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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엘프(Elf) 연애 시뮬레이션
글쓴이: 에바트리체
작성일: 11-10-15 23:58 조회: 4,202 추천: 0 비추천: 0

장르 : 엘프(Elf) 연애 시뮬레이션


프롤로그


엘프(Elf).

얼마나 고귀한 존재의 이름인가. 책방에서 자주 빌려보는 판타지 소설에서 밥 먹듯이 등장하는 우리들의 영원한 여신님의 이름. 미의 상지이기도 한 요정족, 엘프. 이름만 들어도 그 아름다움을 측정할 길은 없다.

모든 남자들의 이상형, 그리고 모든 남자들의 목표. 천사. 기타 등등의 칭호가 아깝지 않다. 아름다운 외형에 얌전한 성격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존재, 상상의 정점이자 완벽에 가까운 여성상이 바로 엘프라고 생각한다.

TV에 나오는 예능 프로에서 흔히 말하는 ‘여신 캐릭터‘ 이런 거는 엘프와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만약에 진짜로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엘프라는 여자가 존재한다면,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은 외모지상주의를 연호하면서 ’외모가 밥 먹여 주냐!‘ 라고 외치면서 잘생긴, 혹은 예쁜 사람들은 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데모를 할 것이리라 예상한다. 그만큼 엘프라는 존재의 외모는 굉장히 우월하다. 물론 설정상이지만.

그리고 엘프라는 존재들이 각광받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자연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이 시대에 환경파괴의 주범이기도 한 우리 인간들에게 엘프라는 존재는 얼마나 귀감이 되는가. 자연을 아끼고 환경을 사랑하는 그 모습. 지금 우리 시대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 그렇다고 내가 환경보호 지지운동가도 아니고, 길 가다가 보이는 쓰레기가 있으면 주워서 휴지통에 넣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 자원봉사자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엘프 하면 바로 정령과 마법. 이건 현대 시대의 과학기술과는 약간 동떨어진 판타지적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세상에 마법이 어디 있는가. 하물며 정령은. 물론 정령은 토테미즘(totemism)1)이라든지 이런 신앙 상으로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거야 기원전 이야기고, 지금은 자동차가 매연을 뿜으면서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현대가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정령이니 마법이니 그런 건 손톱의 때만큼도 없다는 뜻이다. 뭐, 소설에서 보면 나 같은 고등학생이 이계로 떨어져서 세계를 구한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그것도 현실 불가능. 과학이라는 학문 분야는 은근히 많은 한계성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서두가 상당히 길었다. 시베리아의 높은 산맥보다도 더 길다고 체감 상 느껴질 이 시각에 적절하게 끊는 기교를 발휘하자.

왜 내가 지금까지 엘프에 대해서 주구장창 설명을 했냐고 의심할 것이다. 그런 여러분들에게 나는 당당하게 이 자리에서 외칠 것이다.

엘프는 존재한다. 정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겠지. 당연하다. 그게 평범한 반응이니까. 그리고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같은 부류의 평범한 사람이니까.

그러나 믿게 될 것이다. ‘믿으면 길이 열린다.’라고 하지 않는가. 아, 참고로 나는 종교인도 아니다.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말라고.

아무튼, 내가 왜 엘프가 실존한다고 주장하는지는 이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 그리고 반 걱정삼아 말한다.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엘프'라는 존재는 상상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 해두기 바란다. 이상.





챕터 1. 엘프와 만났을 때 당신이 선택할 첫 번째 선택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있어서는 '여자'라는 생물과 전혀 인연이 없었다. 여복(女福)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 나에게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어찌되었든 나는 여복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운이 높다는 사실도 아니다. 건강운이 좋은 편도 아니고, 금전운, 그리고 여복도 안 좋으니까 당연히 결혼운 이런 것도 없을 것이다. 유일하게 좋은 점이 있다면 손금에 있는 생명선이 전부.

여러 가지로 안 좋은 인생을 살고 있는 나. 줄여서 말하자면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문장과 정말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고등학생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때로는 행운이라는 이름의 녀석이 찾아온다. 아니,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행운이 아니라 나에게 거의 없다시피 한 여복이라는 이름의 녀석 말이다.

그것은 어느 평범한 날.

우연치 않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된 내가 학교를 향하던 길에 벌어진 일.

날씨도 더워 죽겠는데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학교까지 걸어가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하늘이 불쌍하게 느꼈는지 하나의 선물을 내려주었다.

