 그런지 7시 30분인데도 하늘은 아직 새파랬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오는 이 순간.

피곤이 낳은 환각과 비명. 누군가 오늘의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면, 분명 나를 정신이상자 취급할 지도 모르지.

“나 왜 이러냐...”

그렇게 남의 집 앞에서 신세 한탄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시던 아주머니분들이 ‘어머, 집에서 쫓겨났나 보네.’ ‘뉘 집 자식이래?’ 하면서 저마다 쑥덕쑥덕 거리신다. 여기서 ‘저 옆집 자식이거든요!’라고 할 수 도 없고..

역시 남의 집-우리 집이라도- 앞에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거겠지.

“갈까...”

그렇게 오늘따라 더 무거운 가방을 한 손에 들고서 나는 터덜터덜 내 집을 향해 걸어갔다.

설윤이 저녁밥 차려줘야 되는데, 라고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그녀를 마주하기가 힘든 상태인지라 오늘은 미안하지만 그냥 알아서 먹으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말한 들 정말 자기가 알아서 잘 차려 먹으려나?

혹시 날 기다리다가 새벽 3시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선배.. 저녁밥...]하면서 전화 할 수도.

아니면, 직접 요리하다가 집을 완전히 태워버릴 지도 몰라.

덤벙대는 성격인지라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돌아갈까..”

좀전까지의 마주치지 않겠다는 결심은 온데간데없었고, 머릿속에는 이미 ‘오늘 반찬은 뭐로 해야되나..’로 가득차 있었다.

결국 가던 방향에서 유턴.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방금 나갔던 설윤이네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나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문을 못 열어 드리는데. 저희 선배가 모르는 사람한테는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하셔서...]

....

“그 선배가 바로 나거든!”

[아, 선배! 방금 왜 나가신 거예요.. 이제 저한테 싫증이 나신 줄 알고 걱정했단 말이에요. 우우..]

“그럴 리가 있냐.”

너한테 싫증 났으면 내가 나갈 이유도 없겠지.

[문 열어 드릴게요~]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현관문의 비밀번호 장치가 띠로리- 하면서 열린다.

“선배~”

기쁨에 찬 목소리로 나를 반겨주는 설윤이. 자신의 집에 누군가 와 준다는 것은 언제든 기쁜 모양이었다.

뭐, 저 큰 집에서 혼자 지낸다는 건 꽤나 외로운 일 일테니까.

“괜찮으세요? 갑자기 나가버리시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을 걱정할 줄 아는 정말 천사 같은 아이이다.

장하다. 진짜.

“어어,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정말요?”

“정말로.”

그렇게 말해주니, 설윤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띄어지면서.

“다행이다~”

보는 사람까지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세계 최고의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역시 순수함이라는 건 좋구나~’

그렇게 마음이 한층 편안해진 내가 어느샌가 설윤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놓고서 양옆으로 쓰다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서, 선배!”

“엇!”

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에잇! 이 놈의 오른손을 그냥!

퍽- 하고 왼손, 오른손에게 몸통박치기! 오른손은 데미지 80을 입었다!

아으.. 너무 세게 쳤다.

“저기, 선배..”

무의식 중에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죄에 대해서 사과를 하려던 참에, 설윤이가 나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해주시면...”

“..에?”

얼굴이 새빨개진 설윤이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부탁한 것은 놀랍게도 ‘그거’ 였다.

-이, 이 상황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마음 속에서는 이미 “해”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울려퍼지고 있는 가운데에 다시 오른손이 어깨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안돼!’

왼손이 그것을 알아채고 바로 행동을 제지.

그러고 보니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

어레, 뭔가 다른 듯한.

“..선배?”

설윤이가 이쪽을 자꾸 갈망하는 눈빛으로 본다.

으아아아악!!

어, 어떻게 하지!

“아, 알았어.”

-뭐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무의식중에 대답해버렸어!

“이, 일단 집 앞은 좀 그러니까 들어가자.”

“...네.”

그렇게 나는 풀린 정신으로 설윤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가 정중앙에 서서 아무 말도 않고 있는 나와 설윤이.

“서, 선배?”

“...?”

“자요!”

그렇게 외친 설윤이는 눈을 질끈 감고는 까치발을 들어 내쪽으로 가까이 왔다.

“어, 어..”

괜찮아. 이현아!

지금이라면 멈출 수 있어!

풀린 정신을 잡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는 거야!

‘으, 으으..’

외, 왼손이 안 움직여!

왜 그러는 거야! 방금까지 잘 움직였잖아! 설마 너도 같은 편이냐! 왼손이 날 배신하다니!

퍽- 이번에는 오른손, 왼손에게 날개치기! 왼손은 데미지 90을 입었다!

아으.. 너무 세게쳤다.

그것보다 이런 바보같은 짓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앞의 일을 보는 거다! 이현!

물론, 설윤이가 처음으로 결심하고 하는 일인데 거절해서 창피를 줘서는 안 될 것 같기는 하지만...

그, 그래도 이런 건 소녀의 순수함을 더럽히는 짓이야!

참아라, 나여!

스윽-

저질렀다!!!

“괘, 괜찮아?”

“네.. 어느 정도..”

그렇게 몇 분 지나고 나서, 내 몸에서 나가 세계를 돌아다녔던 정신이 다시 머릿속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겨우 현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그만 할까?”

“네, 네..”

나는 겨우 오른손을 그녀의 머리에서 떼어냈다. 그리고는 다시 처벌. 오늘만 벌써 오른손을 두 번이나 때렸다.

“에, 저기...”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해야 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닥으로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천천히 그녀를 향해 올렸을 때..

‘어레?’

나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얼굴이 새빨개진 설윤이. 그녀의 머리 위에는, 아침에 봤던,

-검은 색의 고양이 귀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

“팀장님, 샘플-110292에서 반응이!”

“그렇군요. 좀 더 상황을 지켜보도록 합시다.”

-어딘가의 방 안.

실험복을 입은 여러 명의 젊은 사람들이 모니터를 보면서 팀장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서 지시를 내리는 팀장은, 무언가의 샘플의 얘기를 듣고는 작게 중얼거린다.

“-이제.. 움직일 때가 된 것 같군요.”

*

-이 이야기는 착실한 남학생 우이현과 활기찬 여학생 저 민설윤이 등장하는 러브러브한 이야기입니다!

“...러브러브는 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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