매미가 우는 여름 풍경.

수풀진 거대한 나무 아래에 긴 금발을 바람에 휘날리며 눈을 감은 채 서 있는 여자아이.

희고 고운 피부와 늘씬한 몸매, 그리고 조각 같은 외모와 왠지 모르게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런 여자아이였다. 참고로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서는 분명 우리 학교 학생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저런 금발 미인이 있었나 하고 다시 한번 두뇌 속에 있는 기억의 저장장치들을 수색해본다, 결과 도출 완료. 한마디로 그런 사람은 없다.

뭐라고 해야 할까.

판타지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종족이 있지 않은가. 소위 말하는… .

엘프.

그래. 엘프라는 종족.

분명히 그런 이름의 종족이라고 표현하는 게 어울릴만한 여자아이다.

그만큼 눈부시고, 그리고 내게 있어서는 과분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여자아이. 순간적인 기질을 발휘해서 표현한 단어였지만, 엘프라는 별명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보여진다. 내게도 이런 네이밍 센스가 있을 줄이야. 조금은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여겨진다.

"아…!"

그렇게 입이 마르도록 칭송하던 엘프가 나와 시선을 마주한다. 내 모습을 보자마자 얼굴을 상기시키며 상당히 놀란 눈을 하는 엘프녀. 아무리 내가 인기 없는 남학생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쳐다볼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것보다도 뭐냐. 저 반응은.

"다, 당신… ."

"나?"

"그래! 당신 말이야!"

성큼성큼 걸어오는 엘프녀. 아니, 판타지 소설을 읽어보면 본래 성격이 얌전하기로 알려져 있는 종족이 바로 엘프 아닌가? 그런데 현실세계의 엘프는 너무나도 터프하다. 나를 보자마자 내 멱살을 잡더니 이내 그 화사한 용모로 엄청나게 빨개진 얼굴을 보이면서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한다.

"방금 봤지! 그렇지?"

"보, 보다니. 뭘?"

"시치미 떼지 마. 아까부터 내가 '정령'을 부르는 걸 보고 있었잖아!"

"정…령?"

목소리도 상당히 예쁘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간다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에 적용이 되는 것일까… . 그것보다 그게 아니잖아.

방금 이 여자는 나보고 '정령'을 봤는지 보지 않았는지의 여부를 물었다. 조금 더 상세하게 표현하자면 일방적으로 ‘봤다.‘ 라는 쪽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지만.

"진정해. 정령이라니. 어디 종교집단이나 그런 류의 소속이야?"

"조, 종교라고. 나를 사이비 취급했다 이거지!"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아주는 엘프녀. 이제야 말문이 트이는 구나. 라고 생각을 했지만, 이것은 사건의 전조, 불길한 징조의 시작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몇 초 뒤에 깨닫게 되었다.

여자가 말했던 '정령'이라고 불리는 존재. 물론 나는 실제로 정령이라는 불가사의하고 영화 CG로 표현될법한 존재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존재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이 단 한마디만을 연상하게 만들 수 있었다.

온 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 그리고 나를 노려보는 매서운 눈빛. 크기는 작지만, 4발 달린 짐승이 나를 보면서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분명 강아지는 아니고, 그렇다고 고양이는 더더욱 아니다. 새로운 미지의 생명체인가? 외계인? 그렇다면 나는 지금 ET라는 존재와 마주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봐도 정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기말고사나 중간고사 때 이런 식으로 머리가 잘 돌아갔다면 학교 1위는 금방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한 동물, 즉 정령을 소환해낸 여자가 갑자기 나를 가리키면서 동물에게 명령하듯이 외친다.

"저 녀석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

"자, 잠깐! 설마 입에서 불을 뿜거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지?"

"걱정하지 마. 그 정도로 잔인한 짓은 하지 않으니까. 단지 사지를 절단해버릴 정도로 물어뜯을 뿐이야."

"그게 더 심한 거잖아!!"

인생이란 언제나 타이밍이다. 고전병법에도 나오지 않는가. 36계 줄행랑. 아주 훌륭한 전법이라고 생각한다. 승산이 없을 때는 도망쳐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는 유용한 전술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이상한 여자가 이상한 소환수를 소환하고 이상한 명령을 내리는 순간에도 정말 필요한 전술적인 전략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뒤도 돌아볼 필요도 없이 무작정 뛰기 시작한다. 솔직히 말해서 달리기는 취미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운동신경이 안 좋다는 말은 아니지만, 여하튼 달리기는 내 성미와 전혀 맞지 않는 스포츠라는 뜻이다. 굳이 왜 달리기를 싫어하느냐 물어본다면 나에게 있어서는 인내심이라는 패시브 스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설명하고 싶다.

"야! 도망가지 마!"

"너 같으면 안 도망가고 버티겠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여자. 이 자리를 벗어나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피하면, 그 뒤로는 알아서 상황이 정리될 것이다. 나름 그렇게 믿고서 학교 정문까지 무작정 뛸 뿐이다. 아침부터 통닭구이가 되는 신세는 면하고 싶으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뒤쫓아 오며 같이 뛰어오기 시작하는 엘프녀. 긴 금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저 여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미인이라는 사실은 내가 인정하겠다. 여복도 없는 내가 인정하는 거니까 나중에 영광으로 여기라고. 엘프 아가씨.

하지만 성격이 너무 불같지 않는가. 적어도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엘프의 반의 반의 반의 3분의 1 곱한 수치만큼은 얌전해야 귀여운 맛이라도 있잖아. 무턱대고 나를 죽이겠다고 따라오면 내가 뭐라고 이 여자에게 반박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뛴다. 무작정 뛴다. 죽을 때까지 뛴다. 실제로 뛰지 않으면 저 괴상한 생명체에게 팔과 다리가 합체 전의 로봇과 같이 분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뛴다. 왜 뛰는지는 묻는다면 그저 웃지요.

아직 이른 시간인지라 정문도 제대로 열려있지 않다. 저절로 튀어 나오는 욕지거리를 생략하면서 그대로 담장을 향해 몸을 날린다. 발 디딜만한 곳을 찾은 뒤에 수직으로 상승. 담벼락을 넘을 때는 지각했을 때만 허용되는 행위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일찍 온 주제에 담벼락 넘기 스킬을 시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안전하게 착지하고 한숨을 돌릴 상황에서, 갑자기 거센 돌풍이 불기 시작한다. 돌풍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사실은 기상예보에서도 확인하지 못한 정보. 그것보다도 자연적인 바람이라고 부르기에는 내가 서있는 지역만 유난히 바람의 밀도가 높아지는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인위적인 조작이라는 바람의 느낌일까. 그런 기분 있지 않는가. 물론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설마 설마 하면서 담벼락 위를 바라본다. 그러자 그 곳에 마치 나를 하등생물 바라보듯이 여왕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여성. 아까 나와 마주친 엘프녀였다. 그리고 더욱더 황당한 것은 나를 향해 으르렁 거리던 불붙은 고양이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반투명의 여성이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설마 저게 소문으로만 듣던 유령인가? 그런 건가?!

"너, 유령하고도 친구냐?"

"유령이 아니라 정령이라니까!!"

여자가 대뜸 화를 내면서 나에게 소리친다. 역시나 성격이 불같은 엘프녀. 조금이라도 저 여자가 판타지 소설을 읽었다면 이런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확신한다. 하지만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해봤자 저 여자에게 전해지는 일은 없겠지. 그런 관계로 속으로만 억울해할 뿐이고 실제로 언어화해서 말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괜히 불난 집에 부채질을 더해주기 싫으니까.

"내가 정령을 소환하는 모습을 본 이상, 우리 일족의 비밀을 위해서 죽어줘야겠어."

"일족이라니. 그것보다도 정령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네가 스스로 나한테 다 보여주고 있는 거잖아."

"거짓말 하지 마! 내가 나무의 정령과 대화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으면서…. 혹시 너! 다크 엘프(Dark Elf)인 건 아니겠지?"

"잠깐, 진짜로 엘프야? 당신?"

"진짜인 게 당연하잖아. 이래봬도 긍지 높은 하이 엘프(High Elf) 일족이라고."

"… 아. 그러셔."

생각을 정리해보자. 지금 저 여자가 하는 말을 다시 따져보면, 엘프라는 존재가 '실존'한다는 뜻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너, 판타지 소설 좀 그만 읽고 수험공부나 하는 게 어때?'라며 미친놈 취급할 것이 당연하겠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실제 인물이다. 아니, 인물인지 괴 생명체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스스로가 엘프라고 주장하고 있으니까 인정해주자. 그것도 하이 엘프. 높은 엘프라는 뜻이 아니다. 그 하이와 이 하이는 다르니까.

이제 와서 세삼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나 역시도 평범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다. 평범 오브 평범을 대표하는 남학생일 뿐이니까. 스스로가 비참해질지도 모르지만 앞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여복도 더럽게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열정적인 여자와 밀회를 나누는 것은 사양이다. 그 이전에 내 목숨을 노리고 노골적으로 달려들고 있는데 '저와 사귀어주세요!'라고 말할 미친놈이 어디 있겠나…. 라고 생각하지만 'M'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잡담이 너무 길었지만, 결론적으로 저 여자는 엘프가 확실하다. 왜냐? 지금 바로 옆에 바람의 정령 같은 분위기가 충만하게 느껴지는 반투명의 여자가 있지 않는가. 참고로 실루엣을 보니까 반나체인 듯하다. 화끈하신 우리의 바람의 정령 양. 몸매도 좋군요.

"지금 너, 실프 보고 이상한 생각 했지?"

"눈치가 빠르...가 아니라. 미쳤냐?! 정체도 모를 이상한 생물에게 욕정을 품고 있다거나 그런 변태가 아니라고."

"믿을 수 없어! 수장님이 인간계의 수컷들은 모두 성욕만 밝히는 변태라고 말씀은 해주셨지만, 설마 정령에게까지 욕정을 품을 줄이야. 진짜 죽여 버릴테다. 이 변태! 사회의 악!"

"그러니까 무턱대고 죽인다, 죽인다 말은 그만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라니까!"

"변태랑 협상할 생각은 없어!"

라고 말하면서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는 엘프녀. 순간 교복의 짧은 치마가 살짝 위로 올라가면서 순백의 하얀 팬티가 모습을 수줍게 비춘 듯 한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안 들기도 하고 아무튼 10대 청소년 남정네의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그런 시츄에이션이 살짝 연출되면서 나름 안전하게 착지한 여자. 이번에도 바람의 정령이 도운 듯이 나보다도 훨씬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태어난 기계들보다도 저 기에 있는 바람의 정령 한 마리가 더 편해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리라.

"실프! 마법사용을 허락할게."

아까와 같이 나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명령을 내리는 여자. 이번에는 마법이냐. 엘프에 이어서 정령, 게다가 마법까지. 금발 엘프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반투명의 글래머러스한 누님 정령이 양 손을 나에게 내미는 포즈를 취한다. 한 눈에 봐도 무언가 비일상적인 자연현상이 일어날 것이리라는 조짐이 강하게 느껴지는 몸동작. 반사적으로 몸을 날리며 지면을 몇 번 구르기 시작하는 내 눈에 아주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내가 서있던 자리의 시멘트 바닥에 작은 구슬 같은 크기의 바닥이 5~6개 뚫려 있는 게 아닌가. 근처에 조금의 균열도 없이. 설마 저 반투명의 S라인 누님 정령, 진공으로 구슬을 만들어서 나에게 쏘아댔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은 아니겠지? 그렇지?

"쳇. 운도 좋은 녀석이야. 정말."

"날 죽일 셈이냐?!"

"말했잖아. 엘프의 비밀을 안 이상, 네 목숨은 없다고."

"네가 나에게 정령의 모습을 보여주고 마법까지 쓰고 혼자서 다 해먹고 있잖아!"

"남자가 정말 변명거리밖에 늘어놓지 않는구나. 이래서 인간계 수컷들은 정말 정이 안 간다니까."

"……."

말이 안 통하는 여자다. 물론 나 역시도 그다지 화술에는 자신이 없는 녀석이기는 하지만, 이 여자는 너무 심하다. 사람이 하는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 고집 오브 더 프린세스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 아무리 내가 이야기 좀 들어보라고 주장하고 말로 해결하자고 지껄여도 절대로 협상 따위는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내가 무슨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이제 죽을 준비는 다 되었지? 변태."

"죽기 직전까지 변태라는 말을 듣고도 얌전히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잖아."

"좋아. 그럼 친절하게 이름 정도는 들어주지. 말해봐."

"갑자기 그렇게 국어책 읽듯이 물으니까 또 말해주기가 싫어지는데."

"그래? 그럼 죽던가. 실ㅍ…."

"알았어! 잠깐 스톱! 성격이 참 급하신 엘프 공주님이시네. 내 이름말이지? 이산이라고 해. 됐지?"

"이산?"

"쉬운 이름이니까 외우기 쉽겠지."

"그리고 잊어버리기도 쉬울 이름이기도 하고."

"… 시끄러워."

정말 남의 말에 태클을 잘 거는 여자다. 요새 엘프들은 딴지 걸기 수업이라도 받는 것일까. 기가 막힌 태클에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무튼 이름도 들었으니까. 이제 슬슬 죽어줘야겠어."

"이봐! 상대방이 먼저 고개 숙이면서 이름을 밝혔으면 네 이름도 말해주는 게 정상 아니야?"

"변태 주제에 감히 고귀하신 내 이름을 들으려고 한다고?"

엘프라는 존재들은 공주병이라는 것도 앓고 있는 모양인가 보다. 그것도 불치병으로.

확실히 외모 수준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성격이 좀 얌전해야 귀여운 맛이라도 있지 않는가. 외모는 수준급인데 성격은 여왕폐하에 불치병 공주님에 독설가에 아무튼 문제가 많은 그런 유형이다. 혈액형이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저런 성격이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한숨을 쉬면서 자신의 흐트러진 금발을 한번 쓸어내리는 엘프녀가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기 시작한다.

"루이실드라 브레이브 테리오 자 팬드래건 실비아."

"뭐… 어?"

"정말. 변태인 주제에 기억력도 부족하네 잘 들어봐. 하나하나씩 또박또박 다시 말해줄 테니까. 이번에야말로 못 외우면 정말 죽일 거야."

이런 식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서 다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긴 이름 엘프녀. 순간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3글자 이름 만세.

"…외웠어?"

"실비아라고 부르면 되는 거지."

"이 바보 녀석! 누가 감히 애칭으로 부르래!!"

"애칭이었어?!"

"고귀한 종족인 하이엘프에게 친하지도 않으면서 초면에 애칭으로 불러? 감히 나의 이름을? 진짜 한번 죽어볼래?"

"진정해! 진정하라니까! 이런 건 그냥 단순한 우연이라고! 길 가다가 번개 2번 맞을 확률의 우연일 뿐이야!"

"시끄러워! 오래 살려둔 내 잘못이지. 얌전하게 그냥 죽어버려, 이 사회의 악, 변태야!"

다시금 실프의 손이 나를 향해 펼쳐진다. 뒤는 막다른 길. 우리 학교 구조상 왜 이런 타이밍에 막다른 길을 만들어둔 것이냐고 건축업자에게 따지고 싶은 기분이 호랑이 기운 솟아나듯 마구마구 솟아오르지만, 그런 한탄은 저승에 가서 해야 할 판국으로 돌아왔다. 진공탄으로 보이는 작은 바람 구슬이 얼핏 보아도 아까보다 월등히 많은 숫자들로 포진되는 상황. 시멘트 바닥에 구멍이 뚫릴 정도면 인간의 신체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문과인 나도 아는 사실이니까.

아. 18세의 젊은 청소년의 삶이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그동안 여복도 더럽게 없었고, 운도 없고, 금전운도 없고, 있는 거라고는 생명선이 길다는 사실 뿐이고. 여러모로 안 좋은 인생만 주구장창 살다가 이대로 끝나겠구나 하는 한숨 섞인 목소리가 저절로 새어나온다.

그러나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나보다.

우리들 사이를 가로막는 정체불명의 그림자. 그리고 이내 실프의 모습이 바람이 되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순간 자신이 부른 소환수가 사라지는 모습 때문에 당황한 엘프녀. 줄여서 어찌구 저찌구 실비아가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으로 내 앞에 서있는 미녀의 모습을 보면서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사, 사루비아 언니…?"

"어머, 우리 귀여운 여동생. 인간계에서 함부로 소란피우면 안된다고 언니가 그렇게 말했을 텐데."

"아, 아니 이건… 그러니까…."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정령을 소환하고 생명의 위협까지 하고. 정말 못된 아이구나. 우리 실비아는."

"죄,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두 눈가에 닭똥 같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며 연신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는 실비아. 기고만장한 그녀의 태도가 순식간에 역전되자 나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역시나 다른 운은 몰라도, 내게 있어서 생명운 하나만큼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록 죽을 위기를 여러 번 겪었지만 말이다.






아침에 일어난 일은 도대체 뭘까. 비몽 사몽한 기분으로 교실로 돌아온 나는 생각에 잠긴다. 자신을 어찌구 저찌구 실비아라고 소개한 여자.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정체는 진짜 엘프고, 그리고 정령에다가 마법까지 쓸 줄 안다고 광고를 하고 다닌 끝에 그녀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던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에 사루비아라는 여자가 튀어나와서 내 목숨을 살려줬다. 실비아와는 다르게 타이트한 정장차림의 긴 웨이브 형태의 섹시함이 철철 넘치는 누님 분위기가 충만한 그 여자는 나에게 살짝 눈웃음을 치면서 ‘오늘 본 일은 잊는 게 좋을거야.’ 라고 나름 도움이 될 만한 충고를 날리고 사라졌다. 그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어떤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무튼 평소와는 다르게 일찍 학교에 왔는데 그 덕분에 벌의 별 일을 다 겪게 되었다. 가뜩이나 일찍 일어나서 졸린데, 그 와중에 피곤함에 피곤함을 더하는 기이한 일까지 겪게 된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한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놈은 급류가 빠른 강물과도 같아서 가만히 놔두면 계속 흐르게 되어 있는 법. 그렇다고 잡고 있어도 교묘하게 빠져나가서 시계바늘이 쉴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이 계속 돌아가게 만드는 신기한 재주를 가진 녀석이다.

"아침조례. 시작할게요."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빙그레 웃으면서 오늘의 할 말을 전한다.

"여러분들, 오늘은 소개시켜줄 전학생이 있답니다. 자 들어오…."

"잠깐만요. 선생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생님의 말을 끊는다. 순간 나를 중심으로 몰리는 시선들. 그런 식으로 보지 말라고 실제로는 나도 피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싶으니까.

속으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바로 직전에 작전 타임을 외친 내가 선생님에게 제발 기도하는 마음으로 묻는다.

"이번에 오는 전학생의 머리카락의 색깔이 금발 아닌지요."

"어? 알고 있는 거니?"

"…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어찌구 저찌구 실비아라고 하지 않나요?"

"음. 그랬던 거 같구나."

"마지막으로 여쭤보는 건데, 마법이나 이런 것도 쓰지 않나요?"

"너무 소설을 많이 봤구나. 마법이라는 게 어디 있니."

마지막은 체크 사항에서 제외. 그렇다면 일단 결론적으로 마법이라는 기이한 현상은 나 이외에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았다는 소리인가. 결국, 아침에 벌어진 판타지 대전(일방적으로 나는 도망 다니기만 했을 뿐이다.)을 친구들에게 열나게 연설을 해도 믿어줄 사람 하나 없다는 말이 될 것이다.

"등장하려는 찰나의 순간을 가로채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문을 벌컥 열고 스스로 입장하는 게스트… 가 아니라 오늘의 전학생, 어찌구 저찌구 실비아. 그녀의 등장에 순간 반 학생들의 탄성이 절로 새어나온다.

잘빠진 몸매에 눈부신 금발. 투명한 눈동자에 희고 고운 피부. 진짜 입만 닫고 있으면 여신포스가 좔좔 흐르는 미인인데, 문제는 성격이 너무 드세다는 점에 있다. 물론 그런 유형의 미소녀가 있기는 하지만,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조금 심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전학을 오게 된 루이실드라 브레이브 테리오 자 팬드래건 실비아입니다. 다들 친하게 지내봐요."

라고 말하면서 웃어주는 센스까지. 모두들, 겉모습에 속지 말라고. 저 여자는 엘프란 말이다. 악마보다도 더 사악한 하이 엘프라고.







폭풍 같은 자기소개를 끝내고서 마치 처음부터 지정되어 있었다는 듯이 내 앞에 앉는 실비아.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내 앞자리가 비어있던 것이냐. 분명 내 앞에는 이름도 생김새도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 조연이 한명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는데 감쪽같이 사라지고 마치 실비아를 위한 특등석이라는 듯이 마련되어 있는 빈자리가 뜬금없이 맨땅에서 솟아오른 느낌이다.

아름다운 금발을 살며시 흔들며 내 쪽을 향해 시선을 던지는 실비아가 무지하게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보여주며 말한다.

"잘 부탁해."

아아.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나를 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는 이 오묘한 표정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참고로 내가 표현력이 부족한 점도 있지만, 남들에게는 그저 단순하게 안부 인사를 전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실비아의 가식적인 행동에 토가 나올 지경이다. 오죽하면 주변에서 '벌써부터 미인이랑 친해지고. 부러운 자식!'이라고 장난 투로 나에게 말을 거는데, 실제로 네 녀석들이 오늘 아침의 일을 겪은 뒤에 이 여자를 마주해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만약에 이 상황에서 멀쩡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다면 내 손톱의 때를 건다.

"그럼 30분 뒤에 올 테니까 수업준비들 하고 있으렴. 아, 그 전에."

교실 밖을 나가기 직전에 무언가 생각났는지 선생님이 나와 실비아를 가리키면서 말을 끊은 이유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교장선생님이 부르시니까 실비아하고 이산은 지금 당장 교장실로 가봐."

"교장선생님이 저를 찾아요?"

"응. 그렇다고 하던데."

아니.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그 할아범은 내 이름을 호명하면서까지 직접 교장실로 찾아오라고 말을 하는 것인가. 교장이니까 별 일은 없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나뿐만 아니라 이 엘프녀까지 불리게 되었다는 소리이다. 그러고 보니 엘프녀가 이 학교에 전학을 온 일 자체가 이상하다. 설마 교장도 한 패라는 뜻인가? 그런데 왜 어째서 나를? 점점 복잡해지는 내 머릿속이었지만, 동정심도 들지 않는지 우리들의 금발 엘프녀는 어이없다는 시선을 나에게 보내면서 쫑알쫑알 쏘아댈 뿐이다.

"바보같이 뭘 그러고 있어? 시간도 얼마 없으니까 빨리 갈 생각이나 해."

"알았다니까. 그것보다 사람들 앞에서는 마법 쓰지 마시지. 이래봬도 나는 경찰서 번호도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철저한 남자라고."

"그 정도의 상식은 나한테도 있다고! 이 바보 멍청이! 방울토마토!"

단 한순간에 과일로 변신하게 된 나였다. 변신 시켜주려면 조금 멋진 과일로 변신시켜줄 것이지. 방울토마토가 뭐냐. 하다못해 싱그러운 사과나 시크한 배, 이런 거 말이다.

속으로 엄청나게 투덜대며 실비아를 이끌고 교장실로 향하는 길. 오늘 처음 전학 온 실비아는 길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내가 직접 에스코트를 하게 된 형국이다. 내가 앞장서고, 실비아가 뒤를 따른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 때문에 뒤를 돌아보며 충고 아닌 충고를 던져주는 주의사항을 잊지 말도록 하자.

"설마 하고 말하지만, 이상한 정령 같은 거 소환할 생각은 하지도 마. 그 자리에서 도망칠 거니까."

"정령이고 마법이고 사용 안한다니까. 남자가 배짱도 없네. 도망칠 생각만 하고 말이야."

"너 같으면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버티겠냐?!"

"어차피 단순한 '약자'를 괴롭힐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하시지. 나도 그렇게까지 마녀는 아니니까."

왠지 조금 짜증나는 녀석이다. 일부러 '약자'라는 단어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냐. 은근히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여자다. 참말로.

교장실 바로 앞에 선 우리. 별다른 특별한 공간은 아닌데,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된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경찰 앞에 서면 바짝 긴장되는 그런 현상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 뭐? 아니라고? 아니면 말고.

드르륵.

"실례합니다."

문을 열고 교장실 안으로 들어온 나. 뒤이어 실비아도 곧바로 따라 들어온다. 좁은 방 안에 소위 말하는 '사장님 의자'를 뒤로 돌린 채 앉아있는 교장선생님. 그런데 뭔가 모양새가 조금 어색하다.

분명 내가 아는 교장선생은 머리가 다 까지고 똥배가 툭 튀어나온 배불뚝이 할아범일 터인데, 어느 순간 그 할아범이 웨이브 형태의 긴 머리카락에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글래머러스한 에스 라인과 붉은 입술의 섹시함을 자랑하는 누님으로 바뀌어있지 않은가. 아니지. 상식적으로 그런 TS2)화가 되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 다른 쪽으로 생각을 해보자. 교장의 의자에 앉아있는 요염한 누님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한 내 두뇌가 게으른 태도를 버리고 풀가동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겪어온 내 인생의 메모리 장치를 샅샅이 살펴본 결과, 저 인물은 초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 당신!!"

"또 만나게 되어서 반가워요. 이산 군."

입 꼬리만 살짝 올라가는 미소 또한 엄청나게 농염하다. 오 마이 갓. 한글말로 풀어서 다시 말하자면 신이시여. 이정도로 파괴력이 넘치는 섹시함을 가진 여성이 존재하긴 했군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신의 축복을 받은 날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귀찮으니까 다니지 않겠습니다.

"사루비아 언니. 왜 부른 거야?"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실비아의 말. 그렇다. 이 여자는 아침에 내가 실비아에게 괴롭힘을 당하려던 찰나에 구해주러 나타난 백마 탄 공주님… 이 아니라 실비아가 언니라고 부르는 인물, 사루비아였다.

그렇다면 이 여자 역시도 엘프인 것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자, 사루비아라는 여자가 싱긋 웃으면서 명쾌한 답변을 내려주기 시작한다.

"어머, 눈치가 빠르네."

"감사합니다."

그게 아니잖아. 엘프라고 하는 존재는 순수함의 대명사 아닌가? 눈앞에 있는 사루비아라는 여자는 엘프가 아니라 서큐버스3)라고 불러야 좋은 인물 아니냐고. 엘프가 저렇게 섹시해도 되는 거야? 다른 의미로 이건 반칙이라고. 다른 의미로.

"혼자만의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쇼파에 앉았으면 좋겠는데."

"……."

친절하게 앉기를 권하는 사루비아지만, 일단 저 여자의 정체 또한 엘프라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내 쪽에서는 잔뜩 긴장 더하기 경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과거라고 부르기에도 그렇지만 아침에 실비아와의 일도 있고,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사실은 나 역시도 충분히 직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 이쪽에서 먼저 치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절 부른 건 당신들… 그러니까 엘프들과 관련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두뇌회전이 빠른 남자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야. 네 말이 맞아.“

“역시나.”

순순히 인정하는 사루비아. 일단 그녀가 왜 교장실에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잠시 생략하고, 일단 이 엘프들에 관해서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을 알아야 언쟁을 할 수 있는 법.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여자들은 미지의 존재들이다.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엘프라는 종족 자체를 전혀 모른다는 말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던 그런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결론은 하나하나씩 이들의 정보를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루비아는 오히려 편안하게 웃으면서 온갖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향해 긴장 풀라는 듯이 말한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어. 아침에 실비아의 태도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나 역시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너를 죽일 생각도 없고. 만약에 죽일 생각이었다면 내가 굳이 실비아를 말릴 이유가 있었을까?"

"그 말인 즉 슨, 분명 살려둘 '필요가' 있기 때문에 살려두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만."

"어머, 고등학생 치고는 상황판단능력이 괜찮은 편이잖아? 실비아보다 나은 아이네."

"어, 언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노발대발 화를 내기 직전의 실비아. 역시 저 어지꾸 저찌구 실비아라는 엘프는 성격이 참으로 화끈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엘프의 이미지가 점점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제길. 잘 가라, 내 마음속의 여신님들.

"실비아. 일단 앉아 있으렴."

"… 이래서 인간 남자랑은 엮이기 싫었는데. 정말!"

"어차피 벌어진 일이기도 하니까 뒤늦게 후회해봤자 소용없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체를 들킨 이유는 네가 혼자 폭주해서 그렇잖아?"

사루비아라는 여자, 참으로 마음에 드는 성격이다. 실제로 내가 실비아를 스토커 짓을 하면서까지 쫓아다닌 것도 아니고, 그저 나무 아래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을 뿐인데 무턱대고 정령을 소환해대질 않나, 자신을 엘프라고 박박 우기지를 않나, 혼자서 결국 비밀이란 비밀은 다 털어놓고 다닌 실비아에게 있어서는 통쾌한 일침이라고 생각한다.

불만어린 표정을 유지하며 잠자코 자리에 앉는 실비아. 이 녀석, 지금까지 패턴을 보아서는 사루비아라는 여자에게 꼼짝 못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사루비아에게 잘 보이면, 실비아에게 살해당할 일은 없다는 뜻이 되는 건가.

순식간에 머릿속에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한다. 엘프들의 사회에 서열이라는 것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저 여자가 한마디 하면 실비아는 뭐라고 대들지 못한다. 좋은 정보 Get이라는 느낌일까. 괜찮은 정보다. 이거.

"서설이 길었구나.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좋지?"

"좋습니다."

시원스레 대답하는 나. 이쪽에서 오히려 바라던 일이다. 당신들의 정체와 정보를 마구 마구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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